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7 [그리스도와 연결된 삶] 시리즈 (4) 사랑의 삶 (요한복음 15장 9-17절)

서론. 힐즈버그 West side 초등학교의 격려 프로젝트

미국 켈리포니아주 힐즈버그에 위치한 West Side 초등학교에서 예술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제시카 마틴]이란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녀는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정치 분열, 가스비 상승, 인플레이션 등 온통 힘이 빠지고 살기 어려운 이야기들 뿐인 세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녀가 가르치는 초등학생 아이들은 늘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그녀는 West Side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유치원 학생들과 함께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결과 ‘Pep-toc hotline’을 개설하게 됩니다. 무료 핫라인에 전화하면 West Side 초등학교 학생들의 녹음된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 들려옵니다. “화가 나거나, 마음이 좌절되거나, 긴장하고 계시다면 1번을 누르세요. 격려의 말과 인생의 조언이 필요하면 2번을 누르세요. 유치원 어린이의 격려가 필요하면 3번을 누르세요.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듣고 싶으면 4번을 누르세요. 스페인어로 격려의 말을 듣고 싶다면 5번을 눌러주세요.” 실제로 핫라인에 전화를 걸면 West Side 초등학교 유치원 생들의 녹음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Be thankful to yourself,” “You look great.” West Side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무료 핫라인 프로젝트는 지난 2월 26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화했을까요? 전화양이 많을 때는 시간당 약 700명이 핫라인에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천사 같은 유치원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죠. 요즘 같이 어려운 시대야 말로, 서로를 향한 격려의 메시지가 가장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 보며 한 번 격려의 말을 건내 봅시다. “집사님,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실 것입니다.” 서로 사랑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공동체 되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되는 격려의 메시지,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살펴볼까요? 요한복음 15장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과 동일한 방법과 동일한 정도로 우리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있는 신적 사랑을, 우리들도 누리며 살아가도록 주님의 크신 사랑 안에 초대해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신적 사랑, 아가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무조건적인 사랑,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자신의 전부를 희생한 사랑, 먼저 베푸는 사랑, 변함이 없는 사랑,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 자격 없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랑으로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받은 신적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사랑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의 이 놀라운 사랑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방법을 10절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갈 수 있습니까?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에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셨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토록 주님의 계명을 순종함으로써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11절 말씀을 봅시다.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살아감으로써 주님 안에 머물러 사는 것이 우리 삶에 충만한 기쁨을 가져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찾고 있던 행복의 비결이 오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 기쁨이 충만하게 살아가는 길은 날마다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기쁨이 충만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기쁨이 충만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도 기뻐했고,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함 살아가라고 거듭 반복해서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9가지 열매 중 하나가 바로 희락 즉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릅니다. 이 기쁨은 사람이나 상황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입니다. 시험과 환난으로 사방이 둘려 쌓여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이 세상 그 어떤 약보다도 좋은 보약이 되어 사람들의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 기쁨이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삶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따라야 하는 예수님의 계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답이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계명이 무엇입니까?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2주 전에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말씀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그리고 15장에서 이처럼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 말씀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빠지지 않고 반복되어 기록된 내용이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말씀입니다.

 

  1. 말과 혀로만의 사랑’에서 ‘섬김과 나눔’의 사랑으로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첫째로 주님은 말과 혀로만이 아닌 구체적인 섬김과 나눔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18절 말씀을 쉬운성경 번역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요일 3:16) [쉬운성경]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의 생명을 주심으로써 우리는 진실한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형제를 위하여 우리 생명을 내어 줌이 마땅합니다. (요일 3:17) [쉬운성경] 어떤 한 믿는 사람이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을 만큼 부자라고 합시다. 만약 그가 가난하고 필요한 것들을 갖지 못한 형제를 보고도, 그 형제를 돕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요일 3:18) [쉬운성경]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사랑은 진실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행함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입니다. “집사님, 많이 힘들지? 내가 기도할께” 이렇게 말하고 정말 기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대방에게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힘든 사람에게 매번 “기도할께”하고 기도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2절 말씀에 기록된 예수님의 명령을 다시 한번 주목해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언제 예수님께서 “너 힘들지? 내가 기도 할께”하고 말만 하셨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걸어서, 때로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아픈 영혼들을 찾아 방문했고, 시간을 내어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의 삶을 직접 치유하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땀을 흘려 일하셨고, 자신의 시간을 나누며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최근에 혹시 우리 주변에 힘든 사람들을 만났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집사님, 많이 힘들지? 내가 기도할께…”하고 습관적으로 반응하며, 그리스도인으로써 내가 할 사랑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내 옆에 형제 자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랑하라는 기회를 주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눈에 보여야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눈에 보여 지게 끔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먹여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추운 사람에게는 외투를 벗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3장 17절 말씀 한 번만 더 읽을까요? “(요일 3:17) [쉬운성경] 어떤 한 믿는 사람이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을 만큼 부자라고 합시다. 만약 그가 가난하고 필요한 것들을 갖지 못한 형제를 보고도, 그 형제를 돕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분명 이 말씀에서는 만일 어떤 이가 어려운 형제를 보고도 그를 돕지 않는다면, 그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온 습관을 바꾸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남을 돕는 일 역시 그렇습니다. 늘 보면 돕는 사람들만 계속 돕고, 섬기는 사람만 계속 섬깁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은 형제의 어려움을 보고도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번 기회에 말과 혀로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사랑하기를 새롭게 도전해 봅시다.

코너스톤 교회에는 형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저의 기쁨이고 교회의 자랑입니다. 몸에 병이 걸리거나, 불의한 사고를 당해 마음이 어려운 분들 있으면, 때로는 과일, 빵, 떡 같은 먹을 것 가지고 집으로 찾아가 위로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때로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밥 먹이고, 이야기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분들도 계십니다. 때로는 특별한 사건이나 사고가 없어도, 외롭게 살아가는 분들 집에 찾아가서 함께 따뜻한 위로의 대화를 나누며 격려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민 생활하며 힘겹게 일해서 번 돈 가지고 어려운 분들 위해서 사용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가 봐도 자기 살 것은 잘 쓰지 않고 아껴서 사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힘든 사람 있으면 아끼지 않고 기쁨으로 자신이 가진 것 나누는 분들이 저희 교회에 계십니다.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나누며 그 가운데 충만한 기쁨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백 번 맞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충만한 기쁨이 찾아오게 됩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큽니다. 여러분은 언제 ‘사랑받고 있다’고 느낍니까? 사랑은 내가 받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집사님 힘내십시오’, ‘집사님 기도하겠습니다’와 같이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사랑은 구체적인 섬김과 나눔이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한 번 더 따라해 주십시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게 해줘야 한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마시고, 눈에 보이는 섬김과 나눔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1. 조건 없는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가진 두번째 특징은 아무 조건이 없는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성경학자들이 복음서를 연구하며 지금까지도 풀지 못한 의문점 중 하나가 열 두 제자의 선발 기준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 다 어부 출신입니다. 가방 끈이 짧고, 가난하고, 매우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성정이 불 같은 사람이었고, 마태는 세금 걷는 사람이었고,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리에게 잡히시던 밤, 예수님 곁에 머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도망쳤습니다. 의리도 없고, 열한 명 모두 겁쟁이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을까요? 그 시대에 이 열 두 명보다 뛰어나고 탁월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 열 두 제자 믿음이 좋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왜 이 열 두 명이었을까요? 아무 자격 없어 보이는 12명을 제자로 선택하신 예수님, 이것이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생애의 가장 많은 시간들을 이 열 두 명과 함께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말입니다.

성경 속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 나아가 미래의 모든 제자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한 번 보십시오. 세상에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 우리보다 똑똑한 사람, 부유한 사람, 유명한 사람, 매력적인 사람, 그리고 심지어 우리보다 더 성실하고 정직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하나님은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예수 믿게 하셔서, 주님의 자녀를 삼아 주셨을까요? 이 역시 풀리지 않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공로나 자격 없는 자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야 말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사랑받을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사랑스럽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여기 한 가지 사랑의 비밀이 있습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사랑스러워진다.” 혹시 교회에 정이 잘 안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하고 싶은데, 왠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 있습니다. 오늘부터 한 번 우리 스스로를 시험해 보십시다. 의도적으로 사랑하기 힘든 그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십시오. 그 사람에게 전화도 하고, 교회에 오면 반갑게 찾아가서 인사도 하고, 시간이 되면 식사도 같이 하고, 그 사람에게 어려운 일 있으면 내 일처럼 도와주십시오. 의도적으로 그 사람에게 관심을 더욱 기울이고 사랑하기에 힘쓰십시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자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면 사랑스러워집니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세상이 말하는 이기적인 사랑, 자기 중심적인 사랑과는 그 동기나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왜 형제 자매를 사랑합니까? 그 사람이 내 맘에 들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하십시오.

 

  1.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지고한 사랑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세 번째 특징은 자신의 전부를 내어준 사랑입니다. 혹시 안도현이란 시인이 지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를 읽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시 중 일부만 발췌해 보았습니다. 한 번 읽어볼까요?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 너는 누구에게 /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자신의 몸뚱아리를 /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던 / 저 연탄재를 / 누가 함부로 발로 찰 수 있는가? /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연탄은 자신의 몸을 불태워 아랫목을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도록 온기를 더해주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불태운 연탄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전부를 던져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이제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제가 어린 시절 저희 고모님께서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자취집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추운 겨울 놀러가던 고모님 집 주변 신림동 고시촌 담벼락에는 다 쓰고 남은 하얀 연탄들이 차곡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하얀 연탄을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차곡하게 쌓아 둘까?’ 늘 그게 궁금했습니다. 신림동 고시촌은 동네가 경사가 져 있습니다. 큰 도로와 가까운 집들이야 괜찮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경사가 진 비탈길에 집들이 위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소복이 하얀 눈이 내린 날, 빙판이 된 비탈길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넘어집니다. 이 때 미끄러운 그 경사 길에 집집마다 문 앞에 수북이 쌓아 두었던 하얀 연탄을 던져 발로 차서 부셔 놓습니다. 아무리 미끄러운 빙판도 하얀 연탄 부셔 놓으면 안전했습니다. 이 때 알았습니다. ‘연탄은 그 뜨거운 불 속에서도 다 타고도, 또 자기 몸이 부서지도록 사람들을 돕는구나?’ 자기 몸을 불태우고, 자기 몸을 부서지도록 희생해서 사람들을 섬긴 연탄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창시절,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교훈이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영목아, 살아가다가 누군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에게 90도 숙이고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해라.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은 기적이란다.” 살아갈수록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제가 얼마나 모난 사람인지, 흠이 많은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살아갈수록 어머니의 그 말씀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가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주는 일은 정말 가장 큰 행복이고 기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은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 큰 행복과 놀라운 기적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은 말과 혀로만 아니라 섬김과 나눔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코너스톤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