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9 예수 시리즈 (6) 예수는 그의 백성을 돌보는 통치자 (마태복음 2장 1-12절)

들어가며
한국은 요즘 대통령 선거로 시끌벅적 합니다. 대선이 이제 약 60일 정도 남았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가 한국을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국민들을 잘 섬기고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시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도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는 비단 대통령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정, 학교, 회사, NGO 등 사회의 모든 조직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지도자가 중요한 이유는, 지도자 한 사람의 성품과 역량이 결국 공동체 회원 전체의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의 리더십에는 많은 유형들이 있습니다만, 최근에 가장 각방 받는 리더십 유형 중 하나가 바로 ‘Servant leadership’입니다. ‘Servant leadership’을 영어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섬기는 리더십’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만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결국 모두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라는 이론입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기본 바탕으로 조직의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앞에서 차근차근 이끌어 주는 리더십을 가리킵니다. 그리기 위해서 리더가 그 조직 또는 공동체에 속해 있는 멤버들과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회원들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면서, 리더와 조직의 회원 간의 신뢰를 형성시켜 궁극적으로 성과를 달성하게 만드는 리더십이 바로 ‘서번트 리더십’입니다. ‘Servant leadership’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리더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가정에서 만나는 부모는 자식의 리더입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을 지도자로 만나게 되고, 직장에 가면 상사를 지도자로 만나게 됩니다. 또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고용주를 지도자로 만나기도 하고, 교회에 오면 목회자를 지도자로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 동안 만난 수많은 지도자들을 만나며 살아왔습니다. 혹 그 분들 가운데 진심으로 여러분을 돌보아 준 그런 리더들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나를 귀하게 여겨주고,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자신의 삶을 나를 위해 나누어 준 그런 지도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지도자를 만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분명 큰 복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은 우리 모두가 바로 이 큰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도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와 같은 섬기는 리더십 즉 서번트 리더십을 갖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겨 주시고, 우리를 위해 그 분의 삶을 희생하셨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그 분의 전부를 나누어 주시는 삶을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1. 탐욕에 물든 왕 헤롯 (마 2:1-3)
하나님께서는 반짝이는 큰 별을 사용하여서 동방, 페르시아 혹은 바벨론 지역에서 살고 있던 세 명의 박사들이 왕으로 태어난 이를 찾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일명 동방박사로 불려지는 이 세 사람은 별을 따라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여정을 떠났습니다. 먼 여행 끝에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박사들은 왕궁으로 찾아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리고 있는 헤롯 왕에게 유대인을 다스릴 왕으로 탄생하신 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헤롯은 새롭게 태어난 아기 왕을 경배하러 왔다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예루살렘 도시도 이 소식으로 인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왕궁과 도시에 큰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 2장 3절 말씀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에서 ‘소동’이란 단어는 ‘극도로 동요하다’ 또는 ‘매우 동요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이처럼 소동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 왕은 왕좌를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다윗의 후손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는 정통성 있는 유대인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반은 유대인이고 반은 이두메인(에돔 사람)인 혼혈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순수혈통이 아닌 이방인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을 못 마땅해했고, 헤롯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로마인들의 힘을 등에 업고 결국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가진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 제국에 극도로 충성했고, 또한 동시에 그는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매우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왕권을 침해할 것 같은 사람은 다 잡아 죽였습니다. 헤롯은 그의 아내 마리암 왕비가 자신의 왕권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아내를 처형 시켜 버렸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의 장모도 같은 이유로 재판 없이 죽여버렸습니다. 심지어 헤롯은 그의 장남 안티파터 2세도 죽여버렸습니다. 이처럼 헤롯이 왕권을 지키기 위해 자녀들과 가족조차 죽이는 헤롯 왕의 모습을 보며 로마의 황제는 “차라리 헤롯의 아들이 될 바에야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더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헤롯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 살아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죠. 이처럼 헤롯은 모두가 다 아는 왕권 유지에 정신나간 왕이었습니다.
그런 헤롯이 왕으로 다스리고 있는 시절에, 아무런 사전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동방박사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 드리려고 왔습니다”하고 보고를 했던 것이죠. 그러니 온 예루살렘 도시가 발칵 뒤집어 진 것이죠.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마누라, 장모, 아들도 처형시킨 저 미치광이 왕이 이번에는 또 누구를 죽일까? 괜히 불똥이 우리에게 튀는 것 아닐까?” 백성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난 이후 몰래 고국으로 떠난 것을 발견하게 된 헤롯은 명을 내려 베들레헴에서 2살 아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왕권을 지키는데 미친 사람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이 대수롭지 않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이 헤롯이었습니다. 헤롯과 같이 자신의 유익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남의 목숨이고 뭐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인무도한 일들을 집행하는 지도자를 만나게 되면 그 공동체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2. 그의 백성을 돌보시는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
바로 이런 탐욕과 죄악에 물든 잘못된 지도자로부터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선하고 의로운 새로운 지도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미가서 5장 4-5절을 우리말성경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미 5:4) [우리말 성경] 그가 여호와의 능력으로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고귀함으로 일어나서 자기 양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니 이는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미 5:5 상반절) [우리말성경] 그리고 그는 평화가 될 것이다.” 미가서 5장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이 어떤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여주실 것인지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그 분의 양 떼를 먹이십니다. 여기서 ‘자기 양 떼를 먹인다’는 말은 곧 ‘자기 양 떼를 돌봐주신다’는 뜻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주의 백성들을 돌보아 주십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의 양 떼가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의 백성을 직접 먹이시고, 돌보아 주시고, 또한 주의 백성이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도록 이끌어 주는 예수 그리스도, 이처럼 좋은 지도자가 또 어디 있습니까?
5절 봅시다. “그리고 그는 평화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을 “그가 그 백성들의 삶에 평화를 가져줄 것이다”하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요즘 같은 시대에 마음에 평화를 안고 살아가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친히 돌보시니, 밖에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따뜻한 벽돌집 속에서 창문 밖으로 내리는 비 바라보는 사람처럼 아무 걱정이 없이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예수가 돌보아 주시니 마음 속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잔잔한 호수처럼 평안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참 기쁨과 행복입니다.

3. 예수님을 찾는 삶 (마태복음 2:4-8)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 때문에 헤롯은 당황했지만, 그는 재빠르게 움직이며 메시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소집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출현으로 인해 헤롯은 모든 종교 권위자들을 모아 그들로 하여금 메시아의 오심에 관한 예언들을 연구하게 하였습니다. 헤롯은 메시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메시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그가 가지고 있는 왕권을 빼앗으려는 위협에 대하여 적절히 대처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종교 지도자들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며 ‘베들레헴’이 메시아가 탄생하게 될 약속된 출생지임을 밝혀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메시아를 찾아왔으나 구체적으로 그가 어디에서 태어날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아가 어디서 탄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준비된 대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미가 5장 2절 말씀을 참조하였습니다. 베들레헴은 크기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시로써, 더 높은 지명도를 가진 예루살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위대한 왕 곧 메시아를 낳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불과 5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왕을 알현하기 위해 여행한 거리에 비하면 매우 짧은 거리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베들레헴으로 떠났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날지 율법을 연구하여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깨달은 종교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부터 베들레헴까지 거리가 불과 5마일도 안 됩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위해 저 멀리 타국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 갖은 고생하며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그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동방박사들이 전해준 소식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5마일도 채 되지 않는 도시를 그 어느 누구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인 일입니까? 종교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메시아의 탄생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나귀를 타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수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만이 구주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할 때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 2:9-12).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향할 때 별이 다시 나타나 예수님을 만난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9-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동방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해주었던 별은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이들이 예루살렘까지는 왔으나, 새롭게 태어난 왕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자세히 파악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실망하여 풀 죽어 있었을 법한 동방박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아기 예수의 위치를 알려주는 별을 다시 보내주셨습니다.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있던 곳 위에서 멈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별을 통한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심으로써 동방박사들을 정확한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만이 구주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았을 때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뛸 듯이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계신 집에 도착한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습니다. 어떤 성경 해석가들은 ‘금’, ‘유향’, ‘몰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잘 나타낸다고 설명합니다. 금은 예수님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유향은 ‘순결한 삶을 살아가신 예수’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몰약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몰약은 시체가 부패되는 것을 막는 방부제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선물은 동방박사들이 갓 태어난 왕에게 바친 최고의 선물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세상의 왕이시요 구원자이심을 발견한 사람들은 이처럼 그 분께 삶의 가장 귀한 것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적용.
한쪽에서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을 찾아 경배하러 왔습니다. 다른 한쪽에서 헤롯은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그가 가진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한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방박사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주신 구원자 예수를 간절하게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복음의 진리를 거짓과 위협으로 오해하고,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예수는 그의 백성을 친히 돌보아 주십니다. 주님은 그 분의 양떼인 우리들이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도록 인도하여 우리 삶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