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2 사도행전 강해 (1) 하나님나라와 성령 (사도행전 1장 1-5절)

누가복음은 신약성경에서 분량이 가장 긴 책입니다. 장수만 보면 마태복음은 28장이고, 누가복음 24장이라 마태복음이 더 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분량만 놓고 보면 누가복음이 마태복음보다 더 깁니다.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 다음으로 분량이 많은 책은 마태복음이고 그리고 세 번째로 많은 책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이 두 권의 책이 신약성경의 30%를 차지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울서신의 모든 글을 합친 것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합친 것이 더 많습니다. 요한복음, 요한 1서, 2서, 3서, 요한계시록을 다 합쳐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합친 것보다는 짧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약성경의 저자 중에 누가가 가장 많은 성경의 본문을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의 가장 많은 부분을 기록한 저자 누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들려주시려고 하신 메시지가 무엇인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누가복음은 상편, 사도행전은 하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 책인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지상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그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그의 부활과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사건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나눠지는 분기점이 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승천으로 끝이 나고 있고,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은 교회의 탄생으로부터 교회의 핍박과 사도들의 사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27권 중에 사도행전만이 유일하게 초대교회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앞으로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교회의 탄생과 그 성장 과정을 함께 볼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교회를 통해서 역사 속에서 나타나게 되었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지금도 교회 위에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교회에 주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계승하여, 계속해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코너스톤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누가는 그의 첫 번째 책인 누가복음 안에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그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정리하여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누가복음에는 빠진 부활과 승천 사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해 받으신 후에’란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곧바로 승천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부활 후 자신의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핵심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처음 가르치신 말씀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한 승천 직전 마지막에 가르치신 말씀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장소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천국’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시작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서 살아갈 때 임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서 살아가게 될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한 국가의 영토는 그 나라의 법이 다스리는 지역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 법이 미치는 지역까지만 한국인 것이죠. 제주도는 한국 입니까? 맞습니다. 울룽도와 독도도 한국 입니까? 왜냐하면 한국 법으로 다스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예로 한 번 들어볼까요?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입니까? 다시 비행기를 타고 괌에 갔습니다. 사이판에 갔습니다. 여전히 미국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모든 지역이 다 미국의 법으로 다스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주로 모시고 주님의 다스림 아래서 살아갈 때 내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게 될 때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우리 코너스톤 교회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주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운영해 나갈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미국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주의 말씀이 가르치는 방향대로 나라를 다스릴 때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까?
교회의 존립 목적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의 왕이요, 주로 고백하도록 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도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온 땅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계획이요,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비전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교회를 통해 열매 맺게 되는지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2.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우리가 읽고 있는 4절에는 단순히 ‘사도와 같이 모이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이 부분은 ‘사도들과 함께 같이 식사하실 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NIV를 보면 이 부분이 “While he was eating with them”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잡수시고 있으실 때입니다. 제자들은 꿈이나 환상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흐릿하게 본 것이 아니라, 일상속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식사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방인이었던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찾아가서 말씀을 전하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언급하며, 주님과 함께 식사를 했던 일을 언급합니다. 사도행전 10장 40-41절 말씀입니다. “(행 10:40)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행 10: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사도행전 10장 41절에서 베드로는 그 자신과 다른 사도들이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주님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성경은 예수의 부활이 확실한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던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너희가 내게 들은 대로 내 아버지가 약속하신 선물을 기다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사실은 역으로 생각하면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려 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예수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교 사람들과 예루살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언제 자신들을 붙잡아갈지 몰라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 사람들입니다. 집이 갈릴리에 있음으로 예루살렘에 굳이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구약성경에서 율법과 여호와의 말씀이 시작되는 장소입니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따라서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예언의 성취가 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신약 교회의 출발지로 삼기 원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 24장에서도 언급된 것입니다. “(눅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 임하실 때까지 예루살렘 성에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누가복음 마지막 말미와 사도행전 서두에 모두 언급되고 있을 만큼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 것은 신약 교회의 시작과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여는 획기적인 사건이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보호자를 그들에게 보내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도록 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없이 제자들만으로는 복음 전파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구하여 제자들이 성령과 함께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절 말씀입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이 오심으로써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은혜를 체험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임재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성령 강림의 약속을 기다리며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 물 속에 흠뻑 잠기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세례 받는 자는 성령의 충만함에 사로잡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 바울의 삶을 보면 그들이 성령 하나님의 지배 아래서 그의 인도하심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사도들에게만 한정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초대받아 말씀을 전하러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다 불러 놓고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후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가 죄 용서를 받는다는 말씀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4-4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행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베드로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들은 이방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1장에서 이 사건을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보고하며 성령이 처음 그들에게 임한 것과 같이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도 임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5-16절 말씀입니다. “(행 11: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행 11: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행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이와 같이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임하셨던 것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찾아오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죄사함과 그의 부활하심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성령을 따로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는 이미 그 안에 성령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요 나의 주인되심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안에 성령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기를 처음 그들에게 하신 것과 같이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초대교회에 임했던 성령은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베드로와 바울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모든 백성에게 주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이후로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 시대에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이 복음의 바통을 이어받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 아래서 살아가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였듯이, 우리들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복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