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3 말씀하옵소서 듣겠나이다 (사무엘상 3장 1-21절)

 

 

이스라엘은 사사 엘리 밑에서 영적으로 피폐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인 대제사장 엘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자, 백성들 사이에서는 죄가 범람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여호와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값비싼 보배를 찾는 일이 어렵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기가 매우 힘든 영적 암흑 시대였습니다. 대제사장 엘리 집안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에 죄악이 가득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았고, 이상을 나타내 보이시지도 않고 침묵하셨습니다. 이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단절된 암울한 영적 상황을 잘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눈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100세의 나이를 바라보는 그의 고령을 생각해 볼 때 이와 같은 육체의 노쇠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는 단순히 엘리의 신체적 현상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의 영적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나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아들을 주시면 주님께 드리겠다고 서원 기도하고 있을 때, 엘리는 그녀가 포도주에 취했다고 책망했습니다. 자신의 두 아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심판에 이르는 데에도 그는 아버지로서, 제사장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은 세 번이나 부르시는 동안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정황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엘리 대제사장의 영적 무능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영적 지도자 개인과 그의 가정의 잘못되어 있는 영적 상태가 민족 전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영적 암흑기 가운데 한 줄기 섬광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의 등장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분위기는 반전을 이루게 됩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성소의 등불은 규례상 해가 져서 해가 다시 뜨기 직전까지 켜 두어야 했습니다. 즉 이 말씀은 한밤 중에 혹은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 미명에 일어난 사건임을 이야기해 줍니다. 날이 밝아오기 전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전에 누워 있었습니다. 바로 이 밤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처음으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극심한 타락으로 대제사장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꿈과 이상으로도 하나님께서 나타나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귀하던 시기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사무엘 개인에게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도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셨다는 데에 큰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것은 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달할 선지자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사명과 능력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대제사장 엘리가 자신을 부른 줄 착각하고 엘리가 누워 있는 곳으로 달려 갔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사무엘은 즉각 대답하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한밤 중에 잠자던 사무엘이 급히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달려갔다는 것은 그가 평상시에도 엘리의 시종으로서 얼마나 성실하게 그가 맡은 일을 수행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는 엘리에게로 달려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두 번째, 세 번째 부르신 장면을 기록한 6절, 8절을 보면 단순히 “그가 가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부르는 엘리에게 즉각적으로 달려 갔으나, 엘리가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말에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신중하게 천천히 반응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행동의 변화는 사무엘 자신도 그 자신을 부르는 존재가 누구인지 심사숙고하며 반응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했을 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그를 찾고 부르셨습니다. 아직 사무엘은 하나님을 이론적으로만 알았지,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눈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세 번이나 부르셨음에도, 그 음성의 주인공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밑에서 율법 교육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임재 사건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7절에 ‘아직’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이 날 후에는 사무엘이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났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하나님과 실제로 교제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 지식만 배워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말씀하고 계시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과 살아가는 사귐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엘리는 자신이 불렀다고 이야기하며 한 밤 중에 세 번이나 자신을 찾아온 사무엘을 보며, 결국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고 계심을 깨달은 엘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법을 사무엘에게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자, 이번에 사무엘은 엘리가 가르쳐 준 대로 행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11-14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제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사무엘에게 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엘리 가문의 죄악을 강력하게 심판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이 심판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터에서 같은 날에 죽게 됩니다. 엘리는 두 아들이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과 여호와의 궤가 적군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의자에 앉았다가 뒤로 넘어져 목뼈가 부러져 죽었습니다. 엘리의 며느리는 하나님의 궤가 적군에게 빼앗겼다는 소식과 자신의 남편과 시아버지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해산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엘리가 두 아들이 잘못된 저주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도 금하지 아니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가문을 멸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까지 자리에서 누워 있던 사무엘은 아침이 되자 성전의 문을 열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가문이 멸망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엘리에게 전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엘리는 사무엘에게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런 엘리에게 그의 가문이 심판 받을 것에 대해서 선포해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엘리의 거듭되는 요청에 사무엘은 결국 엘리 가문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엘리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사무엘이 성장하며 그가 하는 모든 말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응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즉 이스라엘 전국에서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자인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엘리 대제사장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이 들리지 아니하고, 희귀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만, 21절에 와서 사무엘의 시대에 여호와께서 다시 나타나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입니다. 사무엘과 같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사무엘처럼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의 종인 제가 듣겠나이다”하고 응답하는 말씀 충만, 순종 충만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