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0 [그리스도와 연결된 삶] 시리즈 (3) (요한복음 13장 36절 – 14장 6절)

 

서론.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시편 31편

지난 2월 24일 목요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3월 20일을 기준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지 벌써 24일이 되는 날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수많은 우크라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이재민들을 돕고,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슬픔과 아픔에 처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위로하는 사역을 위해 더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전 세계에 있는 형제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가지를 요청했습니다. 먼저 우크라이나 상황을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육신과 영혼 뿐만 아니라 생명이 보존되도록 기도해줄 것을 요청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둘째로, 성경을 우크라이나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성서공회의 회장인 [로버트 브릭스]씨의 말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성경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성서공회 사무차장으로 섬기고 있는 [아나톨리 레이체네트]라는 분의 인터뷰 내용을 보니, 최근에 불확실한 시기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성경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져서 수도 키예프에 있는 성서공회 매장에 비취 된 성경이 완전히 소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나톨리]씨는 특별히 현재 우크라이나 사람들 중 난생 처음 겪어보는 전쟁과 씨름하면서 많은 이들이 성경의 메시지를 처음 경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2022년 현재 러시아 군에게 포위된 키예프의 상황에 딱 맞는 성경 말씀을 듣고 읽으며 종종 놀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시편 31편 말씀입니다. 새번역성경으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 31:21) [새번역성경]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당했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기에,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 31:22) [새번역성경] 내가 포위되었을 그 때, 나는 놀란 나머지 “내가 이제 주님의 눈 밖에 났구나” 생각하며 좌절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내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시 31:23) [새번역성경]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너희 모두 주님을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신실한 사람은 지켜 주시나, 거만한 사람은 가차없이 벌하신다. (시 31:24) [새번역성경]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특히 이 마지막 구절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Be strong and take heart, all you who hope in the Lord.”) 이 말씀이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군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더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전쟁의 공포와 끊임없이 도시에 떨어지는 포탄과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수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가며, 이 비극적이고 비참한 시련 속에서도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혼란, 물리적 위험과 피난의 어려움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리거나 떠나 보내야 하는 큰 아픔 속에서 사람들은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위기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예수님을 신뢰합니다.

비록 우크라이나와 같은 전쟁의 상황은 아니겠습니다만, 우리들도 삶 가운데 찾아오는 끊임없는 시련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시련과 아픔 그리고 고통 속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 속 이야기를 통해서 두려움과 염려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와 소망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요 13:36 – 14:1)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기 위하여 집밖을 나간 이후, 예수님은 자신도 이제 곧 제자들이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예수님께서 곧 자신들을 떠나리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예수님만 믿고 살아왔습니다. 직장도 포기하고, 가정과 자녀들도 뒤로 한 채 오직 예수님만 따라다녔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소망이었고,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Where I am going, you cannot come” (John 13:33) 하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깜짝 놀랐고, 곧 근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흥분에 쌓인 베드로는 누가 뭐라해도 자신만큼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3: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주님, 왜 지금은 제가 따라갈 수 없습니까? 저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제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하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표현을 한 번 현대식으로 바꿔봅시다. “예수님, 주님을 위해서라면 달리는 기차에 제 몸을 대신해서 뛰어들겠습니다.”, “예수님, 주님을 위해서라면 날아오는 총알도 제가 대신 맞겠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확신에 찬 어투로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그가 스스로 생각한 만큼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보여주셨습니다. 38절 말씀을 이어서 읽겠습니다. “(요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야 네가 정말 나를 위해 네 목숨을 내놓겠느냐?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는 누구라도 그에게로부터 예수님을 데려가려고 하면, 자기 자신은 죽기까지 싸울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만, 예수님은 베드로가 압력이 가해지면 자신을 아는 것조차 부인할 것임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마지막 세번째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장면을 한 번 살펴봅시다. “(마 26: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유대교 배경에서 무엇이든 세 번 행하는 것은 절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반복해서 부인했다는 사실은, 그의 부인이 한 번의 우연한 실수가 아닌 완전한 부인임을 나타냅니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당시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해온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이 굳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붙들고 살아갈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옹호할 때가 되자, 베드로는 엎드러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인하고, 또 부인했습니다. 시험 가운데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지혜나, 경험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하루에도 수백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노라고 호언장담했으나, 불과 몇 시간 후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닭이 울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며 그는 심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베드로가 실패한 이유는 주님보다 그 자신의 경험과 지혜와 능력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내 자신의 경험화 지혜와 능력보다,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지 우리를 아버지께 인도하신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야기처럼, 우리 삶 가운데는 우리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와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능력과 지혜보다,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속 제자들은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질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안 계시면 어찌하나 하고 염려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다가오는 위험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과 그 분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저를 따라 해 주시겠습니까? 문제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보다 크지 않다” 우리 상황이 아무리 크고 위협적으로 보여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능히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상황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는 말씀을 다른 말로 풀이해 보면, ‘근심으로 인하여 너희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말아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예배 드리고 계신 성도님들 가운데도, 최근에 일어난 삶의 이런저런 문제들로 인해서 마음이 괴로운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이상 근심으로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근심하며 살아가는 대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라고 초대하십니다. 마음 속 근심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우리 마음에 가득 채우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요 14:2-3)

예수님은 이제 곧 제자들을 떠나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가시고 그들과 함께 더 오래 계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임을 언급하시며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천국 소망이 있음을 밝히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상급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오면, 주님 계시는 천국에서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을 다시 한번 봅시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My Father’s house has many rooms!)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 ‘거할 곳’이라고 해석된 단어는 ‘방’ 또는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천국에는 믿는 자 누구나 거할 수 있는 충분한 곳이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유대 문화에서는 대가족이 확장된 집이나 근처에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결혼한 신랑은 아내를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신랑의 아버지는 필요한 경우 새 부부를 수용할 새 방을 지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장소가 있는 그의 집에 그의 가족을 모으십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거처를 예비하신다는 말씀은 마치 유대 문화에서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신혼방을 준비하듯이, 주님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살아갈 천국을 준비하고 계시는 모습을 잘 설명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22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리라”고 말씀하시고, 23절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영접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을 예비하고 계시며,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천국이 천국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도록 천국에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가장 큰 축복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천국을 미리 맛보며 살아가게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천국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을 미리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도 큰 기쁨이 있는데,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날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힘쓰고, 궁극적으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할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요 14:4-6)

예수님께서 천국을 예비하러 가실 계획을 말씀한 이후,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가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5-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길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주는 길이 되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길 말고도, 천국에 가는 여러가지 다양한 길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완전한 만족을 찾을 수 없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궁극적인 희망을 찾을 수 없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가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시는 모든 것을 신뢰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많은 진리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 분은 유일한 진리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이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생명을 가져오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인생은 숨쉬고, 먹고, 자는 것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풍성한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없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그 안에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1-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일 5:11) [쉬운성경 번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이 생명이 바로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일 5:12) [쉬운성경 번역] 누구든지 아들을 믿는 사람은 이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자에게 약속된 영생은 단지 미래를 위해 예약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이 지금 생명을 그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등산객은 나무의 어느 쪽에서 이끼가 자라는지 보며, 북쪽 방향을 결정합니다. 이끼는 일반적으로 어둡고 습한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에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나무의 북쪽에 잘 자라납니다. 또한 여행자가 밤에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는 하늘에 떠 있는 북극성을 관찰하여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에도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도움을 주는 요소듯이 있듯이,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구원자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