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2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하리라 (사무엘상 2장 22-36절)

         엘리의 두 아들은 여호와께 드릴 제물을 마음대로 가져갔고, 심지어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성적인 죄악까지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거룩한 삶을 모범적으로 살아가야 했던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도리어 이런 악을 앞서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됩니다. 나이 들어 매우 늙은 엘리 제사장은 자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스하스의 영적 비행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악상은 엘리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알려질 정도로 극심했습니다. 사람들은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그와 같이 악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재판을 받고 있는 원고와 피고는 재판장이 중재합니다. 만일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장을 모욕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경우 중재 과정 없이 즉시 형이 집행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범죄는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중재하겠으나,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범죄는 그 보다 더 높은 재판장이 따로 없기 때문에 중재가 불가능합니다. 엘리는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죄를 짓는 경우 하나님께서 중재하겠으나,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게 되면 중재가 불가능함을 언급하며 두 아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엘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는 하나님께 범죄한 두 아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분명하게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들의 범죄 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책망이나 책벌 없이 단지 경고와 권면으로만 끝냈습니다. 본래 신명기 말씀을 보면, 자식들이 부모의 권면을 듣지 않는 경우, 징책을 해야 했고, 징책을 해도 여전히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범죄하며 산다면 성읍 장도들에게 데려가서 성읍 사람들이 돌로 그들을 쳐죽이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죄를 끊고 바른 길로 돌아서도록 인도하는 것은 부모에게 주신 권위이며 동시에 책임입니다. 하지만 엘리는 나이가 늙은 까닭도 있겠습니다만, 그가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녀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엘리가 하나님 보다 두 아들을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김으로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가볍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이 집안에 몰락이 찾아오게 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 엘리 제사장의 충고를 듣지 않고 악행을 계속 행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25절 후반절을 보면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회개하거나 죄를 돌이킬 마음이 없었고,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 이들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26절 말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버림받은 홉니와 비니하스와 대조적으로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게 된 사무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무엘은 더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갔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27절부터는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레위 지파를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중에서도 엘리의 조상 아론의 가문을 택하셔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길 수 있는 제사장으로 따로 세우셨습니다. 그들에게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제단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화제를 드리는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은 제사장 엘리 가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섬길 수 있는 복을 엘리 가문에게 주시며, 동시에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감당할 거룩한 사명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와 그의 두 아들들은 하나님을 위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저버리고,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살아야 하는 거룩한 삶을 버린 채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제사를 드리는 엘리 제사장 가문에 좋은 것을 복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 가운데 하나님께 바쳐야 했던 제물을 훔쳐갔습니다. 즉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불로 태워서 화제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불에 태우지 못하도록 강제로 빼앗아 자기들의 몫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가문에 주신 은혜가 매우 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도둑질하고 성적 범죄를 저지르는 극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엘리 제사장의 경우 하나님의 뜻이 지켜지는 것보다 자신의 두 아들들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가문을 끊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문에 태어난 남자들이 나이 들어 노인이 되어 죽지 못하고, 모두 젊은 날에 죽게 되는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또한 엘리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했던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같은 날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 복을 내리는 중에도 엘리의 가문에는 고통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셨던 엘리 가문을 버리고 그들을 대체할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존중하게 여기십니다. 여기서 ‘존중히 여긴다’는 말은 ‘무겁게 여기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기며 주님을 믿음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소중하게 여기시고 그들의 삶을 높여 주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멸시하십니다. 여기서 ‘멸시하다’라는 말은 ‘경멸히 여기다’, ‘가볍게 대우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 없이 살아도 된다는 듯 가볍게 대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멸하십니다.

사무엘상은 계속해서 이 주제를 반복해서 보여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 가문처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혹시 있습니까? 그것이 우상이 되어 우리들을 옭아매고 결국 멸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없도록 합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가 하나님 보다 자녀를 사랑하고 더 소중하게 여겼을 때 그것이 결국 그의 두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의 가문을 몰락시키는 죄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한나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사무엘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그녀는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고, 하나님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삶은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며 무시하는 삶’과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 이 둘 중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