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8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시리즈 (10) 아담의 원죄 (창3:1-6)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는 두 가지 길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완전한 순종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또한 그는 죽음을 가져오는 불순종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에게는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아담이 죄를 범하도록 유혹할 수는 있어도, 강제적으로 아담이 죄를 짓도록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아담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있었습니다. 또한 아담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선을 택할 수 있는 자유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범죄하게 됩니다. 그 결과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아담의 모든 후손은 죄의 영향력 아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들도 여전히 선을 선과 악,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아담에게도 그러했듯이 사탄은 우리가 범죄하도록 유혹은 할 수 있으나 강제적으로 우리가 죄를 짓도록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자연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죄의 영향력으로 인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인 모든 타락한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선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로마서 3장 말씀을 보면 이 세상에 선을 행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정말 이 세상에 선을 행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까요? 예수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세상에 우리가 볼 때 자기 나름대로 이웃들을 돕고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말에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해서 봉사하며 자신의 시간과 삶을 나누어 주며 섬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또한 평일에도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성경은 아담의 타락 이후 선을 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선’이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인간의 기준에서 정한 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타락과 함께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 것이죠.

죄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은 불이행의 죄가 있습니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삶 등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두 번째로 죄는,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하는 죄가 있습니다. 이러한 죄악들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것, 도둑질을 하는 것, 폭력을 행하는 것 등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은 이 두 가지 종류의 죄를 모두 짓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락한 이후 인간은 죄를 안 짓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고,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한 것이죠.

아담은 단지 최초의 인간일 뿐 아니라, 온 인류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죄와 비참함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죄의 결과가 죽음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서 고통받고 살아가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굴레에 매여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내가 선악과를 직접 따먹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내가 아담의 범죄의 책임에 영향을 받아야 합니까?” 사람들은 아담의 원죄에 대해서 그 후손들이 함께 책임을 져야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일 아담이었다면, 내가 만일 아담과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는 결코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더러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러할까요? 이미 우리의 삶의 모습들을 보면, 우리 안에 있는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담의 원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범한 죄들을 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연약한 인간이 얼마나 악 된 존재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들은 죄를 이길 힘과 능력을 갖지 못하여 죄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죄를 안 짓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죠. 이러한 성도의 영적 상태를 가리켜서 로마서 6장에서는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롬 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리스도인이 되어 누리는 여러가지 축복 중 하나는 바로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예수 믿기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그러한 삶이 죄인지도 모른 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행하며 살아가는 자유와 능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인류 대표로써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듯이, 또 다른 아담, 제2의 아담이라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7-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죄와 사망의 저주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는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애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드셨냐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한 번 이런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따금씩 드라마나 영화 혹은 실제로 주변 상황을 보면,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이 집착이 되어 상대방의 자유를 빼앗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상대방이 무조건적으로 나만 사랑하도록 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른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행동하는 것은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내 소유물로 대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시키는 것은, 상대방을 인격체가 아닌 기계나 로봇으로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하는 기계나 도구로 삼기 위해서 우리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아담이 범죄하여 모든 인간이 죄의 영향력에 들어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자,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교제 나누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