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3 [남선교회 헌신예배]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라 (요한복음 13장 12-15절)

(요 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사랑과 재채기는 감춰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채기는 참고 싶어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재채기하는 소리와 모습을 옆 사람에게 숨길 수가 없는 것이죠. 이처럼 숨길 수가 없는 또 한가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티가 나기 마련입니다. 사랑은 마음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상대방에게 고백을 하든지, 애정이 담긴 편지를 써서 보내거나, 선물을 사서 주거나 하는 등 사랑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 중 가장 귀한 것, 곧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만해도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제자들을 향한 주 예수님의 사랑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맞이하여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사람들이 신고 있던 신발이 운동화가 아니라 가죽끈으로 되어 있는 샌들입니다. 게다가 도로도 지금처럼 아스팔트가 깔린 포장도로가 아니라 모래와 흙으로 되어 있는 비포장도로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전도를 하며 돌아다니다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이 흙먼지로 더러워져 있었을 것입니다. 본래 신약시대 당시에는 주인이 집에 들어가면 집의 하인이 그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줄 물을 준비하여 주인의 발을 손수 닦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인 장소에는 발 씻어줄 하인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또한 이 당시 유대인의 식사 문화는 바닥에 방석 같은 것을 깔고 앉아서 먹거나 발을 앞으로 뻗어 비스듬히 누워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발이 더러운 상태로 식사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열 두 명의 제자들 모두 발을 씻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 중 단 한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대야에 물을 떠오거나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누가 하인들이 하는 이 천하고 더러운 일을 떠맡아 할 것인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모두의 발이 흙먼지에 쌓인 채 불쾌하고 찜찜한 상태로 식사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 제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는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 다가 자신의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이는 집안에서 가장 낮은 하인들이 집에 돌아온 주인이나 집을 찾은 손님들의 발을 씻어줄 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인이라고 다 같은 하인이 아닙니다. 하인들도 나름대로 위계와 질서가 있습니다. 발을 씻겨주는 천한 일은 집안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거나 나이가 가장 어린 하인들이 감당했습니다. 당시 노예들이 하던 발 씻기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손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직접 대야에 물을 부어 담으셨습니다. 오늘날처럼 부엌이나 화장실 가서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시대가 아닙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러 와야 하는 시대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우물까지 가서 물을 길러 오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마다 비취 되어 있는 물 항아리에 채워진 물을 대야에 담아 옮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총 12명입니다. 열 두 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양 발을 모두 씻어야 할 정도의 물이니 적지 않은 양의 물이었을 것입니다. 대야에 물을 담으신 예수님, 사실 예수님께서 여기까지 하시고 나머지는 제자들에게 시키셨어도 되지 않았을까요? “베드로, 물은 내가 떠왔으니까 이제 너가 알아서 제자들 발 씻겨주렴. 야고보 너가 6명 맡고, 야고보 나머지 6명은 너가 알아서 하렴.”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흙먼지 묻은 더러운 발을 친히 다 씻겨 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 세족식 본문에 너무나도 익숙하여 ‘발 씻겨주는 일이 뭐 그리 특별한가?’하고 말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베드로는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더러운 발을 씻기신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기시렵니까?”하고 당황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오늘 본문은 제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모두 씻겨 주신 예수님은 다시 옷을 입으시고 식사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조금 전 자신이 제자들에게 행한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으셨습니까? “내가 방금 전에 너희에게 행한 일이 무슨 뜻으로 한 것인지 이해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오늘 본문 말씀을 한 번 더 같이 읽겠습니다. “(요 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주이며 선생님인 내가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듯이, 제자들도 각각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족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상대방을 겸손히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거절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나 자신을 낮추기를 거절한다면 그것은 예수님 위에 올라 앉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은 교만한 태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섬김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물로 내어 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도 그와 같이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의 모범을 닮아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닮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은 천한 일을 하거나 더 낮은 일을 자원하여 맡는 것입니다. 교회 일 가운데도 사람들이 잘 하려고 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더러운 일이 그렇고 천한 일이 그러합니다. 마치 제자들이 발을 씻어야 한다는 필요는 인식했으나 그 일을 기피하여 하지 않으려 했듯이, 교회 사역들 중에도 필요가 분명 있으나 어려운 일이거나, 힘든 일이라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사역들이 분명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사역들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특별하고 비범한 자리에서 일하신 것이 아니라 종들이 하는 일을 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사역 가운데서도 빛이 나고 사람들이 잘 알아주는 자리들만 골라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잘 하지 않으려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2022년도 6월이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2022년도 교회 남자화장실 청소 담당자가 다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자원하여 섬기십시오. 성도들의 발을 씻으십시오. 다른 이들이 잘 하려고 하지 않는 천한 일, 낮은 역할, 기피 사역들을 찾아 오히려 더욱 열심으로 섬기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리’나 ‘특권’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중 가장 으뜸인 선생님이시고, 주인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왜 발을 안 씻겨주느냐 하고 불만과 불평을 쏟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이 선생과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로부터 발 씻김 받을 권리나 특권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낮은 곳으로 가셔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남선교회 모든 회원분과 우리 모든 코너스톤장로교회 성도님들이 닮아가야 할 예수님의 섬김의 본입니다. “내가 목사인데”, “내가 장로인데”, “내가 안수집사인데”, “내가 권사인데”, “내가 이 교회 아무게인데” 하고 자신의 권리나 특권을 주장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기는 커녕 도리어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 남선교회 모든 회원분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의 권리나 특권을 주장하기 보다 오히려 세족의 자세, 섬김의 자세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닮은 자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교회 안에는 끊임없는 필요들이 존재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섬기고 섬겨도 교회 안에는 끊임없는 사역들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만 필요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채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면 나 아무것도 안 할거야” 하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흙먼지 덮인 발을 씻어야 할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필요보다 제자들의 필요를 먼저 채워 주셨습니다.

사실 발을 상대방의 씻어 주는 일은 공로를 인정받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가서 “내가 발을 씻겨주는 일을 합니다.”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닙니다. 우리 상대방을 섬길 때 다른 사람들에게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하는 사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공로를 인정받기 위한 것이 사역의 동기가 된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수고와 섬김을 알아주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이 찾아오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고자 하는 동기로 섬기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연장선에서의 섬김이 아닙니다. 그러한 섬김은 자신의 선행을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내고자 하는 잘못된 명예욕에서 비롯된 거짓 헌신이 됩니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는 것은 오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며, 그와 같이 섬기는 것이 공동체와 성도들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로를 인정받으려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통한 아름다운 열매 맺을 것을 위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놀라운 인생의 비밀을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섬김 받는 사람보다 더 행복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비밀을 알고 행하면 우리 삶에 큰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주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그리함으로 우리는 교회와 성도들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 속에서 크고 놀라운 섬김의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코너스톤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으심으로써 우리에게도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천해 보이는 일, 힘들고 어려워 보이는 일을 맡아 하십시오. 우리의 권리나 특권을 주장하지 말고 오히려 낮은 역할을 찾아 행하십시오. 내 자신의 필요를 주장하기 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찾아 기꺼이 하는 마음, 기쁜 마음,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다른 이들에게 공로를 인정받으려고 섬기지 말고, 나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이 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이와 같이 우리 남선교회 모든 회원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아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서로의 삶을 섬겨주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닮아가고, 주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남선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