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8 세상의 벗과 하나님의 벗 (야고보서 4장 1-12절)

세상에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고, 누리고 싶은 것을 몽땅 다 누리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돈은 언제나 부족하고, 물건은 사고 또 사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들이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쫄쫄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는 하루 한끼만 배부르게 먹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 세끼를 먹고 살면서도 자신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가난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가지면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조금을 갖게 되면 조금 더, 조금 더 갖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탐심입니다. 야고보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이유가 바로 인간의 끝 없는 탐심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있는데 수중에 돈이 없거나 모자라서 갖지 못하다 보니, 탐심에 의해 사람을 칼로 죽이기도 합니다. 또 내가 누리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 이웃들을 보면 시기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난리법석을 부려봐도 마음 속 탐심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며 울고불고 난리를 부리는 것과 같이, 어른들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져 안달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고 도둑질하고, 또 그 과정에서 주먹으로 때리고, 사람을 쳐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탐심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입니까?

2절 말씀을 보면, 야고보는 우리가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 이웃들과 주먹 다툼까지 이어지며 싸우고 있으나, 실상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다른 데 있다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달라고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 중 주지 못하실 것은 하나도 없으시지요. 그 귀하다는 다이아몬드도 금은보화도 주님께는 먼지와 같을 뿐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탐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필요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달라고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야고보는 한 가지 세부사항을 추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달라고 구하여도 결코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봅시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분명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구하는 내용이 우리로 하여금 죄악을 짓게 만들거나,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들이라면 주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잘못된 동기로 구하는 것은 아무리 구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세상에 대한 탐심과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을 갈망할 것을 권면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야고보는 우리가 세상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려고 하는 욕망이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4절을 봅시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우리나라 성경에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하고 번역되어 있는데, 사실 이 본문은 “간음하는 사람들이여!”하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간음하는 것은 결혼한 유부녀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난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랑해야 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데, 그 주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간음하는 사람들이여!”하고 야고보가 책망하며 부르고 있습니다. 세상과 벗이 되려고 한다는 것은 세상의 죄악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육체의 정욕과 마음의 탐심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삶이 결국에는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키며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살도록 만들 것이기에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구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다고 가정해 봅시다. 세상에 어느 남편이 두 눈 뜨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질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온 마음으로 드리는 온전한 예배를 받기 합당하신 하나님께서 주님께 드려야 할 우리의 사랑을 다른 데 쏟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5-6절을 봅시다. “(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성령은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예배하고 주님만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님 없이도 홀로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교만한 자들을 멸망하게 하십니다. 반대로 주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없으면 안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딱 달라붙어 살아가려고 하는 자들을 주님은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자들은 그들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겠으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권면합니다. 7절을 보시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라는 의미도 되고, 다시 말하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가라는 뜻도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인냥 온 마음으로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대적하다는 말은 큰 소리로 “마귀야 저리가라! 난 죄가 싫다!”하고 강하게 저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처럼 그의 유혹에 대항하면 마귀도 포기하고 우리에게서 도망칠 것입니다.

8절을 봅시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야고보는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가까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죄악에 물든 손을 씻고, 세상이냐 하나님이냐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정리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을 섬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좇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시도들을 멈추고 정결한 마음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와 유혹에 둘러 쌓여 있는 자신의 모습을 슬퍼하며, 죄악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오락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야고보는 우리가 웃음을 울음으로, 기쁨을 슬픔으로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우상들을 다 부셔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스스로 하나님만을 찾고,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온전한 사랑을 원하는 남편처럼, 주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을 향한 탐심과 육체의 정욕을 위해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도록 도전해 봅시다. 주님만을 사모하고,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붙들고 살아가기를 시도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와 복을 받는 귀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