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4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시리즈 (2) 유일한 규칙, 성경

우리는 지난 주 소요리문답 제1문 ‘인간의 최고 목적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제2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신에게 어떻게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할 것인가를 지시코가 하나님은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가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신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리고 그를 즐거워할 것인가를 지시해주는 유일한 규칙입니다.”

제2문
누가복음 10장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여기서 예수님꼐서 언급하신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역과 그가 베푸신 이적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 나라와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것들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겨지고,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지성인들은 참 지혜를 소유하지 못했고, 오히려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참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제한된 지혜와 능력만으로는 이 세상의 참 진리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지식이란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입니다.
지난 해 성탄절 날, 세계 최대 우주망원경이 우주로 발사되었습니다. NASA 과학자들이 제작한 ‘제임스웹’이란 이름을 가진 이 망원경은 기존에 우주를 가장 멀리까지 보여주었던 허블 망원경보다 100배 이상 높은 관측 성능을 자랑합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제임스웹 망원경이 그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우주의 원초적 비밀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한편으로 이러한 인간의 새로운 시도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열어줄 것이란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새로운 지식을 깨닫지만, 동시에 또 다른 무지의 세계가 존재함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인간이 지닌 지식과 지혜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것도 불완전한 인간이 자연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에 대해서 외부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이해 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봅시다. 요즘 제 머리에서 흰 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제 아내가 찾아서 잘라줍니다. 이 때 저는 제 아내가 새치를 잘 찾을 수 있도록 방 조명이 밝은 곳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도 때로는 육안으로 검정머리와 흰머리가 잘 구분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불을 끄고, 소등한 상태에서 흰 머리를 찾아야 한다고 한 번 상상해봅시다. 말 그대로 ‘암중모색’입니다. 찾으라고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러한 상황이 인간이 자신의 지혜로 신적 존재를 찾으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한 마디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사실 기독교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인간이 신을 찾는 종교입니다. 수행, 묵상, 교육, 고행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봅니다. 그러나 인간이 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심을 가리켜 우리는 ‘계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계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자연을 통해서 자연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9편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자연이 하나님의 존재를 선포하고 있음으로 인간이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핑계 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로마서 1장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우리는 끝이 없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내리는 날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천둥과 뇌성 그리고 내려치는 벼락과 번개를 보며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처럼 눈에 자연 만물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창조주가 계심을 알 수 있게 도와줍니다. 따라서 자연을 보고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을 가리켜 성경은 ‘어리석은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시편 14편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누구든지 인간은 자연 만물을 통하여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를 계시하신 것을 가리켜 ‘일반계시’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일반계시만으로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일반계시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는 있지만, 구원자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계시는 불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정확하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지 말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반계시와는 별도로 또 다른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 스스로를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특별계시’입니다. 일반계시가 눈에 보이는 자연 법칙과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특별계시는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의 천사를 통해서 주님을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모세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구름 가운데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들에게 꿈과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공부를 한 학자들도 있고, 뛰어난 지성인들도 있으나 그들이 우리보다 학문에 대해서 더 잘 알고 공부를 더 잘할지는 몰라도,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학문과 자연 법칙만으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으며, 인간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죄사함을 받아 영생과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관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그들은 성경을 단지 인간이 기록한 수많은 책들 중 하나 즈음으로 치부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성경에 대하여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잘못된 견해 2가지부터 살펴본 후, 그 다음 우리가 믿고 고백해야 할 올바른 성경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이 함께 쓰여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가 하면, 성경 속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석되는 말씀은 진리가 되지만 인간의 말이라고 해석되는 말씀은 거짓이 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성경 속 어느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느 부분이 인간의 말씀인지를 구별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다 보면 사람마다 자기가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고 싶은 성경의 내용만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아예 성경 전체가 오류가 있는 인간의 글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성경은 사람의 글이지만,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임함으로써 성경이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진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본래 성경은 인간의 글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성경의 그 어떤 부분도 다 참 말씀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와 같은 주장의 문제는 어떤 사람에게는 특정 본문이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는 동일 본문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단순히 인간의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 공동체와 신앙의 뿌리에 큰 혼란이 야기됩니다. 게다가 이 주장은 성경이 가지고 있는 특별계시로써의 권위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성경관 역시 오류가 있는 주장입니다.

이제 올바른 성경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서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일부분만 영감 된 것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단어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신자들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 그들이 성경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성경은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일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은 틀렸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틀렸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로 인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하여, 이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죄사함과 영생 그리고 구원에 대하여 올바른 지혜를 우리에게 전달하여 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3대 특성
성경은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오류가 없습니다. 이것을 성경의 무오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는 성경 원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필사자가 성경을 배껴 쓴 성경 사본이나, 성경을 외국어로 바꾼 번역본에는 오류가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치명적인 오류가 아니며, 하나님을 잘못 알도록 방해하거나,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막을 정도로 심각한 오류들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류가 없는 책입니다. 성경은 정확무오 합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참됩니다.
또한 성경은 명료합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성경을 읽으면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주석 같은 참고자료의 도움을 통해서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말씀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하나만 가지고도 사람이 죄사함을 얻고 영생을 누리며 구원에 이르게 할만큼 내용이 분명한 책입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어른의 도움이 없이 성경을 읽을 때도 그들은 충분히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께 약속받은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면 충분합니다. 개신교는 ‘오직 성경’을 외칩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특별계시로써 신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카톨릭은 성경 뿐만 아니라 전통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몰몬교는 성경 뿐만 아니라 몰몬경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이면 충분합니다. 성경에서 그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계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간혹 성경 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혀 배제한 상태에서, 성경의 내용과 다른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부 거짓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며, 아무런 권위도 없으며, 유익도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났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성경의 내용이 추가되지도 않고, 변경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오류가 없는 무오성, 이해할 수 있는 명료성,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행동의 유일한 법칙으로써의 충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됩니다.
분명 세상 사람 중에는 성경은 없으나, 그의 양심과 도덕에 따라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분명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도 않지만, 웬만한 교회 다니는 사람들보다도 더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세상 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존경받고, 휼륭하다는 칭송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과 도덕만으로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유일한 규칙을 모르고, 그대로 살지도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주된 목적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방황하는 공허한 인생일 뿐입니다.
이와 반대로, 사회적으로 내세울 것 또는 자랑할 것도 없으며, 특별히 가진 재물이나 누가 알아줄 만한 특별한 업적을 이룬 삶이 아닐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깨닫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의 성인군자들의 삶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양심’과 ‘도덕’이란 그가 처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특정 행위가 양심적인 행동 또는 도덕적인 행위로 규정될 수도 있고, 사회적 환경에 따라 비양심적인 행위 또는 비도덕적인 행동으로도 규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의 양심이나 도덕에 이끌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미숙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양심과 도덕에 따라 완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을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주님이 주신 규칙들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삶을 참된 행복으로 인도하며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말씀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9편 7-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말성경 번역입니다.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해서 영혼을 되살리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해서 어리석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며 (19:8) 여호와의 율법은 올바르니 마음에 기쁨을 주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전해서 눈을 밝혀 줍니다.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신성한 일이라 영원히 지속되며 여호와의 판결은 참되고도 의롭습니다. (19:10) 이는 금보다, 순금보다 더 귀하고 벌집에서 뚝뚝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제일의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적혀 있는 매뉴얼이 바로 ‘성경’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를 생명의 길, 풍성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고 삶에 적용하고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고, 하나님의 본질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드러나게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가장 복된 삶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