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4 골로새서 시리즈 (4) 그리스도를 알아가라 (골로새서 2장 1-5절)

서론. 인생의 질문들을 해결하는 방법
최근 한국의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인문학 강좌를 다르고 있는 책들의 판매량이 수년 동안 상당히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재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인문학 속에서 찾고 자 하는 갈증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문학을 통해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질문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4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Where did I come from?)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What is the meaning of my life? What is the purpose of my life? Or is there a meaning or a purpose in my life?) “나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How should I live?),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What is my destiny?)
안타깝게도 인문학은 삶을 살아가는 단편적인 지혜는 던져줄지 모르지만, 통합적인 관점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참 지혜는 공급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닷물을 마실수록 더욱 갈증을 느끼게 되듯이, 인문학 공부는 해답은 주지 못하고 삶에 대한 더 큰 궁금증만을 남기게 됩니다. 이 세상 철학, 문학, 역사, 고전을 다 공부해봐도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분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문학자 중에는 우리가 그 이름을 한번 즈음 들어봤을 ‘니체’와 같은 철학자 같이 자신이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몇명 등장했었습니다만, 사실 그들의 사상은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허무와 절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네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삶의 허무함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하고 있습니다. 살아갈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내일을 맞이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이 가진 한계로 인해 인간은 더 이상 존재의 기원, 인생의 참된 의미, 도덕적 가치, 죽음 이후의 삶 이 4가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정말 우리는 아무런 대답도 주어지지 않은 허망하고 허무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4가지 질문을 모두 해줄 수 있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Origin(인류의 기원), meaning(삶의 의미와 목적), morality(도덕적 가치와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 destiny(죽음 이후 인류가 맞이해야 할 운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에 대한 진지하고 진솔한 질문을 물어본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인문학이 해결해주지 못하던 질문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이처럼 위대한 책인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성경을 외면한 채 인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일까요? 담수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닷물을 마시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성경을 진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참된 진리라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만일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인간이 해결하고자 하는 질문들을 모두 답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질문에 대하여 성경이 주는 해답 가운데는 언제나 하나의 존재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창조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우리는 인간의 기원을 알 수 있습니다. 구속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왜 세상에 고통이 있는지 어떻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만물의 으뜸이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인생의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화평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 이후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깨닫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마다 다른 대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또 다른 인생의 답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2천년 전에도 동일한 현상이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이단과 거짓교사들의 거짓 교훈으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예수보다 더 나은 지식이 있다고, 예수가 아닌 다른 길이 있다고 가르치는 이러한 꾀임과 유혹에 교회는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뿐만 아니라 그 주변지역의 다른 교회들도 이와 같이 이단과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 안으로 침투하여 성도들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 얼굴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는 지금 로마에 죄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당장 골로새로 달려가서 교회와 성도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싶었으나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골로새서 1장을 통해 바울이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개하는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알아갈 것을 권면했습니다.

1.하나님의 비밀,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인 그리스도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골 2: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골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있는 성도들을 비록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으나, 계속해서 저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멀리서도 저들을 진리로 가르치고 돕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그들의 마음에 위로를 받고, 교회가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이 더해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전혀 귀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눈 앞에 유용한 지식 혹은 이득이 되는 지혜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연봉을 더 많이 버는 법’, ‘더 큰 집에서 사는 법’ 같이 눈에 보이거나 당장 손에 만질 수 있는 유용하고 이익이 되는 지식만을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활에 보다 도움이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와 명예를 얻을 수 있고, 권력을 손에 넣도록 도움이 되는 지식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무가치한 지식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힘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그들의 생활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전하면, “예수가 밥 먹여줍니까?”, “예수가 돈 벌어줍니까?”하고 이야기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거부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생활에 당장 유용하거나 이익이 되는 지식만을 선호하는 풍조가 있기에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심지어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이러한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예수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 못 느끼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를 단순히 내가 천국가는 티켓 값을 대신 지불해주신 분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야말로 이 세상의 지식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유용한 지식보다 가치 있는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마치 수십만개의 돌을 가지고 있어도, 다이아몬드 하나보다 가치가 적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세상 그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한 번 들어봅시다. 빌리보서 3장 7-8절 말씀입니다.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 바울은 이전에 자신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예수를 믿고 나니까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기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그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존귀하고 가치 있기에 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괜찮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세상 지식은 다 쓸모 없는 배설물 같이 과감하게 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찬송가 102장에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양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원히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어떻게 이러한 고백이 가능할까요? 예수그리스도를 진짜로 만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와 주인으로 고백한 사람들은 가능합니다. 예수님 만나고 보니까 ‘진짜 이 세상에 예수보다 중요한 것이 없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Pause…)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은 어디일까요? 바로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의회도서관’ 입니다. 미국의회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공공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이 얼마나 큰지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투어’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단순히 규모만 큰 게 아니라 소장하고 있는 자로도 어마어마합니다. 책, 신문, 잡지, 각종 인쇄물, 음성 자료, 사진, 지도를 포함하여 1억 5천점 이상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회도서관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꼭 빠지지 않고 사진을 찍는 보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텐베르크 성경’입니다. 미국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로 중 하나로 뽑히는 것이 바로 이 구텐베르크 성경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성경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금속활자를 이용해 인쇄한 최초의 성경으로써 금속활자가 인류의 문화 발전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성경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심지어 비그리스도인 관광객들도 성경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책으로써 가지는 가치 그 자체보다도 그 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약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헌신하여 미국의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억 5천점의 자료를 아무리 다 샅샅이 살펴본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세상 모든 지식을 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할지라도 영원한 형벌을 면케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식은 소유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지식은 일시적입니다. 잠시 유익을 줄 뿐이지만 생명은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만 영원한 형벌을 면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우리에게 영원한 복락을 가져다 줍니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당장 눈 앞의 유익만을 얻기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보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성경을 꼭 보십시오. 성경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과 인도하심 없이 살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또한 성경을 보지 않는 것은 현재 내 삶이 성경의 가르침과 성령의 인도하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탐심과 육체의 정욕을 위한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부인할 수 없는 지표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성경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고백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가 찾고자 했던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옷을 입을 때 첫번째 단추만 잘 잠그면 나머지 단추는 자동으로 다 제 위치에 잠기게 됩니다.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먼저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알아가십시오. 그러면 나머지 지식들이 제자리에 채워질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느 정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성경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평생 읽고 연구하고 배워가야 합니다. (Pause…)
저는 시간을 두고 때마다 내 책장에서 꺼내 보는 책들이 몇 권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트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브라질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조제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같은 책들은 두고두고 봅니다. 책이 재미 있어서 보는 것도 있습니다만, 제가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이해하는 폭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10대 책을 읽었을 때와 20대 때 느끼는 감상이 달라집니다. 스무 살 청년 때 읽었을 때와 또 지금 책을 읽는 느낌이 다릅니다. 어떨 때는 “이 책에 이런 내용도 있었구나?”하고 새롭게 또 발견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 몰래 책에 새롭게 내용을 더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가볍게 지나치던 내용들이, 지금 와서 다시 보면 더 무게감 있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똑 같은 책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책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가질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읽고 또 읽은 성경이지만, 매번 새롭게 다가옵니다. 아브라함 이야기 하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 읽던 아브라함 이야기하고 지금에서 읽는 아브라함 이야기는 또 새롭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제 마음과 지금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제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해 말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고,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진리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더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평생 예수를 배워갑니다.

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거짓으로부터 지켜 줌
특별히 바울은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깨닫는 것이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4절을 봅시다. “(골 2: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공교한 말’이란 ‘그럴 듯한 거짓말’입니다. 들을 때는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진위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진짜 같은 거짓말입니다.
지난 2월 한국에서 대구 내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할 당시 이단 집단인 신천지가 집단 전염의 근원지로 지목되어 온 국민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뉴스를 보며 제 눈을 의심케 한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천지 교회 건물에 2019년도 신천지 성경교육 수료생 숫자가 10만 3천 7백 64명이라고 적힌 글귀였습니다. 한국의 한 기독단체가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조사해보니 10만명 수료 주장은 거짓말이고 한 5만명 정도 되는 거 같다고 추산했습니다. 10만명이든 5만명이든 그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 교사의 속임수에 속아서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경배하고, 교주 이만희씨가 하나님이라고 믿고 섬기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거죠.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잘못된 성경 해석을 가르치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성경 가르침으로 인해 무너지는 개인, 가정,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골로새 교회만 조심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거짓 메시지들이 더욱 넘쳐나고 있습니다. TV와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세상의 거짓 메시지에 노출되고 있습니까? 요즘 미국 대통령 선거철이 되니까 가짜 뉴스를 잡아 내려고 미디어 회사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짜 뉴스를 다 분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유튜브를 통해 세계 곳곳에 계시는 좋은 목사님들의 명설교를 쉽게 접하여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이고 축복입니까? 그러나 목회자인 저는 ‘혹시 성도님들 가운데 거짓 목회자의 잘못된 성경 해석이나 메시지를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고 또 한편으론 걱정이 됩니다. 지금도 거짓 교사들이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얼마나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까? 이단과 거짓교사들도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와 논리적인 전개를 가지고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속아 넘어갑니다. 그러한 거짓 메시지들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그 지식의 근원이 되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믿음을 지킨 골로새 교회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이단으로부터 믿음을 지켰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5절을 봅시다. “(골 2: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5절을 보면 “규모”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는 군대 용어인데 부대가 적군의 공격에도 흐트러짐 없이 오와 열을 맞추어 진형을 갖추고 있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골로새 교회가 이단들의 잦은 공격과 거짓 교사들의 거짓 교훈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아니하고 신앙을 굳게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또한 5절에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 역시 군대 용어입니다. 군인이 자신의 임무지를 이탈하지 않고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역할에 충실하게 서 있는 모습입니다. 비록 이단의 공격과 도전 앞에서 몇몇의 낙오자도 발생했습니다. 믿음을 버린 사람들, 믿음이 변질된 사람들, 의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교회의 모습을 보면 이단들의 공격에도 흐트러짐 없이 당당히 맞서 싸워 진리의 터인 교회를 지켰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골로새 교회의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 또한 교회가 거짓 세력들로부터 참된 진리를 지키는 수호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며, 또한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교회가 지켜야할 진리가 무너지면 교회의 기둥과 터가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단과 거짓 교사들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고 있습니다. 2천년 전 골로새교회 성도들보다 지금 우리 시대가 더 거짓 교훈에 취약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을 흔들림 없이 지켜 나가길 원하십니다. 적군과의 전쟁 중에 군부대가 흐트러짐 없이 진열을 지키는 것처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배워감으로 흐트러짐 없는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론. 매일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가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하루에 최소 10분 이상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하루에 성경을 3장 보십시오. 성경을 5장 보십시오.”하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성경읽기를 의무처럼 해치우기 식으로 성경을 보는 것은 우리 영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루에 성경 3장 혹은 5장을 보기 위해 그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성경을 의무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성경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면 검게 인쇄된 활자를 보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경을 의무 해치우기 식으로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시간이 안 되면 하루에 몇 개의 구절들만 정해 놓고 봐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구절의 성경을 볼 때 자세하게 이해하며 깊게 보십시오. (혼자서 성경읽기가 힘드신 분들은 기독교 서점에서 한글로 된 ‘ESV study Bible’ 혹은 ‘NIV study Bible’ 한권을 집에 구입하여 성경 옆에 있는 해석과 함께 천천히 읽으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나의 상황 속에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 귀 기울여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이 내 삶을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지 진실하게 반응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의 도전대로 변화를 일으켜 살아가기를 하나님께 결단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