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5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장 29-34절)

(고전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오늘 본문은 아주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안에는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를 받는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 입니다. ‘어떻게 이미 죽은 자를 위한 세례가 있을 수 있는가?’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해석은 수십가지가 넘습니다. 그러나 가장 통용되는 해석은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리라는 소망으로 세례를 베푼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죽은 자를 위해 베푸는 세례는, 오늘날 교회에서 인정하는 세례는 아닙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이 이 세례에 대해서 긍정하는 부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죽은 자를 위해 세례를 받는 의식을 하는 것은 자가모순적인 행위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이유는 부활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기에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아갔습니다. 30-31절을 봅시다.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바울은 이 세상에서 고난 당하고, 핍박 받는 것을 자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죽는 것과 방불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고난 뒤에, 비교할 수 없는 부활의 영광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활을 믿었기에 담대하게 “나는 날마다 죽노라”하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라는 각오로 날마다 살아갔습니다.
32절을 봅시다. “(고전 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극심한 환난 속에서 사역 했습니다. 얼마나 치열한 환난이었는지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며 자신이 ‘맹수와 더불어 싸운’ 격투사와 같이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그와 같이 모진 고통을 참아가며 죽을 각오로 복음을 위하여 싸운 이유는 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부활이 없었더라면 바울은 ‘어짜피 죽으면 끝인데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지 않았겠는가?’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32절에 바울이 말한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는 말은 이사야 22장 13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앗수르에게 멸망하는 가운데도 그 하루 전날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회개한 것이 아니라, “어차피 내일이면 다 죽게 될탠데 먹고 마시자!”하고 끝까지 향락을 즐기다가 심판을 받고 죽었습니다. 바울은 만일 부활이 없다면,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도 그와 같이 쾌락을 위하여 살아가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한 것이죠.
바울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이런 거짓 주장에 속지말라고 권면했습니다. 33-34절 입니다.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이후 하나님의 심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찌 죄를 짓고 악행을 일삼고 세상 쾌락에 빠져 살아가겠습니까? 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거짓말하는 악한 사람들의 꾀임에 빠져 선한 삶을 더럽히지 말고, 깨어서 죄를 짓지 말고 의를 행하며 살아가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는 죄악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지만, 부활을 믿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의를 행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 탐심과 육체의 정욕을 위해서 살아갈 뿐입니다. 세상의 헛된 것들에 굴복한 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의 시선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더 이상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힘쓸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어떤 핍박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의의 길을 향해 나아갈 힘이 있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소망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만큼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소망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것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선을 하늘에 두고 부활을 소망하며 하나님 앞에 설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부활이 있기에 육신의 정욕을 피하고, 영원한 삶을 준비하기 위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함으로써 영광의 부활이 이르는 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