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6 건방진 나발과 폭발한 다윗 (사무엘상 25장 1-22절)

갈멜이란 지역에서 목축업자로 살아가는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소유한 거부였습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아름다웠으나, 나발은 완고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다윗이 나발이 양털 깎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한 해 농사 지은 곡식을 추수할 때 축제를 벌이듯이, 목축업자에게 있어 ‘양털을 깎는다’는 것은 일종의 축제와 같았습니다.  양털 깎는 날은 잔치를 벌이고 가난한 자를 돕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부하 중 열 사람을 갈멜로 보내어 다윗의 이름으로 나발에게 문안하게 했습니다. 이전에 다윗의 부하들이 나발의 양치기들을 지켜준 적이 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양치기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나발의 양떼는 다윗의 도움으로 하나도 잃은 것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점을 이야기하며 이 좋은 날에 나발이 다윗을 후원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대뜸 “다윗이 누구냐”하고 반문했습니다. 실제로 나발이 다윗이 누구인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다윗을 무시하는 의미의 질문입니다. “도대체 다윗 지가 뭐길래 나보고 식량을 후원해 달라고 하느냐? 요즘은 자기 주인에게서 도망치는 종놈들이 많다던데, 내가 어찌 빵과 물 그리고 양털 깎는 내 종에게 주려고 잡은 짐승의 고기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겠소!” 이처럼 나발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치는 신세인 것을 언급하며 다윗을 마치 주인을 피해 도망치는 노예인 냥 모욕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요청한 물과 빵과 고기를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다윗이 보낸 소년들이 돌아와서 나발의 말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전달했습니다. 나발의 말을 전해 들은 다윗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다윗은 즉시 자기 사람들을 칼로 무장하였습니다. 총 600명의 부하들 중 200명은 소유물을 지키게 하고, 400명이 다윗을 따라 나발을 치러 향했습니다.  다윗은 나발의 양치기들을 대가 없이 밤낮으로 보호해주고 지켜주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나발에게 선을 베풀었건만, 나발은 다윗의 선대를 무시하고 오히려 모욕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상대방이 베푼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할 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나발의 경우 부유하여 다윗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은 자신의 종들과 양들을 보호해준 다윗의 요청을 단 칼에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다윗을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주인에게서 도망친 부랑아요, 광야에 출몰하는 강도와 같이 취급하였습니다. “의리”하면 웬지 세상이 말하는 가치 같아 보입니다만,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베푼 것이 있는데, 그에게 줄 떡과 물과 고기를 아끼려 하는 나발의 행동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며, 그 결과 그는 자신의 목숨과 모든 가축들을 다 잃어버릴 위기를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나발의 양치기 중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찾아갔습니다.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인사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사람들을 보냈는데, 주인은 그들에게 욕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주 잘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조금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들에 있는 동안, 그들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양 떼를 지키고 있을 때, 우리의 담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우리 주인과 그 집안을 해치기로 이미 결심하였습니다. 주인은 너무 못된 사람이라, 누구도 말을 붙여 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다급함을 깨달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급히 서둘러 일을 진했습니다. 그녀는 빵 덩이 이백 개와 포도주가 가득 찬 가죽 부대 두 개, 양 다섯 마리를 요리했습니다. 그 밖에 볶은 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100 송이, 무화과 200개를 가져다가 나귀에 실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아비가일은 곧장 다윗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군사를 대동한 다윗은 선을 악으로 갚은 나발에 대하여 분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가 만약 아침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하나라도 살려 둔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심한 벌을 내리고 또 내리셔도 좋다.” 다윗은 이처럼 저주를 통한 맹세를 할 정도로 분을 내며 말을 타고 나발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에게는 그토록 관대했던 다윗이었기에, 오늘 본문은 다윗답지 않은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간 숱하게 참아온 다윗입니다. 그러나 나발의 조롱과 모욕이 다윗 안에 숨어 있던 분노를 터트려버렸습니다. 만일 다윗이 나발과 그의 온 가족을 죽였다면 다윗의 삶 속에서 평생 후회할 만한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다윗도 사울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다윗처럼 우리 안에도 미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야비하게 구는 사람, 우리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 마음에도 분노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잠언 말씀에 따르면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읍을 빼앗는 자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성벽이 무너진 것과 같습니다. 분노라는 야생마의 고삐를 잡고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성숙한 사람입니다. 내 안의 미움과 분을 다스리지 못하고 말이나 행동으로 폭력을 행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비록 상대방이 악을 행해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이 일에 간섭해 주시고 판단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