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4 보아스와 룻의 결혼과 오벳의 탄생 (룻기 4장 1-22절)

(룻 4:1)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룻 4:2)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룻 4: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관할하므로
(룻 4:4) 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그가 가로되 내가 무르리라
(룻 4:5)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지니라
(룻 4:6)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룻 4:7)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룻 4: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룻 4: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룻 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룻 4: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룻 4:12)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룻 4: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룻 4: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룻 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룻 4:16)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룻 4: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룻 4:18)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룻 4: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룻 4: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룻 4: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룻 4:22)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1. 손해를 감수하고 기업 무를 책임을 감당하려 하는 보아스
보아스는 룻에게 자신이 ‘기업 무를 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 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보아스는 자신보다 엘리멜렉과 더 가까운 친족이며, ‘기업 무를 자’의 자격을 우선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갔습니다. 마침 그가 보아스 앞을 지나가자, 보아스는 그를 앉혀두고 또한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증인으로 함께 앉게 했습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우선권이 있는 자에게 그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것인지 아닌지 물어 보았습니다. 보아스는 그가 만일 그 의무를 감당하려 한다면 엘리멜렉의 부인 나오미로부터 그의 소유지를 사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보아스는 만일 그가 기업을 무르려거든 모암 여인 룻의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룻과 계대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보아스는 이처럼 죽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책임져야 하는지 언급함으로써 진중하게 그 사람에게 그럴 의지가 있는지 물어보았던 것 입니다. 정리하자면, 기업 무르는 자는 자신의 돈으로 직접 나오미와 룻을 위해 밭을 사 주어야 합니다. 또한 룻과의 계대 결혼을 통해 낳은 자식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룻의 죽은 남편인 말론의 직계 자녀들로 간주 됩니다. 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이에 기업 무를 우선권이 있는 자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는 선택이 자신에게 어떠한 경제적 이익이 되지 못하고, 큰 손해만 돌아올 것으로 판단하고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진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의 저자가 이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갖고 있던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는 ‘아무개’로 소개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업 무를 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이 사람을 중요하지 않게 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자신에게 큰 희생이 따르더라도 어려움에 빠진 민족과 형제를 도와주는 일은 하나님 보실 때에 옳은 일입니다.
이전부터 이스라엘에 내려오던 하나의 관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이 자신이 가진 권한을 상대방에게 넘겨주거나, 혹은 재산을 사고 팔 때에 그 사실을 확정 짓기 위해서 자신의 신발 한 짝을 벗어 상대방에게 벗어주는 관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까운 친척은 보아스에게 자신이 가진 기업 무를 권한을 사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신발 한 짝을 벗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자신 곁에 있던 열 명의 장로들과 현장에 있었던 백성들을 증인 삼아 자신이 죽은 엘리멜렉과 그의 죽은 두 아들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소유지를 나오미의 손에서 샀음을 증거하게 했습니다. 또한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을 자신의 아내로 사서 죽은 말론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게 하여 그 가문의 이름이 형제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기로 한 결정의 증인들로 삼았습니다.
앞서 보아스 보다 기업 무르는 일에 우선권을 가진 자가 이것을 포기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보아스가 큰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나오미와 룻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보아스 입장에서 보면, 이방 여인인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는다는 것도 유익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자신의 친족인 죽은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의 가정을 위해 자신의 의무를 감당하기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를 따지기 보다 율법의 정신을 이루는데 더 존중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보아스가 계산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며, 이웃을 위한 자기 희생과 사랑의 정신이 깃든 멋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보아스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보다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뻐하시고 또 원하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죄인을 사랑하시사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려 놓으신 것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삶의 최고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발자취를 밟아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내 자신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많이 쌓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은 버려야 하며, 우리가 가진 시간, 물질, 에너지를 통해서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섬기고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할 표준 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굶주린 이웃들을 위해 바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과 섬김의 사랑은 초대교회에 놀라운 숫자의 복음 전파와 부흥의 은혜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랑은 늘 희생을 요구 합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결코 상대방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와 같이 희생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아무것도 나누어 주지 않고 여전히 상대방을 사랑하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의 본질은 나눔과 자기 희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입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을 위하여 보여준 희생의 사랑처럼 우리들도 이웃들을 사랑하기 위한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이웃에게 은혜를 베푼 보아스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더 큰 은혜
이와 같이 보아스가 손해를 감수하고 죽은 엘리멜렉의 가문을 다시 세워주려고 하자, 성문에 모인 백성들과 장로들은 그를 축복했습니다. 이 축복의 기도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은혜를 베푼 보아스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한 내용 입니다.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고자 하자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라고 그를 축복 했습니다. 보아스와 룻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자녀가 번성하고, 이스라엘에 길이길이 기념이 될 조상으로 남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실제로 보아스와 룻 두 사람의 이름은 마태복음에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타남으로써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은혜를 베푼 보아스와,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공양한 은혜를 베푼 룻을 기억하사 그들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축복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보아스를 축복하며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라고 축복했습니다. 이미 보아스는 그 지방에서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보아스가 지금보다 더 잘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아스가 유력한 자임에도 겸손한 태도로 가난한 자들을 잊지 않고, 자신의 재산에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이웃을 향한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보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을 더욱 높여 주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높아지기 위해 이웃을 짓밟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낮추시고 멸하십니다. 반대로 스스로 높아지려 하기보다 이웃들에게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이웃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는 받기만 하고 나누지 않으면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은혜를 사랑과 섬김으로 흘러가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가진 사명은 그 은혜를 이웃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은혜는 베풀수록 커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을 거저 받은 사람들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3.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가운데 보아스와 룻의 결혼으로 오벳이 탄생함
나오미는 모압으로 이사간 후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가문이 끊어지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한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녀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녀의 삶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를 통해 기업을 회복시켜 주셨고, 보아스와 룻을 통해 가문을 이어갈 아이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올 때만 해도 가난하고 기업이 끊어진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크신 은혜를 베푸사 기업 무를 자와 상속자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완전히 막혀 있었던 나오미의 인생에 새로운 소망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나오미 자신도 이와 같이 그녀의 삶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소망도 없어 보였던 그녀의 삶을 능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의 망가진 인생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처음에 베들레헴에 나오미가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혀를 차며, 그녀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인들은 손자 오벳을 품에 안고 있는 나오미와 함께 기쁨의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룻에게 아들을 주신 것은 나오미와 룻 두 사람만의 기쁨이 아니라, 온 마을에도 기쁨과 감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 되었습니다. 절망 뿐이었던 한 가정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자 찬송과 축복이 가득 찬 인생으로 변화하였습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란 뜻을 가진 이름 ‘오벳’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이름은 이웃 여인들이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외할머니 나오미를 ‘봉양할 자’란 의미로 지어진 것 입니다.
성경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으로부터 시작된 놀라운 족보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오벳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가 오벳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이 룻기 마지막에 기록된 이 족보는 하나님께서 버림받은 것과 같은 자들의 삶에 크신 은총을 베푸셔서 기적 같이 그들의 삶을 회복하시고, 그 자비와 긍휼이 시대를 뛰어 넘어 끝없이 풍성하게 이어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룻기는 ‘절망’으로 시작하여 ‘소망’으로 끝이 납니다. ‘죽음’으로 시작하여 ‘탄생’으로 끝이 납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자와 하나님께 돌아온 자의 삶을 분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는 룻기의 특징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떠난 자의 삶에는 괴로움과 좌절, 고통과 절망이 찾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돌아오는 자의 삶에는 기쁨과 감사 그리고 감격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남편도, 두 자식도 모두 잃어버린 나오미의 쓰디 쓴 인생을 놀랍게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녀의 삶에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셨습니다.
혹시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나오미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회복의 여지가 없어 보이고, 희망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놀랍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그 어떤 위기도 기회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 혹은 가정이 위기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나오미와 룻과 같이 하나님 은혜 안으로 들어 오십시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과 풍성한 은혜로 우리의 삶과 우리 가정을 반드시 다시 한 번 일으켜 주시고 세워 주실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모든 자는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주님께 돌아와 우리 삶의 수많은 문제와 위기를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위기는 기회가 되고, 우리 삶의 문제들은 해결되며, 절망 속에 있었던 그 어떠한 삶도 하나님께서 능히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과 코너스톤교회 모든 가정 위에 풍성하게 역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