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8 험을 이기는 믿음 (창세기 22장 1-19절)


등산을 하려면 출반 전 여러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등산복 입고 등산화를 신어야 합니다. 등산에 필요한 도구들과 식량도 챙겨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어느 때는 생각지도 못한 부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가을에 등산하는 경우, 어이없게도 비에 젖은 낙엽에 미끄러져 넘어지다 그만 발목이 삐어 다치기도 하고 허리나 머리를 크게 다치기도 합니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고 해도 삶은 항상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시험으로 찾아옵니다. 우리는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믿음의 시험’도 포함됩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더 큰 복을 주시고자 시험을 통하여 역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험의 때가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영적인 시험이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것 같을 때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길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흔 다섯 살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10년 넘게 기다려도 사라는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라의 경수도 끊어졌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소망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더 한참 흐르고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었고 아브라함은 90세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 두 노 부부의 품에 아들을 안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있어 노년에 낳은 아들 이삭은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식이었습니다. 아브라함하고 사라 눈에 이삭이 얼마나 예뻐 보였겠습니까? 금이야 옥이야 하고 정성으로 이삭을 돌보고 키웠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아들 이삭과 함께 꿈만 같은 행복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말씀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창세기 22: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은 기이하여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25년만에 얻은 아들 이삭을 희생 제사의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합니까? 주었다가 도로 빼앗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더군다나 다시 돌려 주어야 할 그 대상이 아들이라면 부모의 입장에서 어찌 그게 가능합니까? 차라리 부모인 내 간이나 쓸개를 빼내어 가지 도저히 아들을 잡아 칼로 죽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상속자요, 그의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나 뿐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아브라함이었다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우리 중 과연 몇 명이나 부모로서 자기 아들 또는 자기 딸을 칼로 찔러 죽여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저였다면 하나님의 명령에 어리둥절하고 좌절하면서 심지어 화도 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뭐 이런 것까지 바라십니까?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어떻게 다른 것도 아니고 내 하나 뿐인 아들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내 아들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으십니까? 도대체 저한태 왜 이러십니까?” 막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어투로 화를 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의심과 불신을 발견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치 뜨거운 불이 금의 불순물을 제거하듯이, 시험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의심의 불순물을 제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종종 극단적으로 보이는 일들을 요청하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우리의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도저히 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새로운 곳으로 멀리 이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명령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이는 명령들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어려운 시험은 우리를 깎아내리고 고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더 신뢰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내 앞에 찾아온 이 위기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의 시기인지 아닌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죄를 짓도록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시고 주님께로 끌어당기기 위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지혜롭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시험인가 유혹인가?’, ’내가 만일 이와 같은 식으로 결정하면 믿음이 강해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것인가, 아니면 그분에게서 멀어지게 될 것인가?’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더 오래 걸을수록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더 많이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아들을 희생시키라는 부름이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신뢰를 봅니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7-8절입니다.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그의 아들 이삭이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버지 번제에 제물로 사용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신속히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묵묵히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려 합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놓고, 번제에 쓸 나무들을 열려 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아들 이삭을 밧줄에 꽁꽁 묵어 제단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온 칼로 자신의 아들 이삭을 찔러 하나님께 바치려 하였습니다.
하늘의 모든 천사도 숨을 죽이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이 순간 오늘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두 번이나 연달아 부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것은 천사가 그를 다급하게 불렀음을 보여줍니다. 천사는 아브라함 손에 있는 칼로 하여금 이삭을 해하지 못하게 막으러 온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던 일, 즉 이삭을 죽이려 하던 일은 멈추고 천사의 메시지에 반응합니다. “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인간이 겪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험 중 하나가 드디어 끝이 났음을 고해줍니다. 12절 말씀입니다.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 하나님이 이 시험을 통해서 네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확인하셨다!” 그대는 이 시험에 합격했소.” 하고 시험이 끝났음을 합격통지 해줍니다. 우리는 천사의 이 말을 통해 이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정말로 경외하는 자인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지 확인해보기 위한 시험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받은 이 동일한 시험지가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하나님은 오늘도 온 땅을 두루 살펴보고 계세요. 그리고 누가 자기를 진심으로 경외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계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삶과 우리의 마음을 하나하나 다 보시며, “아무개가 날 진심으로 경외하나? 아무개가 나를 이 세상 다른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나?”하고 살펴보고 게신 것이지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한 자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그러한 증거가 나타나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에는 12절과 16절에 두 번씩이나 나타나는 표현 즉 “네 아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왜 시험을 허락하실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험을 당할 때면 “왜요? 하나님? 왜 다른 사람은 저렇게 편하게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하고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성경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시는 시험이 인간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여 고통 당하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시험을 통과하여 그에게 복 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원망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합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지에 쓴 정답이 무엇입니까? “내 독자까지 아까지 아니하였으니…” “내 독자까지 아까지 아니하였으니…” 자신의 가장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통과하자 하나님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복을 약속합니다. 17-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8절 마지막 구절에 보니, 복을 주시는 이유가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하였기에 그에게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하자 하나님께서는 놀라울만큼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큼의 복을 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굳건해지도록 믿음을 시험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시험의 때가 올 때 우리는 어떻게 믿음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영적인 시험이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것 같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행로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더 오래 걸을수록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더 많이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의 믿음이 시험을 받을 때에도 아브라함과 같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