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3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시리즈 (17) 25문 그리스도께서 제사장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십니까?

(히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25문: 그리스도께서 제사장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십니까?

답: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심으로써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십니다.

제사장은 무슨 일을 할까요? 제사장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들을 대표하여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가지고 오면 제사장이 그 제물을 가지고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는 사람이 지은 죄의 대가를 소, 양, 염소, 비둘기 같은 동물이 대신 짊어지도록 하였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사람의 죄를 짊어진 이 동물들은 제사 과정 가운데 죽어야만 했습니다. 칼로 찔러서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꺼내고, 피를 쏟고, 기름을 발라내고, 더러운 것들은 따로 버리고, 남은 고기들을 잔 위에서 불로 태웠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하여 죽었어야 했는데, 제단 위에 죽은 제물이 대신 죽었습니다. 동물이 피를 흘리고 제단 위해서 불태워 짐으로써 죽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당사자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제사장은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사를 집례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제사는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소수의 사람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백성이 다 죄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죄를 한 번만 짓는 것도 아닙니다. 연약한 죄인이기에 사람은 일평생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자기가 알고 짓는 죄도 있지만, 모르고 짓는 죄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제사가 쉴 틈 없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을 것임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 양, 염소, 비둘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제단에서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제사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람이 죄를 지어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제사를 드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시 하나님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럼 가던 길을 돌이켜 죄 사함 받기 위해서 또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은 연약하지 않기에 거듭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집에 도착한 후 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또 제사 드리러 가야 합니다. 이처럼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매번 제사를 드리러 가야 한다면 일상이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게다가 구약 시대는 농경사회입니다. 비록 죄를 지어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은, 바쁜 농번기 때라 제사를 드리러 갈 시간을 못 내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날에도 이발하러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일이 너무 바빠서 미용실에 못 가고 날짜가 밀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되는 경우 제사를 드리지 못하여 죄를 안고 살아가는 꼴이 됩니다. 또 만일 죄를 지었는데, 중병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제사를 드리러 갈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죽기 직전에 죄를 지었는데 몸에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아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백신의 효과가 수개월 이어져서 바이러스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것처럼, 구약의 제사가 제물을 통해 제사 드린 사람의 영혼을 수개월 동안 의로운 상태로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뒤 돌아서면 또 다시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이기에 구약 제사가 가진 한계가 분명 있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는 제사장에게도 죄가 있습니다.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직계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새벽에 계속해서 사무엘상 본문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엘리가 대제사장으로 등장하고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나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께서 정해 놓으신 제사 드리는 방법과 절차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불태워 드리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세 갈고리로 제물의 고기를 찍어 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몫으로 정해 놓으신 제물의 부위가 따로 있건만 마구잡이로 자신들이 원하는 부위를 가지고 갔습니다. 이들의 죄악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섬기는 여자들과 성적인 죄악까지 저질렀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다 알면서도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의 두 아들을 쫓아내지 못했을까요? 그들이 아론의 직계 자손으로써 태어날 때부터 제사장이 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제사장들도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죄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제사장 자신들의 죄를 사함 받는 또 하나의 추가적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이유와 비슷하게 제사장도 항시 죄가 없을 수는 없었기에, 때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이유로 죄를 품은 채 제사를 드리는 직무를 수행할 때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드리는 제사는 여러가지 이유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인간 제사장은 병들고, 나이 들어 죽게 됨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제사장을 뽑어야 했습니다.

 

  1.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첫 번째 직무: 단번에 자신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시고, 원수였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킴

이처럼 불완전한 구약의 제사는 사실 신약 시대 때 일어나게 될 예수님의 완전한 제사를 암시하는 그림자요 예표였습니다. 우리들은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 신약시대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이해하게 됩니다. 구약 시대 제사가 가지지 못한 완전성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본래 구약 시대 율법 아래 있는 제사장은 모두 다 아론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론의 후손이 아니면 아무도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제사장이 되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대제사징이 되셨으니 세상에 이 보다 더 좋은 제사장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율법 아래 있는 제사장들은 모두 죄인이었고, 자신들이 지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연약한 피조물이기에 모두 병들고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가 하나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의 삶은 모든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고 완성하신 흠이 없는 의로운 삶입니다. 대제사장직은 종신직입니다. 한 번 대제사장이면 죽을 때까지 대제사장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여러 명의 대제사장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또 다른 대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이처럼 흠 없고 의로우시고 완전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드린 제사는 완벽한 제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소, 양, 염소, 비둘기 같은 제물로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구약 시대 때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칼로 찔러 죽이고, 각을 뜨고, 고기를 쪼개고 불에 태워야 했듯이… 예수님은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예수님은 옷 벗김을 당하시고, 이미 온 몸이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온 몸은 성한 곳이 없이 멍 들고, 상처 나고, 부었고, 살이 찢기고, 터졌습니다. 예수님의 두 손과 두 발에는 온 몸의 무게를 견디도록 큰 못이 박혔습니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당하시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한 완전하시고 의로우신 예수님의 죽음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완전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영원토록 효력이 계속되는 완전하신 제사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또 다른 제사를 드리거나 추가적인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행하심으로써 주님의 삶은 율법과 완전히 일치하였습니다. 주님의 그 완전하신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었고, 우리들의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그 값이 치뤄졌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입고 있던 더러운 죄라는 옷을 예수님께서 대신 입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예수님께서 입고 계신 흠 없는 의라는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우리가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죄는 오직 피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죄인을 심판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죄값인 죽음을 십자가에서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죄와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제거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들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수행하신 첫 번째 직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완전하고 그 효력이 영원한 십자가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셨으며, 그와 동시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1.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두 번째 직무: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하는 일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두 번째 직무는 바로 그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하는 일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말씀을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중 24시간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이 문자 그래도 24시간 기도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와 있든지 기도하는 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기도로 깨어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쉬지 않고 주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간구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 말씀을 보면,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온전히 구원받을 수 있도록 쉬지 않고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삶에 지치고, 괴로움에 쓰러지고, 힘이 없어 기도할 수 없는 그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계속해서 간구하십니다. 주님의 그 간구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바로 그 은혜가 있기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믿음을 굳게 붙잡고 구원을 향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