20181128 감사와 기쁨이 있는 교회 (빌립보서 1장 3-5절)


사도 바울은 순회 선교사입니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는 한 곳에서 3년 이상 머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고린도교회도 1년 7개월 정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빌립보에서도 오랜 시간 머물러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복음사역으로 인해 빌립보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유럽에서 제일 먼저 세운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유대인들이 별로 없었고,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평생 교회 한 번 안 가본 초신자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사도 바울의 지도 아래 빠르게 성장했고, 신앙적인 면에서도 성숙한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반가운 손님이 바울을 찾아옵니다. 빌립보 교회 출신의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에 투옥된 바울을 만나러 왔습니다. 알고 보니 바울이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돕기 위해 감옥에서 쓸 물품과 선교비를 모아 에바브로디도 편에 함께 보낸 것입니다. 바울이 직접 전도하고 개척하여 세운 빌립보 교회… 그 지난 날 바울이 성도들을 위해 밤낮 수고하며 사역했는데, 이제는 그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여 이처럼 물품과 선교비를 보내주었으니 사도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겠습니까?
예전부터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바울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그리워했습니다. 바울의 마음 한 켠에는 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꼭 다시 한 번 방문해서 보고 싶은 사람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만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바울은 감사의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3-4절을 보겠습니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3-4절의 핵심 두 단어는 ‘감사’와 ‘기쁨’입니다. 바울의 머리에 ‘빌립보 교회’하고 생각하면 떠오르면 두 가지가 ‘감사’와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교회는 얼마나 복된 교회입니까?
이 세상에는 참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다 같은 교회는 아닙니다. 어떤 교회들은 생각만 하면 인상이 찌푸려지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어디어디 교회 하면 그 교회 안에서 서로 고성을 내고 때로는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며 싸우는 장면부터 떠올라서 마음이 아픈 교회가 있습니다. 또 어느 교회는 그 안에서 일어난 각종 스캔들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고 심한 고통 겪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픕니다.
사실 지금 편지의 수신자인 빌립보 교회도 문제가 없는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만나기 위해 온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 안에서 파벌이 형성되어서 싸움이 있었고, 분열이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2절을 잠깐 보시겠습니까? “(빌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여기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란 두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이 두 사람이 교회 안에서 파벌을 형성한 두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유오디아편, 순두게편이 있었던 것이죠. 서로 니 편 내 편 하면서 세력 싸움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교회가 시끄러웠겠어요? 교회 가면 말은 안해도 성도들 사이에서 고요한 긴장이 흐릅니다. 서로 어색합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아마 이 때 즈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교회 가는데 마음이 참 무거웠을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에바브로디도가 사도 바울에게 다 전해주었습니다. 그럼 오늘 편지가 시작할 때 바울의 훈계로 시작 할만하지 않았겠습니까? “교회 안에 다툼이 웬 말이냐? 교회 안에 분열이 웬 말이냐!”하고 호통칠만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문제가 많은 교회 였지만 바울은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3절 보니까 그는 오히려 빌립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세상에 문제 없는 교회가 어디 있겠어요? 죄인과 죄인들이 만난 곳인데 문제가 없는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 없는 교회 있으면 어딘지 저도 좀 방문 가보게 알려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지구 위에 거하는 모든 교회들은 다 저마다 아픔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지혜롭게 은혜롭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입니다. 감정적으로 문제를 접근하려고 하면, 다른 이들 감정만 더 상하고 문제가 더 복잡해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 보세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래…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빌립보 교회를 통해 부어주신 은혜가 있지… 그래도 이들은 내가 어려울 때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함께 해주고 도와준 교회가 아닌가? 하나님, 빌립보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현재 일어나는 교회 안의 문제들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이 부족하고 문제 많은 교회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참 문제가 많은 교회였어요. 어쩌면 우리 교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만큼은 이 교회를 생각하면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있었고, 마음에 기쁨이 떠오를 만큼 소중한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떠오릅니까? 기쁨과 감사가 떠오릅니까? 아니면 뭔가 답답하고 마음이 어렵습니까? 교회하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영혼에 감사가 떠오르고 마음에 기쁨이 생기는 교회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쁠까요?.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가 섬기는 교회도 연약함이 많은 교회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가 다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끊임없이 문제와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거 너무 당연한 거에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지금 어려운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신 은혜를 까먹으면 안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단점도 있었지만 장점도 확실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장점은 바울의 선교 사역에 그 어느 교회보다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협력해왔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선교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5절을 보면 ‘첫날부터 이제까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된 그 날부터 지금 바울이 로마에 갇혀 이 편지를 쓰는 순간까지 약 11년 정도되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 동안 ‘복음에서 교제했다.’는 말은 복음에 참여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빌립보 교회가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을 위해 여러모로 힘쓰고 도와주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복음 사역을 시작할 때, 루디아는 그의 집을 개방하였고, 간수는 그를 친절하게 대접하였으며, 2차 전도 여행시 바울이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헌금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바울이 필요한 물품도 보내주고 선교비도 후원주고 필요하면 시간을 내어 몸으로 섬겨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사도 바울의 전도로 새롭게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적극적으로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했으니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를 통해 일하고 계셨고,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우리들도 코너스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지금까지 주신 은혜에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바로 이 교회를 통해 나에게 과거에 이런 이런 은혜를 주셨었지. 지금도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고 계시는구나?” 여전히 교회 안에 문제들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고,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신뢰하며 성도들과 함께 기뻐하며 감사하시는 복된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