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4 도와주시는 하나님 (이사야 41장 1-20절)

(오늘 새벽예배는 녹음파일이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주전 586년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보내시면서, 우상을 버리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의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강제 이주하였습니다. 조국을 멸망시킨 이방인의 땅에서 전쟁의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은 비참하고 매우 고단했습니다. 이와 같은 고통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섬겨온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연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대하신 분이신지 의심하고 불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전쟁에서 패하자,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모르독’이란 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바벨론의 노예 생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잊으신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했습니다.

이사야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 약 150년 전에 기록된 책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먼 미래에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가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고 섬기는 인류의 모든 역사를 정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 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향하여 “잠잠하라”고 말씀하신 후 함께 이야기해 보자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자고 하시는 걸까요? 2절부터 기록된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절을 보면, 동방에서부터 온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남 유다를 전쟁의 포로로 사로잡은 바벨론을 멸망시킬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입니다. 훗날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고 나면, 고레스가 왕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자유를 줍니다. 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세우라고 까지 말합니다. 이러한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며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보세요. “도대체 그 어떤 존재가 고레스를 동방에서부터 불러와서 열국을 그의 앞에 넘겨 주며, 왕들을 다스리게 하였느냐? 누가 원수들을 그의 칼에 먼지처럼, 화살 앞에 타 없어지는 지푸라기처럼 되게 만들었느냐?” 4절을 보십시오.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이 질문들의 답은 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즉 이사야는 미래에 일어날 인류의 모든 역사까지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4절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는 말은 “누가 시간의 첫 순간부터 만 세대 즉 영원 끝까지 어떻게 될지를 명령하고 정해 놓았느냐?”하고 묻고 있습니다. 4절의 답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인간은 곧 있다가 사라집니다. 우리 중에 조선 시대 산 사람도 없고, 앞으로 100년 뒤에 살아 있을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매우 짧은 인생을 살고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시간의 처음에도 하나님은 계셨고, 시간의 마지막에 가서도 계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와 같은 가르침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고 크신 분이신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열국이 벌벌 떨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을 봅시다. 5절을 봅시다. 섬들도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무서워서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기 주변 이웃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우리 힘냅시다”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도 서로 “잘하고 있다”하고 격려하며 우상이 거센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모든 순간을 다스리시는 크고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의 도구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심판의 때가 올 때 그들이 두려워할 필요와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심판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원수의 손에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8절을 봅시다.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사 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을 친히 주님의 종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싫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연약하고 사악한 죄인을 사랑하사 선택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비록 바벨론의 전쟁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킬 심판의 도구가 되어 전쟁을 일으키는 그 날이 되어도 이스라엘은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문맥에서 그 유명한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이 나옵니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도와주고, 그들을 붙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하고 말씀하신 것이 10절, 13절 14절 이렇게 총 세 번 나옵니다. 그런데 그 말씀 뒤에 동일하게 따라오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시고, 제국의 왕에게도 명령하시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가 그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우리 원수들이 도리어 수치와 욕을 당합니다. 우리와 싸우는 자들은 곧 멸망하고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강한 것처럼 보여도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마른 땅과 같은 우리의 삶을 생명샘으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마른 광야 같은 우리 인생이 나무가 울창한 숲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부를 때 주님은 응답하시고,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우리 삶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며 “과연 저가 믿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구나?! 저에게 은혜를 베푸셨구나?!”하고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온 천하만물을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도와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하셨는데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를 돕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로 말미암아 날마다 주님과 함께 기쁨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