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4 언약궤를 빼앗기다 (사무엘상 4장 1-11절)

누구나 인생에서 뼈아픈 패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패배의 쓴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반응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패배의 원인을 자신 스스로에게 찾아보고자 겸허히 자신 돌아봅니다. ‘혹시 지금 내가 맛본 고통과 패배가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진 죄로 인해서 비롯된 징계가 아닌가?’하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영적 죄악 때문은 아닌지 점검해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패배의 원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며 미움과 불만을 표출합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내가 지금 이처럼 고통과 패배를 맛보게 된 것은 다 저 사람 때문이야!’ 하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다른 사람 책임이라고 떠넘기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찾아온 고통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불신과 불평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패배의 아픔이라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이 둘의 싸움 중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 진영에서 무려 약 4천명 가량의 군사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즉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패배하게 하셨는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고통과 패배의 원인을 하나님의 부재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래서 실로에 모셔다 둔 여호와의 언약궤를 군사들이 있는 곳까지 가지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참 믿음이 좋은 행동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의 불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순종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사사 시대 동안 여호와의 언약궤가 꼭 전쟁터에 있어야만 승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약궤는 언제나 실로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수차례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치 이방 민족들이 우상을 전쟁터에 가지고 왔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와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는 하늘과 땅 그 어느 곳에서나 충만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마치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처럼 전락시켜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짜 문제는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는 우상이 가득했고, 죄악이 관영 했습니다. 그리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전쟁에 함께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다만 우상을 가지고 오듯이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오면 만사가 다 해결될 것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계속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짓고 살아가면서도, 속으로 ‘주일에 예배 출석하고 십일조만 잘 내면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겠지’하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잘못된 거짓 확신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강하게 확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살아가면서도, 종교적 형식들만 지키면 다 잘 될 거라는 생각하는 거짓 확신은 그 사람의 영혼을 좀먹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기록된 약속들이 과거에도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 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회개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채, 다만 언약궤만 가지고 오면 만사형통 할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장로들의 결정에 따라 실로에 머물고 있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스하스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진영 안으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오자 이스라엘 군사들은 땅이 다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투에서 패배한 진영은 침울하고 조용하기 마련인데, 이스라엘 진영에서 축제가 벌어진 것 같은 환호성과 부르짖음이 들리자 이에 블레셋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영문을 알고자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블레셋은 이스라엘 진영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무나 돌이나 금속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민족입니다. 따라서 이들도 언약궤가 마치 조각으로 깎아 만든 우상처럼 신적 존재를 움직이는 도구 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블레셋은 그 크고 강력한 애굽 군대를 홍해에서 몰살시킨 여호와의 명성에 대해서 익히 들은 바 있어 두려워 했습니다. 잠시 두려움에 빠졌던 블레셋 군대는 정신을 차리고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더욱 군대들의 사기를 점검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가 함께 있으면 승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결과는 그 반대로 블레셋 군대에게 큰 패배를 겪는 수모와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두 번째 싸움에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사망자가 무려 3만명이나 나왔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없을 때 싸웠을 때는 4천명이었는데, 여호와의 언약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10배를 넘는 사망자가 나온 것입니다. 또한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둘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크게 패배한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려고 하지 않고, 언약궤를 자신들이 목적하는 바를 무조건 들어 줄 우상처럼 사용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목적이시지, 우리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 인생에 큰 고통 혹은 뼈아픈 실패가 찾아왔다면 먼저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리 떨어지게 한 우리의 죄에서 비롯된 징계는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며 그 분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끊으라고 하신 죄악들을 단호하게 끊어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일들을 용기 내어 실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섬겨야 할 위대한 왕이십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늘 주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