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5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삶] 시리즈 (4) 하나님의 때를 믿으라 (마태복음 24장 32-41절)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것 좀 보십시오! 성전의 저 큰 돌들 하며 웅장한 건물 좀 보십시오! 정말 굉장한 돌들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물 아닙니까?” 성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제자들은 제 집 자랑하듯이 예수님께서 성전에 대해서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들려온 예수님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여기 있는 돌 하나라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전 건물이 모두 무너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빠져나온 후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한 감람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보고 앉아 계실 때,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은밀하게 여쭈었습니다. “예수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이런 일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를 가리켜 주는 징조가 혹시 있습니까?” 제자들의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마태복음 24장 전체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전에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 ‘이중 예언’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중 예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해봅시다. 이중 예언은 하나의 예언을 통하여 ‘가까운 장래의 사건’을 예언함과 동시에 ‘더 먼 미래의 궁극적 사건’의 성취를 함께 예언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예언은 1세기에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1세기에 일어날 사건뿐만 아니라 동시에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래서 ‘이중 예언’이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1차적으로 보면 AD 70년에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도시 함락과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4장은 2차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재림 직전인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될 미래 사건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징조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1) 자칭 그리스도라 주장하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출현합니다. 그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게 됩니다. 2) 전 세계 곳곳에서 민족 간의 전쟁, 국가 간의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3) 곳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발생할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미움을 받고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5)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버릴 것이며, 성도들도 서로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시대가 옵니다. 6)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만 바리새인처럼 위선적인 태도로 자신의 탐욕을 위해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7) 창세 이래 한 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전례 없는 대환난이 찾아옵니다. 8) 해가 검은 털로 짠 옷처럼 어두워지고, 달은 그 빛을 잃어버리고, 설익은 열매가 나무에서 툭툭 떨어지듯이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지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징조들이 이렇게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보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구나?”하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2-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나무는 다 자라면 크기가 작게는 20ft에서 크게는 30ft나 됩니다(6-9M). 나무들은 대개 초봄이 되면 꽃이 핍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다릅니다. 무화과나무는 여름이 가까운 늦은 봄이 되면 비로소 꽃이 피어납니다. 이러한 나무의 특이성 때문에 사람들은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나는 것을 보면 “아 이제 봄이 다 지나갔구나. 여름이 가까이 왔구나?”하고 알 수 있었던 것이죠. 팔레스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마르고 파삭했던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수액이 올라와서 연해지고 잎사귀가 나는 것을 보면서,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화과나무의 잎을 보고 계절을 분별할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징조들이 발생하는 것을 봄으로써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곧 다가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어떤 분들은 성경을 읽으며 34절을 읽고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징조들이 당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죽기 전에 모두 다 성취되었다고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들의 주장처럼 마태복음 24장의 내용이 1세기에 다 이루어진 예언이라고 본다면, 1세기 때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 거짓 선지자들의 이적 행함 지진, 기근, 배교, 대환난, 천지 대격변과 같은 모든 일들이 다 일어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성경 해석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전 세계에 울려 퍼질 큰 나팔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아직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재림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예언이 1세기에 일어날 사건들만을 언급하고 계신 것이 아님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34절에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이 세대”(this generation)라는 표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세대”라는 기록 때문에 마태복음 24장이 1세기에 모두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34절에 “세대”라고 해석된 헬라어는 ‘게네아’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총 38번 사용되었는데, 단 한 번도 예외도 없이 모두 1세기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을 의미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 성경 단어 하나의 참된 의미를 연구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 하나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이 쓴 책 중에 [Why I am not a Christian]이란 책이 있습니다. 러셀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유럽에서 이 책을 읽고 기독교에서 돌아선 사람들이 수두룩 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진리가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근거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바로 이 마태복음 24장 34절 말씀입니다. 참 신기한 사람이죠?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고 참된 구원자이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는데, 이 사람은 반대로 자신이 예수를 믿지 않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했습니다. 러셀은 마태복음 24장 34절을 가리키며, 분명 예수님께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세대’, 즉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아가던 그 1세기 사람들의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던 일들이 다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대격변도 없었고,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다시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러셀은 예수님을 거짓말 한 선지자라고 주장하며, 자신은 기독교인이 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죠.

신학자들은 러셀의 주장을 반박하며, 성경에 “세대”(generation)이라고 번역된 이 헬라어 단어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이 단어는 때에 따라 ‘종류’, ‘부류’, ‘유형’(sort, type, kind)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라는 표현은 특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유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네덜란드의 신학자인 [헤르만 리델보스]는 34절에 사용된 “세대”라는 단어를 해석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한 세계적인 신학자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본문에서 말하는 “세대”는 ‘특정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에 사용된 “세대”라는 단어는 [Time frame]을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Mind frame]을 나타내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해석에 따라 마태복음 24장 34절을 다시 본다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살아가는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대가 다 사라지기 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모든 징조들이 이루어질 것이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을 따른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1세기에 다 이뤄지지 않아도 어떤 성경적 오류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의 내용이 이중 예언임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1차적으로는 이 예언이 AD 70년에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로 성취됩니다. 그러나 본 장에 나오는 모든 재앙들과 징조들이 이 기간에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태복음 24장이 예루살렘의 멸망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34절의 ‘이 세대’라는 단어는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세대를 의미하고,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모든 시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이 세상이 끝나기 전에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논리로 예수님께서는 35절에 “(마 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살아가는 이 세대가 다 사라지기 전, 즉 세상의 끝이 오기 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건들이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리고 그 징조들이 이루어질 때 우리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날이 언제 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3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언제 다시 오실 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알고 계십니다. 36절은 단순하게 지나칠 수 있는 본문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에 수많은 분쟁과 논란을 일으킨 본문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예수님께서 인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성육하신 예수님은 100%인간이시며 동시에 100%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기 전에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1세기 베들레헴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하기 전까지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 끝까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이 아닌 적이 없으십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교회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러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우리들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지하셔야 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을 천사들이 모르는 것은 쉽게 수긍이 됩니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 마지막 날이 언제 인지 모르실 수가 있을까요?

실제로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은 본문 말씀을 근거로 삼위일체를 부인합니다. 모르는 것이 있는 예수님께서 결코 전지하신 하나님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탁월한 분인 것은 맞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천사와 인간처럼 성부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호와의 증인의 가르침이 비성경적입니다. 분명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성부 하나님과 본질이 같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한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성경 사본들 중에는 34절에 나오는 “아들도 모르고”라는 표현을 기록하지 않고 생략했습니다. 영어 성경인 KJV성경에도 “아들도 모르고”라는 표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사본들과 번역본들에 이 표현이 생략된 이유는 이 내용이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훼손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모든 면에서 동등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이 세상의 마지막이 언제인지 모르신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마태복음 24장 34절에 이 표현이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13장 32절에도 이 표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위 있는 많은 마태복음 사본들도 이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아들도 모르고”라는 기록은 성경 원본에 기록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신빙성 있는 표현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들도 모르고”라는 이 난해한 구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빌립보서에서 찾았습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입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6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본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위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제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피곤할 때는 주무셨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40일 금식하셨을 때는 배고픔도 느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피곤함과 배고픔을 가지셨으나 여전히 하나님이셨던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때의 시기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씀하신 이 표현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7절에 예수님께서는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신적인 속성을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하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신적인 특권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삶을 위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마지막 날과 마지막 때를 알고 계신다고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하신 후에도 예수님은 동일하게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이 아니신 적이 없으십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성경 연구가 심오한 단계까지 나아간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 재림하실 지 그 정확한 시기를 예언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이와 같이 마지막 때가 정확히 언제 인지 숨기신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재림 시기를 우리에게 숨기심으로써 우리가 긴장 가운데 당신의 오심을 예비하게 하셨다.” 사람들은 언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지 그 정확한 시기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날과 그 때를 안다면 죄 된 본성에 이끌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게을러 질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교만한 자들은 계속 범죄하고 살아가다가 재림 직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마틴 루터의 말처럼 실상 재림의 정확한 시기를 모르는 것이 우리 영혼에 유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웠음을 알려주는 징조들이 많이 있지만, 그 날이 정확하게 언제 인지는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날에 이 세상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7-3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마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는 오랜 세월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세상 사람들은 홍수 재앙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는 평범함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방주의 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평범해 보이던 이 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결국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이 쓸려 가기 전까지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고 계신 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에도 사람들은 보통의 하루,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심판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비가 언제 내릴지, 홍수가 언제 시작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날에 오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노아 시대처럼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나, 노아 시대 사람들이 갑자기 홍수가 덮쳐 미처 피할 틈도 없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야 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도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두 구절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40-4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 24: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0절과 41절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단어는 ‘데려감’과 ‘버려둠’입니다. 예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재림하시는 그 날, 구원받은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확연히 나누어지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주님께서 데려가시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버림받게 됩니다. 40절과 41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콩을 갈기 위해 맷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업의 현장에서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예측하지 못한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아마 ‘휴거’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휴거’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할 때 구원받는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어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휴거’라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신학 용어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성경에 나오는 진리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신학적 용어인 것과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성경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성도들이 휴거 되면 곧바로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와는 다르게 성도들이 휴거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영접한 후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주와 함께 천년왕국을 다스린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본문 마태복음 24장 40-41절을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휴거 된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지 몰랐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성도들은 당대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란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주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데려감을 받을 소망이 있었습니다. 1세기에는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심하여 함께 신앙생활 하던 형제, 자매들 가운데 순교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아직 재림하지 않으셨는데 죽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휴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런 염려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러한 초대 교회 성도들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던 목회자 바울은 그의 편지 곳곳에서 예수님의 재림 시 죽은 자들과 산 자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 시 살아 있는 자들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 때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도신경을 보면 “몸이 다시 사는 것과”라는 고백이 나오죠? 죽은 성도들의 부활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여 영광의 몸을 입은 성도들과 그 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들도 썩을 몸이 아닌 영광의 몸을 입고 모두가 함께 공중으로 올라가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4절 말씀을 [쉬운성경]번역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고전 15:51) [쉬운성경]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다 잠잘 것이 아니라 변화될 것입니다. (고전 15:52)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며,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고전 15:53) 썩을 몸은 반드시 썩지 않을 몸을 입어야 하며, 죽을 몸은 죽지 않을 몸을 입어야 합니다. (고전 15:54)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을 입게 되면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고 기록된 말씀이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그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죽지 않은 성도들도 썩을 몸에서 썩지 아니하는 영광의 몸으로 변화합니다.

이어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살전 4:13) <주님의 재림>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죽은 자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전 4:14) 우리는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분명히 살리실 것입니다. (살전 4:15) 우리는 지금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살아 있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단코 그 날에 살아 있는 자들이 이미 죽은 자들보다 주님을 먼저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살전 4:16) 그 날에 주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큰 소리로 호령하실 것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그후에 살아 있던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하늘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살전 4: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 날, 살아 있는 자들 뿐만 아니라 주 안에서 잠든 자들 곧 먼저 죽은 자들도 부활하여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1세기 로마 제국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을 예우하는 하나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과 그의 군대가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수도인 로마로 돌아올 때면, 곧바로 도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도시에서 약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진영을 설치하고 잠시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로마 원로회는 사람들을 뽑아 개선장군과 용맹한 승전 군사들을 위한 성대한 퍼레이드를 준비합니다. 온 도시를 꽃으로 단장합니다. 길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도시에 꽃내음이 가득하도록 준비합니다. 문헌에 의하면 이 때 선택된 소수의 로마 시민들은 도시 밖으로 나가 로마로 들어오는 개선장군과 그의 병사들을 에스코트하여 퍼레이드에 조인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면 큰 나팔 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집니다. 성문이 열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과 그의 군사들이 로마 도시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마지막 날에 온 세상에 울리는 나팔 소리가 있습니다. 그 날 사단과 모든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죄와 사망을 이기신 개선 장군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바로 그 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소망입니다. 우리를 죄와 고통과 사망으로부터 건지신 우리의 승리자, 우리의 개선 장군, 우리의 왕,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그 날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공중에 끌어 올려 주님을 영접하는 구원받은 무리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와 같은 소망을 가지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