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7 누가 하나님 앞에 서리요 (사무엘상 6장 1절 – 7장 2절)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끝에 블레셋이 승리했습니다. 패배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겼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땅에 머무르는 동안 여호와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염병을 일으키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여호와의 궤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왔기에 여호와께서 전염병 재앙을 자신들에게 내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방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을 불러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처리할지 회의를 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전염병이 일어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하며, 이스라엘과 싸워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인 여호와의 궤를 돌려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이 재앙은 분명 여호와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언약궤를 하루 빨리 이스라엘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블레셋의 이방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은 하나의 묘수를 떠올렸습니다. 새 수레를 만들고,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소 두 마리로 그 수레를 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은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이 때 사용하는 두 마리의 소를 새끼 송아지들을 낳은 두 어미 소로 결정한 것입니다. 몇 일 전 공원을 걷고 있다가 앞을 지나가는 거위를 보았습니다. 거위는 겉으로 보면 수컷과 암컷을 구별하기가 참 힘듭니다. 그러나 새끼가 있는 경우에는 구별하기가 참 쉽습니다. 새끼들이 암컷을 따라다니기 때문이죠. 사람도 어머니가 가진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듯이, 동물들도 새끼들과 암컷이 가진 유대관계는 특별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얼마 전 새끼 송아지를 낳은 두 어미 소가 등장합니다. 어미 소를 새끼 송아지와 저만치 떼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미 소가 새끼 송아지 있는 곳으로 향하여 가지 않겠습니까? 자연의 순리이고, 당연한 이치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바로 이 원리를 가지고 하나의 실험을 하기로 한 것이죠. 새끼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었습니다. 어미 소들로 여호와의 언약궤와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께 바치는 금으로 만든 5마리의 쥐와 금으로 만든 5개의 종기 모양을 실은 새 수레를 끌게 했습니다.

금으로 된 쥐 모양과 금으로 된 독한 종기의 형상을 보낸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을 향한 속건 제물이었습니다. 즉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피해를 보상한다는 의미로 드린 일종의 제물이었던 셈입니다. 블레셋은 속건 제물로 금 쥐 다섯 마리와 독종 다섯개를 준비했습니다. 이는 블레셋 방백들의 숫자가 다섯이고, 블레셋 성읍의 숫자가 다섯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의 이방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은 여호와께 속제 제물 드리는 일에 늦장 부리거나 안 하기로 고집 피우지 말라고 강하게 권면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애굽 바로 왕과 그의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보내신 재앙들에 의해 멸망 당했던 것처럼 그들도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사무엘상 본문은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볍게 여기던 여호와 하나님을 오히려 이방 민족인 블레셋 사람들이 무겁게 여기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장면을 통해서 여호와는 그 누구에게도 하찮게 여김을 받을 분이 아니시며, 그런 자들에게는 끔찍한 형벌과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동시에 주님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귀히 여기며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소는 지능이 높은 짐승입니다. 주인에게 충성스런 소는 남의 집에다가 가져다 놓고 풀어 놓으면 본래 자기 집을 다시 찾아올 만큼 똑똑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어미 소들이 본능대로 새끼 송아지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 전염병 재앙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일으키신 재앙이 아니라 우연의 일치인 것으로 결론 내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새 수레를 태어나서 한 번도 끌어 본적 없는 이 두 마리의 어미 소들이 본능과 반대대로 새끼 송아지들을 버려두고 이스라엘 땅으로 향하여 수레를 끌고 간다면 이것은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블레셋에게 벌을 내리신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2절을 봅시다. “(삼상 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암소들이 소리내어 울면서 이스라엘 땅인 벧세메스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올라갔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블레셋의 방백들은 그제서야 이 모든 재앙이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건져 온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칼과 병가가 없어도 예수님은 애굽을 심판하시고 블레셋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주님의 놀라운 권능과 위엄으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벧세메스 마을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언약궤를 끌고 온 두 마리의 암소를 잡아 불태워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본 것입니다. 그 결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심판하시니 (오만) 칠십 명이 죽었습니다. 우리 성경에 보면 “오만”이라는 숫자에 ‘괄호’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성경 사본인 마소라 본문에는 죽은 사람들이 숫자가 ‘오만 칠십 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변두리의 작은 시골 마을인 벧세메스의 전체 인구가 오만명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본들은 ‘칠십’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번역자들은 ‘오만 칠십’과 ‘칠십’ 이렇게 두 가지 해석 가능성이 다 있을 수 있어서 괄호 안에 숫자를 넣어 놓은 것입니다. 블레셋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인 벧세메스 사람들도 주님의 거룩함을 침범하자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선택 받은 민족인 이스라엘이든지 이방 민족인 블레셋이든지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종하고 이용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또한 반드시 큰 벌을 받게 됩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재앙이 내림을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도록 요청하게 됩니다. 그 결과 기럇여야림이란 성읍의 아비나답이란 사람의 집으로 언약궤가 모셔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20년 간 법궤가 머물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법궤는 주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우리들도 주님께서 우리 가정에 머무시도록, 날마다 우리와 함께하실 주님의 임재를 구하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