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6 깨어 기도하는 삶 (누가복음 21장 29-38절)


배경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구유에서 태어나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을 가리켜 ‘예수님께서 처음 임하셨다’하여 ‘예수님의 초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실 사건을 가리켜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하여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바로 이 시기를 마지막 때라고 부릅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가 바로 ‘말세’ 즉 ‘마지막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으나, 구체적으로 언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오시는 날짜를 알고자 성경을 연구했으나, 잘못된 날짜를 주장하는 이단들만 무수히 나왔을 뿐입니다. 사실 그 때가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를 모르고, 알 수도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그 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일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하고 물어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는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징조들은 누가복음 21장에 기록되어 있고,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거짓 예수가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2020년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에서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20명, “내가 재림 예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50명입니다. 너무 황당하죠? 문제는 이런 가짜 하나님과 거짓 그리스도를 내세우는 이단과 사이비 종교를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만도 수십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미국 내에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자칭 재림 예수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유튜브를 통해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교통 순찰하는 경찰 출신의 한 남자가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헤어스타일, 수염스타일, 옷스타일도 따라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재림 예수라고 추종하고 그를 따랐습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거짓 재림 예수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우면 거짓 자칭 예수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며, 그들에게 미혹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마지막날이 가까울수록 난리와 소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전쟁이 일어나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굶주림), 전염병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우리 세대에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전쟁, 큰 지진, 기근, 전염병 모두 다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하지만, 전쟁은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등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갈수록 지진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으며 그 강도도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근 즉 굶주림은 여전히 전 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염병은 오늘날 사스, 메르스, 코로나 등 전례 없는 펜데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으로 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세계적인 사건들이 바로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가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징조들입니다.
셋째로,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밝은 태양이 검은 상복처럼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이 흔들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땅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성난 소리들이 들림으로 사람들이 혼란한 세상을 보며 큰 두려움에 빠지고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일어나는 두려운 일들을 보며 무서워서 심지어 기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땅의 모든 민족들이 통곡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주님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입니다.

1. 주님은 비유를 통해 심판의 때가 임박했음을 가르치십니다.
1)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무엇에 비유하며 설명하십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서 언급한 징조들을 통해서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음을 분별하도록 권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른 봄이 아니라 봄의 거의 끝자락이 늦봄에 그 잎사귀를 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무화과나무에 싹이 피어나는 것을 보며, ‘이제 조금 있으면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겠구나?’하고 계절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에 하늘을 보고 노을이 붉으면 다음날 날씨가 좋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예가 되겠습니다.)
오늘 31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이처럼 사람이 자연에 피어나는 잎사귀를 보고도 때를 구별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앞서 언급한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눅 21: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임하였다.”고 현재적으로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오늘 본문과 같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시며 미래에 임할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헷갈리곤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인가? 아니면 아직 임하지 않은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한 것입니까? 아니면 아직 임하지 않은 것입니까? 성경은 둘 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으나, 동시에 아직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The kingdom of God is already here in the world, but not yet in its fullness.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 임하였으나, 아직 온전히 임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이중구조’라고 부릅니다. 이미 임하였으나, 아직 온전히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이중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로 비유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아기는 이미 존재합니다. 지금 눈에 당장 아기가 보이지 않아도, Sonogram(초음파)을 통해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불러오는 어머니의 배를 보고 그 아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기가 온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는 주민등록번호, Social secret number도 없습니다. 출생신고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출생신고는 출산 이후에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엄마 뱃속에 아이는 있습니다. 생명이 있고, 손과 발 심장도 다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히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해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개인이 예수님을 그의 구원자요 주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서 살아가게 될 때 그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이미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와 같이 한 가정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살아가게 될 때 그 가정 안에는 온전하지는 않아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고, 사회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임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나라 입니다. 예수님의 꿈은 온 세상 열방이 하나님의 나라 되는 것입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여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서 살아가는 그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나라에 임하옵시며”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임하는 한 개인의 삶, 한 가정, 한 교회, 한 사회 공동체, 한 나라, 열방이 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오늘 본문 31절을 보면,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 시작되고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이중구조로 본다면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미래적 하나님나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그 나라가 올 것입니다.

2) 이 모든 일(성전 파괴)은 언제 일어납니까?
언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32절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사실을 들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읽으며 헷갈려 하는 부분이 발생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면, 1세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다 나타나고 이미 재림하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은 32절에 나오는 ‘이 세대’를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32절에 나오는 ‘이 세대’라는 표현을 1세기 유대인들로 해석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예루살렘이 멸망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예언 자체가 이중 예언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32절에 말씀하신 ‘이 세대’는 예수님 당시에 살아갔던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를 목격한 1세기 당시의 유대인들을 의미할 수도 있고, 동시에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마지막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본문을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이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반드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다 이루어지고 반드시 이 세상의 끝이 온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이 마지막 때의 일도 반드시 이뤄질 것임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33절에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의 지붕이라고 불러지는 히말라야 산맥이나, 저 웅장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알프스 산맥이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미국 대륙이 사라지고, 아시아가 지도에서 지워진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년 뒤 만년 뒤 일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만은, 예수님의 말씀만은 영원할 것이란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재림, 구원의 약속, 심판의 경고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뤄질 것입니다.

2. 심판을 면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성도의 삶을 일깨우십니다.
1) 마음을 둔하게 하는 것과 깨어 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 마지막 날, 심판의 때가 있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4-3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자들에게 세가지를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방탕함, 둘째는 술취함, 셋째는 생활의 염려입니다. 방탕하다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삶을 무절제하게 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죄가 제어되지 않으면 동물과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은 그와 같이 무절제한 삶을 경계하셨습니다.
둘째로, 술에 취해 살아가는 것은 과도한 욕망에 이끌려 세상에 취하여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초점이 진리에서 벗어나 세상 것에 휘둘려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물질에 취하고, 돈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도 과음한 사람과 같이 목표 지점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똑바로 걸어가지 못합니다. 욕망에 취해 있는 사람은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들의 마음을 진리로부터 둔감하게 만드는 것은 생활의 염려입니다. 하루하루 삶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별히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오는 걱정, 내일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오는 두려움과 근심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나뉘어져서 ‘근심’과 ‘걱정’이 가드 찬 상태입니다. 이러한 경우 하나님을 따르려는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일어나는 염려가 예수님을 따라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탐욕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염려 또한 사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혹시 우리 마음이 과도한 욕망에 마음을 빼앗긴 것만큼, 생활의 염려에 우리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닌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님의 오심을 위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 때가 뜻밖에 ‘덫과 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주님께서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늘 우리가 죄로 인해 멸망의 심판 당하지 않고, 최후의 날에 주님 앞에 서는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눅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여기서 ‘모든 일을 능히 피하다’란 말은 마지막 날에 임할 환난을 받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인자 앞에 사다’는 말은 마지막 날에 재판관 되시는 예수님 앞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주님의 참 제자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말은 말 그대로 24시간 기도만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기도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늘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함을 가리킵니다. 즉 기도란 것이 꼭 골방에 들어가서 무릎 꿇고 두 눈을 감는 것만을 기도로 생각한다면 오늘 본문의 명령은 아무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주님과 교통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기에 세상의 방탕함과 사단의 죄의 유혹을 대적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깨어 항상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살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3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낮이면’이란 말은 ‘매일매일’이란 뜻입니다. 오늘 본문이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에 대한 기록이란 것을 생각해본다면, 예수님은 자신이 처절한 십자가 죽음을 몇 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아시고도,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생명을 살리는 진리의 말씀을 무리들에게 선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사명을 위해 모두 불태우며 사셨습니다. 영국의 신학자이며 위대한 설교자라고 알려진 ‘조지 휫필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기를 원한다.”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에 빠져 있는 사람은 녹슬어 없어지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중에 그와 같은 삶을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매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매순간 깨어 있지 않으면 누구라도 그와 같은 녹슨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녹슬어 없어지는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항상 기도함으로 깨어 있어 하나님을 위해 닳아 없어지는 인생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에 다가올 모든 환난을 피하고 재판관이신 예수님 앞에 섰을 때 그 분이 우리를 칭찬하시고 하나님나라 안에 들어가 영원토록 주와 함께 살아가는 영광스런 구원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