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6 다섯가지 환상과 다윗의 장막 (아모스 9장 11-12절)

우리는 지난 주 금요예배를 통해 아모스에 나오는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모스 1장부터 6장까지는 왜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죄악상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뇌물수수, 인신매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행, 성적타락, 신앙생활의 변질과 타락, 지도층의 부패 등 북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죄악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이건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아모스의 가장 핵심구절인 아모스서 5장 24절 말씀을 통해 “물이 흘러가듯이 공법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나라가 되라. 시냇물이 졸졸 끊임없이 흐르듯이, 너희들 가운데 정의도 그렇게 흘러가게 하라.”는 것이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아 너희들이 드리는 제사(예배), 찬양, 헌금 이런 것 나 다 필요 없다. 제사 그만 드리고, 찬양 연주하는 악기 다 던져 버리고, 헌금(제물) 가지고 오는 거 나 다 필요 없다. 부디 죄악을 그만 짓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라. 그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서이 담겨 있는 책이 바로 아모스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다니지만, 교회 밖의 생활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각심을 울리는 책입니다. 예배는 빠지 않고 참석하는 김집사님 그러나 밖에 나가서는 회사에서는 사람들하고 맨날 싸웁니다. 십일조는 꼬박꼬박하는 박집사님 그러나 가게에 가서는 Tax 보고 거짓으로 합니다. 교회에서는 인자한 이집사님 그러나 가정에서는 아내랑 맨날 싸우고 욕합니다. 이런 분들 과연 신앙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예배, 찬양, 헌금 다 싫어하신다는 거에요. 종교행위로써 드리는 예배 말고, 진정한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라는 것이 아모스서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더 큰 죄악을 지으며 살아가지요.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시사 이 나라를 멸망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모스 5장 27절을 보십시오. 여기에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암 5:27)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당시 다메섹은 유럽과 아시아로 가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입니다. 따라서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간다는 말씀은 나라가 멸망해서 다 포로로 끌려간다는 내용입니다. 즉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군에게 멸망한 후 전쟁 포로로 사로잡혀 다메섹을 지나 이곳 저곳으로 팔려가 흩어져 살게 될 앞날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아모스 6장 14절도 봅시다. “(암 6:1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나라를 하나 일으키셔서 북이스라엘을 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나라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입니다. 말씀을 보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앗수르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북이스라엘을 학대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맛 어귀는 여로보암 2세 왕 때 확장했던 북이스라엘 영토의 북쪽 경계 지역을, 아라바 시내는 남쪽 경계 지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런 표현이 됩니다. 미국식으로 바꾸면 “LA에서 보스톤까지” 북이스라엘의 영토 끝에서 끝까지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모스는 대략 BC 760년경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도에 멸망합니다. 그러니까 이 내용은 약 40년 뒤에 정확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아모스 7-9장에는 이와 같이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확실히 멸망될 것을 보여주는 총 다섯가지 환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뚜기 환상, 불 환상, 다림줄 환상, 여름 과일 환상, 성소 붕괴 환상입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메뚜기 환상
첫 번째 환상은 메뚜기 환상입니다. 아모스 7장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암 7:1)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암 7:2)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암 7: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메뚜기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농부가 처음 심은 곡식은 왕과 지도자들에게 세금으로 냈습니다. 본문에서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한다는 말은 이제 농부가 자신의 가족과 가축이 먹을 것을 농사 지은 것이 다시 자라날 때라는 뜻입니다. 이 농사가 망하면 다음 추수 때까지 굶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중요한 때에 하나님께서 메뚜기 때를 보내시겠다는 거에요.
우리가 지난 번에 요엘서 보면서 메뚜기에 대해서 한 번 다룬 적이 있죠? 우리 성인 남성은 자기 몸무게의 1/30 밖에 못 먹지만 메뚜기는 자기 몸무게만큼 먹습니다. 그런 메뚜기 떼가 최소 1억마리에서 천억마리 한 번 날고 지나가면 그 지역은 남아나는 게 없는 거죠. 이처럼 메뚜기 때가 지상의 풀을 모조리 다 뜯어먹는 것처럼, 북이스라엘을 치는 구내가 메뚜기 때처럼 쳐들어와서 북이스라엘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입니까? 아모스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실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메뚜기 환상을 보여주시니까 두렵고 떨리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2절을 보니까 아모스가 손발이 닳도록 하나님께 싹싹 빌지요. 하나님 아버지 북이스라엘이 어린 아이 같이 미련해서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어리석고 미숙한 이 나라라서 연약합니다. 안 그래도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메뚜기 재앙으로 나라를 멸하시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하나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모스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3절에 보니 “(암 7: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모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시고 메뚜기 떼와 같은 군대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실 일을 취소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런 장면들을 통해 한 사람의 기도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가정을 살리기에 충분하고, 한 사람의 기도가 교회를 살릴 수 있고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2) 불 환상
둘째 환상은 불 환상입니다. 7장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암 7: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두 번째 환상은 바다와 육지를 삼킬 정도로 큰 불 환상입니다. 성경에서 불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커피나 차 마시려고 뜨거운 물 끓이다가 물이 한 두 방울 손에 튀었다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따갑습니까? 빨리 차가운 물에 손 담가야 합니다. 그런데 물도 아니고 불이 온 땅을 삼키고 있으니 두려운 심판이죠. 이 심판에 대해서도 아모스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 뜻을 돌이켜 달라고 요청합니다. 5-6절 말씀을 봅시다. “(암 7:5) 이에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암 7: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모스가 요청한 내용은 앞서 메뚜기 재앙 때와 똑같습니다. 북이스라엘 불쌍하게 봐달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모스의 요구를 들어주신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자식을 체벌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자식처럼 아끼시는데 왜 멸망시키고 싶으시겠어요? 그래서 아모스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 또 불 재앙을 취소하신 것이죠.

3) 다림줄 환상
세번째 환상은 다림줄 환상입니다. 아모스 7장 7-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암 7: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암 7:8)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암 7: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세번째 환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림줄’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건물을 세우기 위해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그런데 벽돌이 똑바로 세워졌는지, 아니면 삐뚤삐뚤하게 세워졌는지 눈으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 건축가들이 쓰는 것이 다림줄입니다. 얇은 줄이나 실 끝에 추를 하나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추를 천천히 떨어뜨리면 실이 일자로 고정되겠지요? 다림줄을 통해서 벽이 수직으로 잘 쌓여가고 있는지 아니면 삐뚤삐뚤하게 튀어나온 벽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다림줄로 측량해보고 벽이 너무 경사지거나 삐뚤어져 있으면 건축가는 과감하게 벽을 부십니다. 아모스가 환상 가운데 보니까 하나님께서 쌓여 있는 담 곁에서 이 담이 똑바른 지 아닌지 보시기 위해 친히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 계신 거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실을 다림줄로 측량해보신 결과 북이스라엘은 용서할 수 없는 존재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이 넘쳐나서 이제는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환상과 두 번째 환상으로 보여주신 재앙과 심판은 아모스의 중보기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이들을 향하여 “돌아와라”, “회개하라” 거듭 말씀하셔도 듣지를 않으니,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심판 밖에 없습니다. 8절 보니까 하나님께서 다시는 용서치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9절에 하나님께서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케 되고, 성소들을 훼파될 것이라 하셨는데 이것들은 다 우상에게 제사드리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모든 곳을 완전히 없애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지 못하고 죄악의 길로 인도한 북이스라엘의 왕 여러보암의 가문을 완전히 심판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4) 여름 과일 환상
네 번째 환상은 여름 과일 환상입니다. 아모스 8장 1-3절 말씀입니다. “(암 8:1)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암 8:2)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암 8:3)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 번째 환상은 우리로 하여금 고개를 기우뚱거리게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과 멸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생뚱맞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 환상을 보여주고 계신 것일까요? 이 네 번째 환상은 한글 성경만 읽으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문을 설명하기 전에 한 번 이런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몇일 전 아내에게 큰 잘못을 한 남편이 있습니다. 오늘 집에 들어가면서 아내에게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빈손으로 집에 가고 싶진 않습니다.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사갈까 고민하다가 “아, 이왕에 사과하는 김에 가게에 들러 사과를 사가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음에 사과를 하기 위해서 과일 사과를 사간다. 이게 바로 언어유희입니다. 요즘 통 감이 떨어졌다고 이야기하는 회사 후배에게 감 잡으라고 과일 감을 사다주는 것도 언어유희겠죠. 이처럼 발음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를 뜻을 가지고 있는 두 단어를 사용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언어유희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름 과일 환상은 바로 이러한 언어유희를 활용한 환상입니다. 히브리어로 ‘여름 과일’은 ‘카이츠’라고 발음합니다. 또 ‘마지막’ 혹은 ‘끝’이란 뜻을 가진 히브리어 단어의 발음이 ‘케츠’입니다. 여름 과일을 딸 때가 가까울 정도로 끝이 왔다는 뜻도 됩니다만,

5) 성소 붕괴 환상
다섯 번째 환상은 성소가 붕괴되는 환상입니다. 9장 1절 말씀입니다. “(암 9:1)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륙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여기서 성소는 북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건물에서 기둥이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건물 속 있는 살람들 다 죽습니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졌어요?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 지름을 25% 이상 줄여버렸어요. 또 기둥 안에 있어야 할 철근이 없었어요. 그나마 철근 있는 것도 자재비 아낀다고 개수도 줄였어요. 부실공사죠. 기둥이 무너지니까 건물이 다 무너져 내린거죠. 502명이 죽고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이 발생했습니다. 한 순간에 수백명이 죽어버린 거에요.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성소의 기둥 머리를 치십니다. ‘기둥 머리’란 기둥의 맨 윗부분을 말합니다. 성소의 기둥이 쓰러지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천장에 깔려 죽게 됩니다. 또 그 중에 혹 살아남은 자를 하나님께서 칼로 죽이십니다. 한 사람도 도망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일차적으로는 아모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한 것입니다만, 또 다른 차원으로 보면 마지막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이 세상에서 벌어질 심판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을 피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는 부질없는 짓입니다. 왜냐하면 죽음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피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2절을 봅시다. “(암 9:2)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음부로 피해도, 무덤에 들어가도, 죽음으로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도 주님이 지구 끝까지 좇아가서 심판하십니다. 3-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암 9:3)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암 9:4)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로 결정하셨으니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갈멜산은 가장 높은 산입니다.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가서 숨어도 하나님이 찾아내시고 심판하시겠다는 거에요. 저 태평양 바다 밑에 숨을 지라도 하나님이 뱀을 보내셔서 물게 만드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성소 붕괴 현상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하시기로 확정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이처럼 다섯가지 환상은 눈에 그려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확실하다는 것을 쐐기를 박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6) 무너진 다윗의 장막 회복
자, 이처럼 북이스라엘에 대한 확실한 심판에 대해서 예언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선지서를 볼 때 4가지 관점 중 가장 마지막 내용이 무엇이죠? ‘구원’입니다. 아모스서 9장 11-15절까지의 내용으로서 비록 4구절 밖에 안되지만, 아모스의 마지막 부분에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1-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암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세우고 (암 9:12)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과연 이스라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11절을 보니,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신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하는 사실은 북이스라엘은 멸망한 후 다시 북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후로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통일을 전제로 한 하나의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윗의 후손에게 왕위를 물려주시겠다는 야속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다윗의 왕조를 회복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이 어떻게 성취됩니까? 바로 신약에 오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됩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회복된 다윗의 장막 가운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독특합니다. ‘에돔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회복시켜 주시는 새로운 다윗의 장막은 에돔의 남은 자들과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지배하게 될 것이란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이 어떻게 성취됩니까? 신약시대의 교회가 유대인을 뛰어넘어 이방인에게도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주님께 돌아오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교회에 올라가 선교보고를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가 열린 것이죠. 사도들과 교회 장로들이 다 모여 있는 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일과 그로 인해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예수를 믿은 놀라운 사건들을 보고했습니다. 이 때 총회 안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 이방인이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도 모르고 전혀 지키지도 않는 저 부정하게 여겨지는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인정하기가 싫은 거죠. 바울과 바나바처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이유가 있는가? 그렇게 하는데 문제는 없는가? 이런 토론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방인이었던 백부장 고넬료와 그 가정이 자신의 복음 전도를 통해 믿게 되어 성령을 받은 사건을 증거합니다. 그 후 예수님의 동생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중 한 사람인 야보고가 일어납니다. ‘앞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할 것인가? 아니면 유대인에게만 한정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것인가?’ 이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을 때 그는 바로 오늘 본문 아모스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3-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행 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행 15: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행 15: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행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행 15: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행 15: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에 모인 사도들과 교회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회복되는 역사라는 것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참 이스라엘은 혈통적 유대인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모든 이방인으로 구성된 모든 민족이 포함된다는 주장과 선포가 예루살렘 초대 총회를 통해 결정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가 바로 회복된 다윗의 장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