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0 세례 요한과 예수님 (누가복음 7장 18~35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예수님 위에 머물렀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신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직접 보지 못하고, 그의 제자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지 의심했던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맞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습니다. 19절입니다. “(눅 7: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선생님이 오실 그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질문을 물어보았고, 때마침 예수님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치시고, 악한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많은 소경을 또 보게 하고 계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이 광경을 곁에서 함께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스승 요한에게 그들이 본 것을 그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2절입니다. “(눅 7: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치유와 회복의 사역은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아가 오시면 하게 될 일을 그대로 성취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자신이 메시아 가 와서 할 사역을 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이후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정체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24-26절에 무려 세 번씩이나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라는 동일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물어보셨습니다. 24-26절입니다. “(눅 7:24) 요한의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눅 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눅 7: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으로 나아간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 위함도 아니었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치하게 지내는 자를 보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요단강으로 찾아간 이유는 세례 요한을 보고 직접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선지자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바로 자신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예수님 앞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라고 설명합니다. 27절입니다. “(눅 7: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7절에서 인용된 말씀은 말라기서 3장 1절 말씀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 약 400년 전에 기록된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말라기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 앞 길을 예비할 사자로 엘리야가 올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27절에서 말라기서를 인용하심으로써 세례 요한이 바로 그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 자신이 바로 구약성경에서 오시리라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밝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했으나,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의 출현을 직접 보고 그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28절에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가리킵니다.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세례 요한의 때까지 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시기 전 즉 세례 요한의 때까지는 모세의 율법 아래 놓인 ‘옛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새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따라서 옛 시대의 정점에 서 있던 세례 요한보다도, 새 시대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요한 보다 더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바로 이 새 시대에 태어난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백성들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수긍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에 참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거부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 및 악한 세대를 가리켜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에 비유했습니다. 31-32절입니다. ”(눅 7:31)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눅 7:32)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역할놀이를 하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 놀아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결혼식 놀이를 할 때면 즐거운 척하기 위해서 함께 피리를 불어주고 춤도 춰줘야 합니다. 장례식 놀이를 할 때면 슬픈 척하기 위해서 곡을 하고 우는 척이라도 해야 합니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이 삐지겠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뜻과 고집을 굽히지 않는 자들이 바로 시장터에서 역할 놀이하는 어린 아이들 같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와서 금식을 하니까, “저 사람은 귀신이 들려서 저렇게 안 먹고 금식한다!”하고 정죄하고, 예수님은 와서 먹고 마시니까,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다!”하고 정죄했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자기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대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따라주지 않자 그들을 배척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을 구원자요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대는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사처럼 자기의 욕심과 고집을 따라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길을 막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같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