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1 세 살 갈고리와 세마포 에봇 (사무엘상 2장 11-21절)

 

          오늘 본문은 사무엘의 성장 스토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편 엘가나와 아내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당시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던 실로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실로에 남아서 여호와를 섬기게 됩니다.  11절에 사용된 ‘섬기다’라는 히브리어는 ‘샤라트’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흔히 성소에서 봉사하는 일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즉 사무엘은 레위인들과 함께 성막에서 제사 드릴 때 필요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여호화를 섬기는 일에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비록 제사장 엘리가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실패했으나, 당대의 사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리더인 엘리의 지도를 받아가며 사무엘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배워갔습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불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행실이 나쁘다”라는 단어는 성경 다른 본문에서는 ‘우상숭배를 선동하는 자’, ‘불량자’, 거짓 고소한 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태어 날 때부터 이스라엘의 사사이며 제사장인 아버지 엘리를 따라 그 누구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열심으로 섬겨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절에 이들에 대한 평가를 보면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집에서 자랐는데 어찌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겠습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모태 신앙에다가 주일학교 출신인데 크면서 성경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듣고 또한 알고 있겠습니까? 12절에 사용된 “알지 못하다”는 표현은 이들이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지만 삶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전혀 몰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 엘리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당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 받기 가장 좋은 위치와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두 사람은 당대 그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장 멀리서 떠나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두 사람의 삶을 큰 불행으로 이끌고 말았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사람들이 교회에 있다는 것은 정말 슬픈 현실입니다.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 듣고 예배하며 주님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존귀한 삶을 사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몸은 교회에 있으나, 그의 생각과 마음은 하나님과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교회를 떠난 드러난 탕자도 많지만,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드러나지 않은 탕자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 만나기에 가장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원하는 때에 마음껏 예배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싶으면 그 누구의 방해도 핍박도 없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경도 원하면 영어로, 한글로 마음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으면 마음껏 큰 소리로 찬양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믿기 좋은 환경입니까? 그러나 홉니와 비스하스처럼 이 좋은 영적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주님을 멀리 떠나 살아간다면 그들에게도 홉니와 비스하스처럼 끝이 좋지 못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낮추십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의 삶에 하나님은 고통과 아픔을 주십니다.

홉니와 비스하느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주님께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이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마음은 결국 제사를 멸시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예배를 어떤 모습으로 드리는가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등한시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등한시하는 사람이요,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예배 가운데 임하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도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을 멸시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13절부터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스하스의 불량한 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제사장은 제사법에 따라 기름을 먼저 제단에 태운 후 자기 몫을 받았습니다. 제사장이 받는 몫은 요제로 드린 가슴 부위와 거제로 드린 오른쪽 넓적 다리입니다. 하지만 엘리의 두 아들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갈고리를 냄비나 솥에 찔러 넣어 걸려 올라오는 부위는 아무거나 다 취했습니다. 기름을 먼저 태우지도 않았고, 자기가 원하는 고기를 가져갔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다 끝내기도 전에, 고기를 취함으로써 제사 자체를 허물어뜨린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경우 동물의 기름을 드리는 것은 중요한 순서이며, 동시에 모든 제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장에 덮인 기름을 불 태워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도달되는 향기로운 냄새로서의 화제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제물이 될 고기를 취한 것은 제사의 근본을 파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율법의 규정에 의하면 제사장이 취해야 되는 고기가 있고, 하나님께 반드시 불태워서 드려야 하는 부위가 있었건만, 이들은 그것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제사의 고기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취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이렇게 무법자처럼 율법을 어기니, 16절 말씀을 보면 백성들이 “먼저 기름을 태워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린 후에 마음대로 원하는 고기 부위를 가지고 가십시오.”하고 부탁했으나, 이러한 백성들의 요청마저 무시하고 억지로 빼앗아 갔습니다. 이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했을 뿐만 아니라, 제사장 직책을 통하여 자신들의 사리 사욕을 채웠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이런 엘리의 두 아들을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말 그대로 모태 신앙입니다. 더군다나 제사장이니 제사와 관련된 일이나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왜 몰랐겠습니까?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머리에 담고 있으나, 그들은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패역한 죄악을 일삼는 엘리의 두 아들들과 다르게 사무엘은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충실히 섬기며 살았습니다. 18절을 보면 사무엘이 “세마포 에봇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래 ‘에봇’은 제사장이 입었던 일종의 겉옷입니다. 대제사장은 다양한 색으로 된 실로 만든 화려한 에봇을 입었고, 일반 제사장들은 흰색 세마포로 만든 에봇을 입었습니다. 사무엘이 에봇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는 말은 그가 본격적으로 성소에서 봉사하고 제사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음을 나타냅니다. 비록 나이가 어린 사무엘이었으나 그가 에봇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통하여 앞으로 제사장직이 사무엘을 통해 승계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무엘과 같이 자신의 삶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여인 한나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더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태를 여사 그가 사무엘 외에도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아들을 바친 한나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자녀들을 주신 것이죠.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무엘상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한 가지 반복되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홉니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낮추시고 멸하십니다. 그러나 한나와 사무엘처럼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마음을 쏟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높이시고 그들의 인생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 두려워하는 일에 무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 주님을 섬기는 일에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과 같이 날마다 여호와 앞에서 거룩한 삶의 옷을 입고 서 있으십시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기를 힘쓰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복주시고, 우리의 삶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한나와 사무엘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사용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