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0 [그리스도와 연결된 삶] 시리즈 (6) 승리의 삶 (요한복음 16장 19-33절)

서론.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과 승리에 대한 견이 차이

지난 3월 미국 NBC 방송국의 한 기자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어하고 있는 참호 속 병사들을 취재하였습니다. 당장이라도 러시아 군인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병사들을 24시간 긴장을 유지한 채 참호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누가 봐도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큰 러시아가 이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만, 전쟁은 생각보다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뉴스 영상 속에는 어두운 밤 불빛도 별로 없는 참호 속에서 지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습니다. 잠잘 곳도 불편하고 마실 물도 먹을 식량도 부족한 참호 속에는 [제인]이란 이름의 암컷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제인은 참호 속을 돌아다니며, 전쟁에 지친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되고 있었습니다. 한 병사는 강아지 제인이 러시아의 포병대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인지하고, 폭격이 있기 전에 제인이 계속해서 짖는다고 말했습니다. 군사 무기와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전쟁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모든지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상황입니다. NBC 뉴스 영상 인터뷰에서 제인을 쓰다듬던 한 병사가 입가에 큰 미소를 띈 채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Victory will be ours. Everything will come back into Ukraine’s fold.”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우크라이나 편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뉴스 보도 이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에 대하여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많은 이들은 푸틴이 집권에서 물러나면서 러시아가 완전히 패배하기만을 희망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방어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포함하여 러시아 군대가 완전히 철수하는 날이 올 것에 대해서도 불가능할 것이란 부정적인 평가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비록 우크라이나 병사가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선언했으나, 아직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이길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한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은 전쟁 가운데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있고, 또한 전쟁에서 패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처럼 적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만, 우리들도 일상 속에서 느끼고 있는 염려와 불안함, 그리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염려와 불안, 두려움과 스트레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기쁨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주지만, 그의 부활은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오늘 본문 속 제자들은 얼마 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로 조금 있으면 예수님께서 그들 곁을 떠나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본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가정과 자녀들을 다 뒤로 한 채 예수님을 좇아 다니며 함께 지냈습니다. 그들은 평생토록 예수님과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삶과 미래를 다 책임져 주실 줄로만 알았습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각종 병든 자들을 모두 치료해 주신 예수님과 함께 라면 병들고 병원에 입원할 걱정도 안 해도 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걱정하는 먹고 사는 문제, 병들고 아픈 문제 예수님하고 같이 다니기만 하면 다 해결됩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한 아무런 걱정도 염려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직접 잠시 후면 제자들 곁을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려 친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소식에, 제자들의 마음에는 큰 염려가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예수님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 곁을 영원토록 떠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기 위하여 잠시 그들을 떠나야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이후 3일 뒤 부활하시고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제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해하고 염려하고 있던 것이죠. 예수님은 깊은 근심에 빠진 제자들을 향하여 그들이 잠시 동안 울며 애통할 것이지만, 그들이 후에는 그 모든 고통을 잊고 기뻐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잡히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고 굳게 믿고 그 분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잡혀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으니, 제자들은 세상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갈 소망을 잃어버린 비참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잠시 동안 제자들은 곡하고 애통하고 세상은 기뻐할 것이나, 시간이 지나간 후에는 제자들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줄로만 알고 있었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은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제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근심과 염려는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아셨기에, 제자들이 겪게 될 일시적인 고통과 영원할 기쁨에 대해서 출산하는 여인에 대한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요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여인이 출산할 때는 극심한 고통이 따르지만 그 후에는 태어난 아기로 인하여 커다란 기쁨을 맛보는 것과 같이, 비록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큰 고통과 상실감을 겪겠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과거의 애통과 슬픔은 다 잊혀지게 될 만큼 큰 기쁨이 그들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해산하며 겪는 고통과 갓난 아기를 안고 느끼는 기쁨과 대조를 하며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기쁨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흥미롭게도 로마서 8장 말씀에는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까지도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신음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 말씀입니다. “(롬 8:22) [쉬운성경]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신음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롬 8:23) [쉬운성경] 피조물만 아니라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들 자신도 속으로 신음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우리 몸이 구속될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도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이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하며, 피조물 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까지도 속으로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신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죄악으로 인해 망가진 세상에서 고통과 환난을 당하며 괴로움과 눈물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비록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끊임없는 밀물처럼 고통과 아픔을 피할 수 없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영광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병들고, 아프고, 늙고, 죽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는 등 여러가지 고통과 환난이 있겠습니다만, 죽음 이후 우리들에게는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실 기쁨은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아픔과 고통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잠시 슬픔에 처할 것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앞서 겪은 모든 애통을 잊어버릴 만큼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발견한 그 기쁨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보았을 때 제자들의 마음에는 그 무엇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받은 기쁨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고통과 아픔을 피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마지막 날 이 땅에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세상에서 누린 모든 고통과 아픔을 잊을만큼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날 받게 될 기쁨 역시 세상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사건은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구원하기로 선택하신 모든 성도들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사망을 이겨내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예수의 부활 소식이 비로서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바로 이 기쁨이야말로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우리 안에 이 기쁨이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1. 평안과 담대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승리로 인해 평화와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곁을 다시 떠나실 것이지만, 다시 그들 곁에 오심을 믿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홀로 버려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 도망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을 붙잡기 위하여 가룟 유다가 성전 경비병들과 큰 무리의 유대인 폭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을 칼과 몽둥이를 손에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제자들은 이들에게 붙잡힐 것이 두려워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0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실패를 경험하고, 낙심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실패와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이 끝까지 믿음을 져버리지 않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33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평안’이란 단어의 뜻은 본래 ‘내적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서 사용된 ‘평안’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평온의 상태로써, 삶 가운데서는 여전히 갈등이 있고 환난 가운데 살아가지만, 그 모든 상황과 문제를 뛰어넘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우리들이 이와 같은 평안을 누리며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살면서 겪는 모든 고뇌, 박해, 무거운 돌이나 짐에 눌린 듯한 압박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다가오는 여러가지 환난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담대하라!”(강한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그 어떠한 위험에 직면하더라도 확고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단호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예수님의 승리 안에 있습니다. 33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기서 “이기었다”는 말은 헬라어로 “정복했다”는 뜻입니다.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모든 원수와 군대를 정복한다는 전쟁 용어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암흑의 세력과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사탄은 패배하였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승리로 인하여 우리는 세상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은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모든 고통과 환난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평안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한창입니다. 폭탄 테러로 수많은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전쟁으로 인한 수 백만명의 난민들이 발생하였고, 국가적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악한 영들과 사악한 세력들이 사람들로부터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가고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고, 또 우리 스스로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비극적인 전쟁과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슬픔과 이 비극을 멈출 수 없는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악한 영과 세상을 대항하는 우리들의 전쟁은 이미 승리한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였고, 마침내 때가 되면 주님께서 우리 아픔을 치료하시고,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억눌린 자들에게는 공의를 베푸시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며, 사악한 영들과 악한 세력들을 심판하시고 벌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고통과 눈물이 가득해 보이지만, 결국 인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과 정의가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기쁨, 평안함,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우리 마음에 근심, 불안, 염려가 자리잡고 있고, 그러한 감정들이 우리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심을 확신하십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와 사망 그리고 세상을 이기신 승리자 되시며,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구원자 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기쁨과 평안 그리고 담대함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