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7 스스로 낮추시며 천지를 살피신다 (시편 113편 1-9절)

(시 113: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 113: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시 113:3)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시 113:4)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시 113: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시 113: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시 113:7)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시 113:8)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시 113:9)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시편은 총 150개의 시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 중 대다수는 표제를 통해서 저자를 알 수 있습니다만, 그 중 34편의 시는 누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13편 역시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 속에서 지은 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성격만큼은 분명합니다. 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은 시 입니다. 특별히 히브리인들은 유월절과 같은 종교 절기에 가정과 성전에서 이러한 찬양시들을 즐겨 불렀습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본시 역시 유대인들이 절기에 즐겨 부르던 시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성경을 펼치고 계신 분은 한 번 시편 113편을 보십시오. 이 시의 첫 번째 구절 첫 번째 단어가 무엇입니까? ‘할렐루야’ 입니다. 그럼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의 마지막 단어가 무엇입니까? 또 ‘할렐루야’ 입니다. 시편 113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이 납니다. 이는 시인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찬양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 보면 ‘찬양하라’란 말이 두 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할렐루’라는 말이 찬양하다란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된 것이죠. 성경에서 세 번 강조하는 것은 영어의 최상급과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여호와의 종들을 향하여 가장 강한 어조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시인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보여주는 대목 입니다.
시인은 2절에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시 113: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은 매 일 매일, 매 순간마다, 언제든지 주님을 찬양하라는 말씀 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슬프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승리의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패배의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독교는 찬양의 종교 입니다. 우리는 한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그 순간부터 심지어 그의 생명이 다하는 장례식의 현장에서도 찬양을 부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주의 백성이 살아야할 삶의 모습 입니다.
3절을 봅시다. “(시 113:3)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란 말은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온 세상 가운데 여호와를 향한 찬양이 울려 퍼질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4절에 기록한 것처럼 여호와께서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고, 그의 영광이 하늘 위에 높이 있기를 간절히 사모 했습니다. 우리들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찬양이 드려지고 있습니까? 내 가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까? 내가 속한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높으신 분임이 선포되고 있습니까? 오늘 시인은 모든 공간, 모든 영역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되기를 갈망했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갈망이 우리들의 마음이길 축복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세상,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갈망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 입니다. 찬양을 부를 때 주의 나라는 임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찬양을 부를 때, 우리 가정은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찬양을 부를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가게나 직장 가운데 찬양을 부를 때 그곳이 하나님 나라가 되는 곳입니다.
시인은 5절부터 9절까지 우리가 찬양을 드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합니다.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대적할 자 없이 가장 높은 보좌에 앉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위대하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약하고 천한 인간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스스로 낮추시는 분이십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 입니까? 또한 6절에서 “스스로 낮추사”란 이 표현은 신약성경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높은 보좌에 앉으신 우리 구주 예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스스로 낮추사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어찌 주님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 ‘궁핍한 자’들을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즉 억울한 자들, 힘없는 연약한 자들을 주님께서 붙드십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을 주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또한 9절을 보시면,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임이라는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신적인 능력으로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대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그 집안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곤 했습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처한 잉태하지 못한 여자가 자녀를 낳아 즐거운 어머니로 살게 하셨으니 얼마나 그 기쁨이 크겠습니까? 주님은 이와 같이 우리 삶의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시고, 우리 삶에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시인은 이러한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주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장 최근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한 순간이 언제 입니까? 마음을 모아, 두 손을 들고 혹은 눈물을 흘리며, 가슴 벅찬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한 순간이 언제 입니까?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며, 높은 하늘 보좌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주의 능력을 통해 우리들을 보살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 마음 다해 찬양하는 오늘 하루 남은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