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시리즈 (12) 구속 받을 자들을 택하심 (에베소서 1장 3-7절)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 먹었고, 그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와 비참함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진노와 저주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비극과 아픔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몸은 병들고 늙고 죽게 됩니다. 죽어서도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인간은 죄와 비참함의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 가운데 놓인 인류를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소요리문답 20번째 질문은 바로 이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가 죄와 비참의 상태에서 멸망하게 버려두셨을까요?” 다행히도 그에 대한 답은 ‘그러지 않으셨다’ 입니다. 하나님은 멸망하는 인류 가운데 몇몇을 영원한 삶을 위해 선택하셨고, 그들과 은혜의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심은 그 선택하신 자들을 죄의 상태와 비참함의 상태에서 건져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 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죄로 타락하여 멸망하게 된 모든 인류를 전부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선택 받은 몇몇의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해 봅시다. 성경은 만인구원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들만 구원 받습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는다면 예수 믿는 사람, 예수 믿지 않는 사람 모두가 다 구원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불교신자나, 무슬림이나, 힌두교 신봉자나 다 구별 없이 구원받는다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와 같은 가르침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랑의 하나님이 멸망해 가는 인류를 모두 구원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선택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하고, 어떤 이들은 버림으로써 지옥에 가게 하실 수 있는가?’하고 반문합니다. 선택 교리를 반대하는 분들은 이러한 처사는 매우 불공평한 것이며, 따라서 정의롭지 못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리 없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지옥의 존재까지도 부인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끔찍한 공간을 만드실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분명 하나님께 선택 받은 몇몇의 사람들만이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받았음을 이야기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형벌인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 가운데 몇몇의 사람들을 영원한 삶을 주시면서 선택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들을 선택하여 주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고 예배하도록 하심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공로나 자격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 받은 자들이, 선택 받지 못한 자들보다 더 도덕적인 삶을 살았거나, 성품이 온순하거나, 선행과 봉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은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준으로 구원 받을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를 구별하셨다면 그것이야말로 앞서 선택 교리를 반대했던 사람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남보다 봉사활동을 많아 하고, 선행을 많이 베풀 수 있는 좋은 상황과 여건 그리고 더 나은 형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구원받은 자들을 선택하심에 있어서 그 기준이 인간의 선행, 봉사, 구제, 착한 성격 등 인간 자신에게 두신다면 하나님의 선택은 불공평하고 불의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자를 택하심에 있어서 그 이유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서’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뛰어난 삶을 살았거나 남들보다 탁월한 면이 있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의 기쁘신 뜻에 따라서 선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줍니다. 두 아들이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직 태의 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른 결정이고 선택입니다. 로마서 9장 10-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9:10) [쉬운성경] 그뿐만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9:11)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시는 목적을 굳게 세우기 위해, (9:12) 리브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불러 주시는 분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9:13) 이것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9: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9: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16) 그러므로 모든 것이 사람의 요구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그는 형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았고,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따라서 야곱이 도덕적으로 에서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야곱도 흠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이 사람의 요구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멸망에 처한 인간이 하나님께 선택 받는 일은 사람의 요구나 노력이나 선행, 봉사, 구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그가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사람, 그가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 받아 구원받은 자들은, 아무런 자격도 공로도 없는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사회적 지위, 지식, 외모, 신분을 따라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조건 없는 은혜의 선택에 따라 주어집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그렇지만 내가 예수를 믿기로 선택한 것 아닙니까? 분명 구원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예수를 믿기로 선택한 나에게 구원의 공로가 돌려져야 하지 않습니까?”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해서 성도들이 예수를 그들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그 믿음’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도 이미 나를 영원 전부터 주님의 구원 받을 자녀로 선택하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은 그 누구도 자신이 구원 받는 일에 공헌한 것이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무조건적으로 구원 받을 자들을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선택 교리를 반문하는 사람들이 하는 또 다른 유형의 질문도 있습니다. “만일 선택 받은 몇몇의 사람들은 구원 받고, 선택 받지 못한 자들은 지옥에 가게 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영원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지옥에 가는 사람들을 책망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입니까?”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로마서 9장 20-23절 말씀을 새번역성경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롬 9:20) [새번역성경]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롬 9:21) [새번역성경]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롬 9:22) [새번역성경]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보이시고 권능을 알리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대상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롬 9:23) [새번역성경]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여 자기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가 흙 한 덩어리를 가지고 왕족들이 사용할 그릇도 만들고, 다른 흙 한 덩어리를 가지고 개 밥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몇몇의 사람을 택하사 영원한 생명을 주실 권한을 갖고 계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본래 영원토록 멸망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인류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몇몇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백성들을 통해 주님의 풍성하신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신 일이 결코 불의하거나 불공평한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비록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타락하여 죄의 상태와 비참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전부터 택함 받은 몇몇의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아무 대가 없이 용서하고 용납하실 수는 없으셨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가 택하신 그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이 모든 인류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선택하신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죄값을 대신 짊어지기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 택함 받은 모든 자들의 죄는 사함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구원 받도록 선택 받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살다가 죽어서 영원한 형벌인 지옥에 들어가야 했던 우리들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 모든 죄는 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전적인 은혜로 택하여 주시고,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까지도 선물로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며, 날마다 구원하신 주님만을 기쁨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주님의 사람들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