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8 폭풍 가운데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마가복음 6장 45-52절)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다가 험한 물결을 만납니다. 거센 바람이 불러온 거친 물결과 높은 파도가 그들의 항해를 막고 무려 9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폭풍 속에서 제자들은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앞서 마태복음 8장에서도 바다에 일어난 폭풍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경험이 있었습니다만, 차이가 있었다면 그 당시 배 안에는 비록 주무시고 계셨지만,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께서 함께 선승해 계셨으며,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는 행위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뭍에 머물러 계셨고, 아직 신앙의 풋내기였던 제자들만이 배를 타고 홀연히 바다로 떠난 상태였습니다. 배 안에는 그들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곧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배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지 몰라 하며 이제 다 끝났구나 하며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폭풍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고, 그들에게 ‘내일’이란 아마 없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경 연구가들은 이들이 이미 최소 9시간 이상을 폭풍우와 함께 싸우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험악한 상황은 전혀 바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때 오늘 성경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이들에게 한 가지 희망적인 반전이 일어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4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막 6: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인생의 폭풍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오신 방법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그 분이 어떻게 오고 계세요? 그 분은 바다 위를 걸어오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일이 해결되어지길 바랍니다. 사실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의 삶을 해결해 가십니다. 본문에서 그분은 제자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다 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또한 본문은 예수님이 바다를 건너 찾아오신 시간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48절 말씀에 보니 그 분이 온 시간은 밤 사경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시간 개념에 의하면 밤 4경은 오늘날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가르칩니다. 즉 제자들이 밤새도록 폭풍우와 싸우고 이제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지쳐 있으며, 가장 춥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던 칠흑 같은 어두운 시간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인생의 시간이 사경을 맞이하는 제자들과 같다면,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이제 예수님이 오실 때가 다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더 이상 아무런 소망을 가질 수 없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의 지혜를 띄어 넘는 방법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곁을 찾아오신다는 것, 특별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오신다는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본문 49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막 6:49)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제자들은 그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본문에서 유령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영적인 존재다! 라는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허깨비를 본 것이야! 잘 못 본거야! 어떻게 사람이 물 위를 걸어올 수 있어! 그럴 수 없어! 하고 반응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눈앞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다가오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허깨비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들도 예수님이 우리 곁에 다가오시지만 마치 종이호랑이를 대하듯이 그분이 우리 삶에 아무런 힘도 능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지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 그들에게 다가오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에 등장하는 표현 가운데 ‘지나가려고 하시매’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영어로는 pass by 희랍어로는 ‘파레코르마이’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지나가려고 한다는 표현은 그냥 지나가는 것 pass by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지나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를 봐주기를 바래서 내가 저 사람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어서 도움을 줄 무언가가 축복이 있어서 어떠한 의도가 있어서 찾아올 때 쓰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주님이신지 모르는 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향해 본문에서 예수님이 바다가 일어나고 파도가 일어나는 폭풍우 속 험한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을 찾아오실 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함께 본문 5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6:50)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익숙한 자기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폭풍 속에 있어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 본문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 등장하는 ‘나니’라는 표현 또한 아주 의미 있는 단어입니다. 옛 성경에는 ‘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실 때 쓰여지는 표현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 무엇이에요? “안심해 두려워하지 마! 내가 왔어! 내가 널 도와줄게. 나야 나 하나님이야 내가 널 도와줄께!” 하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도 여러분 곁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그 강하고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매일 새벽 제단에 나와 갖는 은밀한 하나님과의 시간 속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Quiet Time, 큐티를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 예수님께서 배 위에 오르시니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51절 보세요. “(막 6:51)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제자들을 괴롭게 하고 죽음으로 이끌었던 폭풍과 파도가 모두 아침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곧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붙잡아주시는 그 순간 문제가 해결 됩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바다 위를 걸어오시며 자기들에게 안심하라 말씀하신 분의 참 정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 저분은 하나님이시구나! 우리는 이 험한 폭풍우를 홀로 이기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셨구나!” 제자들이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높은 파도가 멈추고 드디어 칠흑 같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너무나도 중요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새벽 나를 찾아오시고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커다란 축복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 이 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폭풍우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도우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 분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그의 손을 붙들고 가는 사람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절망을 이길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희망을 붙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