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1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복음 (갈라디아서 5장 1~15절)


 

본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율법 아래 있습니다.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율법이 싫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한 평생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겠다. 그리고 나서 나는 하나님 나라 들어가겠다” 이처럼 사람이 율법을 무시하고 율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죄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한 고통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인간은 율법의 노예인 셈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의 노예로 살아가며, 죄의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신 하나님은 우리들을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를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으로 태어나신 예수님 또한 율법의 요구 아래서 살아가게 되셨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시며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자신이 의로움은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제 예수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율법의 노예가 아닌 자유인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우리가 행해야 할 의무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려면, 할례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 거짓 교사들의 꾀임에 넘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유대주의자로 여겨지던 이 거짓 교사들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율법의 요구를 준수해야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고 꾀었습니다. 그 결과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예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자유를 반납하고, 또 다시 율법의 요구를 따름으로써 율법의 노예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일이 바울에게는 큰 충격이자 슬픔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버리고 다시 이전처럼 율법의 노예로 돌아가지 말라”는 메시지를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1절을 봅시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님은 율법의 노예로 살아가던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께서 주신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굳게 붙들고 다시는 ‘율법이 요구하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만일 어떤 이가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한다면, 그와 같이 율법 아래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면, 이제 그에게 우리 예수님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2절을 봅시다. “(갈 5: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거부하여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여 구원을 받을 자격을 갖추어 보겠다고 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력으로 구원받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은혜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3절을 봅시다. “(갈 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그들이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너희가 할례를 받음으로써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려고 하느냐? 그렇게 율법이 요구하는 할례만 받으면 되는 줄 아느냐? 아니다! 만일 너희가 그 방법을 택한다면 너희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천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너희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바울이 이렇게 되묻고 있는 것이죠. 바울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고 하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권면합니다. 4절을 봅시다.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려고 시도하는 것은 100%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들이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에서 멀어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결국 복음이 약속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의로움을 받지 못합니다. 5절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 길을 따라 소망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똑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에서 자유케 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6절을 봅시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예수를 믿음으로써 율법의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에게 이제 ‘할례를 받았느냐? 그렇지 못했느냐?’하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됨으로 말미암아 할례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이 사실은 차이가 없으며 오직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믿음만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단호한 목소리로 물어보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진리 안에서 신앙의 경주를 잘 달리고 있던 여러분을 거짓말로 유혹하고 있습니까?” 7절을 봅시다. “(갈 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 잘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진리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막아 선 거짓 형제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8-9절 봅시다. “(갈 5: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갈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바울은 예수의 복음을 부인하는 그들의 거짓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단호하게 밝혔습니다. 9절에서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빵에 넣는 누룩(효모, 이스트)는 소량이라도 반죽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얼마 안 되는 적은 양의 누룩이 반죽 전체에 양향을 미치는 것처럼, 갈라디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리적 오류 하나가 교회 전체를 망가트리게 됩니다. 바울은 할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구원의 진리 전체를 왜곡하고 망가트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10절을 봅시다. “(갈 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복음 안에 서 있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며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신뢰를 표현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바울은 교회를 흔들고 성도들의 마음을 요동케 하는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대부분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그들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계속해서 유대주의자들의 핍박을 받아온 것입니다. 11절을 봅시다. ”(갈 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침과 같이 이방인도 반드시 할례를 꼭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그가 셀 수 없이 많고 많은 모진 핍박을 받지는 않았을 터이고, 그가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데 방해하던 세력들이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12절을 봅시다. “(갈 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하노라“ 12절에서 느낄 수 있는 바울의 목소리는 매우 엄격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계속해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다면 바울은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스스로 고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필체에 거짓 교사들을 향한 거룩한 분노가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무리들이 성도들을 흔들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거듭해서 성도들이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케 되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행여나 성도에게 주어진 특권인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지고 죄의 기회를 삼을까 염려한 바울은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바울의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아들로 부르심으로써 여러분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분명 여러분은 율법의 요구에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기회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서로 사랑으로 섬기십시오.” 바울의 말처럼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아무렇게나 내가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마구잡이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우리에게 준 기회를 가지고 육체의 욕망을 채우지 말고, 도리어 그 자유를 가지고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14-15절 말씀에 있습니다.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모든 율법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율법의 내용이 곧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하신 바로 이 한 마디 계명 속에 다 들어 있다고 말한 것이죠. 바울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자유를 가지고 형제들을 더욱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만일 성도들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자 하면, 피차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서로 싸우지 않도록 “부디 조심하십시오!”하고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자유가 있습니다. 이 자유를 가지고 우리의 육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며 살감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