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갈라디아서 1장 1-10절)


 

‘갈라디아’라는 이름은 지명입니다. 오늘날 지도를 보면 터키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의 불모지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으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요? 바울은 눈물, 땀, 피를 흘리며 사역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갈라디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고, 기적처럼 교회도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 하나 예수를 모르던 복음의 불모지에서 한 영혼,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울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사도 바울은 뒤통수를 크게 한 데 얻어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가져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갈라디아 교회 안에 있는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가르쳐 준 복음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며 성도들에게 다른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틀렸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만 가지고서는 충분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준수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면, 율법이 명시한 안식일, 초하루, 유월절과 같은 절기들도 지켜야 하며,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다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며, 남자들의 경우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할례란 쉽게 설명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이처럼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닌 변질된 가르침인 ‘다른 복음’이 들어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전한 복음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거짓 형제들은 바울의 사도권마져도 부인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사도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나 요한처럼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반박하고, 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갈라디아 교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대부분이 새롭게 예수님을 믿은 이방인들이었는데,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만 신앙을 포기한 사람들까지 발생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부인하고 자신의 사도권을 반박한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과 자신이 전한 복음의 진리됨을 논증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혼란에 빠진 갈라디아 교회를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더 선명하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제일 먼저 바울은 이 편지를 시작하며 자신의 사도됨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왔음을 이야기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이 편지 맨 처음에 다른 그 무엇보다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만일 사도가 아니라면, 이후에 그가 가르치는 모든 내용들이 권위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가 사도가 된 것이 사람들이 그를 사도로 뽑아 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를 사도로 파송한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사도로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혼란에 빠진 갈라디아서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합니다.

그리고 2절에 나아가서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인지 기록합니다. 2절을 봅시다. “(갈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바울은 아마도 그의 동역자들로 추정되는 형제들과 더불어 갈라디아 지역에 세워진 여러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발송했다고 기록했습니다. 2절에 ‘여러 교회들’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갈라디아 지역에 세워진 여러 교회들이 편지를 회람 즉 돌려가며 읽을 것을 염두해 두고 편지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절에는 편지의 발신자, 2절에는 편지의 수신자가 기록되어 있는 셈이죠. 그 후 3절에서 바울은 교회를 향해 축복의 인사말을 건냅니다. 3절입니다. “(갈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인사말은 바울의 시그네쳐와도 같습니다. 신약성경은 총 27권인데, 그 중에 바울이 쓴 책이 총 13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가 미상으로 되어 있는 히브리서도 바울이 썼다고 주장하며 바울이 쓴 책이 총 14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원어 헬라어 성경을 읽어보면 히브리서는 바울이 다른 책에서 사용하던 문체가 아니라는 것을 단 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바울이 쓴 책이 총 13 권이라고 말합니다. 이 13권 중 3권은 목회자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입니다. 13권 중 4권은 ‘감옥에 갇힌 바울이 쓴 편지다’라고 해서 ‘옥중서신’이라고 불리는 책들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그리고 이제 13권 중 나머지 6권은 바울이 각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그리고 마지막이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갈라디아서’입니다. 바울이 각각의 지역에 자리잡은 교회들을 대상으로 쓴 6권의 책의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인사말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시그네처 인사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바울의 저작이 아닐까 하고 몇몇 사람들이 추측하는 히브리서에는 이런 인사도 없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향해 비는 축복 바로 ‘은혜’와 ‘평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값없이 주어진 선물인 ‘은혜’,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삶의 만족을 느끼는 영혼의 평온한 상태인 ‘평강’이 갈라디아 교회 위에 함께하기를 축복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축복의 인사를 건낸 후, 곧 이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4-5절입니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갈 1: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곧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메시지입니다. 1-5절까지는 편지의 서론입니다. 편지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수신자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인사말을 전하고 예수님을 찬양을 하며 편지를 시작합니다.

자, 이제 그럼 편지의 본론 부분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먼저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성경을 가지고 계신 분은 팬을 가지고 ‘다른 복음’(different gospel)이란 표현을 찾아 밑줄이나 동그라미를 한 번 쳐보십시오. 이 표현이 계속 반복되어 나옵니다. 6, 7, 8, 9절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려 4번이나 반복되어 있는 것이죠. 성경에서 핵심 메시지를 찾는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은 반복되는 표현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다른 복음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갈라디아 교회 안에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의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거짓 형제들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는 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는 유대교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못한 것이 바로 다른 복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주시는 복음을 버리고, 거짓 교사들의 꾀임에 넘어가 다른 복음을 좇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매우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바울의 감정은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이 전파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7절 말씀을 봅시다.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따라서 거짓 교사들이 전파해 준 가르침은 참 복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거짓 형제들이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여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신 참된 복음을 그들이 거짓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8-9절을 봅시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계시 해 주심으로써 갈라디아 교회에 가르친 복음 외에 다른 복음, 즉 변질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8-9절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무려 2번이나 연속해서 강조해서 경고했습니다. ‘저주’라는 단어가 얼마나 강도가 센 언어입니까? 아이를 벤 아내가 유산하고, 태어난 자식들이 부모인 나보다 먼저 죽고, 내 손으로 하는 일마다 망하고, 평생토록 고통 가운데 살아가다가 죽을 때까지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쓰라린 아픔 속에서 죽는 것과 같이 참혹한 모습이 바로 저주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저주를 받을 만큼 악한 행위입니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만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예수의 공로 외에 자신의 공로를 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나의 죄를 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죽음이 나의 모든 죄를 씻기에 불충분하기에 내가 구원을 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서 선행이나, 구제나 봉사활동이나, 헌금을 통해서 지푸라기만큼이라도 나의 공로를 얹으려고 하는 순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헛되다고 말하며 그의 십자가 죽음을 조롱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바울이 전해준 것과 같이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자는 누구든지, 누구든지, 그 존재가 천상의 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은 이방인들 입장에서 보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고,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안식일 규례와 같은 절기 규례를 따르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적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와 같이 말한 이유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나,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파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이 복음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을 봅시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은 지금까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애오라지 그리스도의 종으로써 하나님을 위해서 이 복음을 전파해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전해준 그 복음이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하여 예수의 십자가 공로 위에 지푸라기 만큼이라도 나의 공로를 얹으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저주 받을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았음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이처럼 값없이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으신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날마다 감사하고 찬양하며 주를 섬기며 살아가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