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6 [그리스도와 연결된 삶] 시리즈 (1) 겸손하게 섬기는 삶 (요한복음 13장 3-17절)

서론.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Nathan Chen

지난달 2월 9일 저녁, 미국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인 22살의 Nathan Chen 선수가 드디어 차례가 되어 빙판에 올라섰습니다. 불과 4분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 지난 4년간에 올림픽을 준비하며 흘린 모든 땀과 그 동안의 노력이 담기게 됩니다. 미국 전역의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은 숨을 죽이고 베이징 올림픽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시청자들은 힘차게 뛰어올라 공중에서 네 번이나 회전하는 하는 Nathan이 ‘혹시 착지하며 넘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 채 Nathan의 프리 스케이팅을 지켜보았습니다. 드디어 4분이 지나가고 노래가 끝나자, TV 스크린을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는 다섯차례의 고난이도 4회전 점프를 모두 성공시켰습니다. 이 날 Nathan은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습니다.

경기가 다 끝난 후,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Nathan Chen의 스토리를 소개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Hetty Wang은 다섯 아이의 엄마입니다. Nathan이 막내입니다. Nathan은 어린시절부터 스케이팅을 시작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수년 동안 전임 코치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어머니가 모든 연습에 와서 그가 배우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몇 시간 동안이나 아들과 함께 하며 코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본래 Nathan 집은 Utah에 있습니다. 그런데 피켜 스케이팅 훈련을 받으려면 켈리포니아까지 가야 합니다. 주에서 주를 넘어가야 하는 거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훈련을 위해서 Toyota Prius에 어린 아들을 태우고, 유타와 켈리포니아 사이를 수도 없이 오고 가며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운전해야 했습니다.

Nathan이 올림픽에서 경기가 끝난 직후, 미국 NBC 방송과 생방송 인터뷰를 하며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 먼 길을 운전하면서 단 한 번도 거리가 너무 멀거나 운전이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스케이트를 계속 탈 수 있도록 그 동안 포기하지 않고 나를 지원해주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 마음이 북받쳐옵니다. “Without her support, I never would have made it to where I am now.” (“저의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 있는 이 자리에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Nathan Chen 선수의 영광스런 금메달 뒤에는 그의 어머니 Hetty Wang의 겸손한 섬김이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뒤에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도록 도와 주신 귀한 섬김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과 섬김은 우리들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도록 새로운 은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들 모두를 섬겨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겸손한 섬김의 본을 따라, 우리들도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펴볼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총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1-12장까지 기록은 총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에 비해 요한복음 13-18장, 이 여섯 장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에게 이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날 저녁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시작되어 4월 10일 주일까지 앞으로 우리가 6주간 함께 살펴볼, 새로운 주일예배 시리즈인 [그리스도와 연결된 삶]의 모든 본문이 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1. 예수님은 겸손한 섬김의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말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오늘 말씀을 보니,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들에게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을 통해 잘 알려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마지막 저녁식사입니다. 바로 그 밤 예수님께서는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주님은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주님은 손수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다른 세 복음서와 비교해 보면,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시작부터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을 봅시다. “(요 1:1) [쉬운성경 번역]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요 1:2) [쉬운성경 번역] 그분은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어서 14절 상반절을 봅시다. “(요 1:14 상반절) [쉬운성경 번역]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에서 사셨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그의 스승이신 예수가 곧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밝히 선포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눈이 먼 장님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셨고, 말씀으로 폭풍우와 성난 파도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말씀으로 내쫓으셨고,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에 안치되어 있던 나사로로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모든 기적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직접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발을 닦아 물기를 말려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4-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요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예수님은 가장 낮은 종이나 제자가 해야 할 일을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기는 것은 존경의 표시로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의 발을 절대로 씻기지 않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 되시는 예수님께서 종의 모습을 취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그것은 어떤 성스러운 의식적인 행위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발을 씻는 행위는 비천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권세를 지신 예수님께서 흙 길을 걸어온 제자들의 발 앞에 허리를 숙이시고 몸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손수 문질러 닦아주고, 그들의 발이 마르도록 수건으로 닦아주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대단히 놀라운 사건 아닙니까? 미국 대통령이 우리 교회 와서 남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대통령이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손에 세제를 묻힌 스폰지를 잡고 무릎을 꿇고 더러운 변기통을 닦고 있습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라운 일 아닙니까? 높은 권세를 가진 대통령이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이 듭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세상 모든 News가 앞다투어 방영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더욱 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온 천하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 위에 으뜸이 되시는, 하나님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자발적으로 종의 자리를 취하시고 허리를 숙여 몸을 낮추시고 제자들의 흙먼지 묻은 더러운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 당시에는 대부분 도로가 비포장이었고, 신발은 운동화가 아닌 샌들인지라, 외출하고 돌아온 사람들 발톱 사이에는 쉽게 이물질이 끼고, 발 여기저기에 흙먼지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면 노예가 대야에 물을 떠서 주인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손님이 집에 방문하는 경우, 집주인은 하인을 지정하여 손님을 맞이하고 그의 발을 씻기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집안의 가장 천한 종이 이 일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하고 있는 장소는 대여한 곳이라, 그들의 발을 씻어줄 역할을 할 노예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서로 발을 씻겨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큰 사람인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사람이 될지, 예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시고 왕으로 다스리실 때 서로 누가 첫째가 될지 둘째가 될지 열 뛴 토론을 계속해 왔습니다. 저마다 다른 제자보다 위에 서고 싶었지 낮은 위치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어찌 당신 발을 씻겠소? 그렇게 행하는 것은 내가 마치 노예가 되어 당신 보다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 아니요?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소!” 아무도 발을 씻을 물 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몸소 섬김의 본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섬김 받는 삶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라고 초대하십니다. 마태복음 20장 25-2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상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있습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에게 섬김 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질서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서로 섬기며 살아가는 삶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도록 본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우리는 겸손하게 섬기는 주님의 모습 본받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가장 낮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으로써 가장 높은 사람이 오히려 가장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완전히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따르는 선생님께서 낮고 천한 노예나 하는 일을 하시게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그의 발을 씻기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주님, 어찌 주님께서 제 발을 씻기시렵니까?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하고 베드로가 말하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8절입니다. “(요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베드로야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자신의 삶이 예수님과 가까이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주여 내 발뿐 아니라 내 손과 머리도 하옵소서”(9절)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발을 씻는 행위가 예수님과 나란히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면 베드로는 발 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씻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고 따르는 베드로는 이미 죄사함 받았음으로, 그에게는 목욕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발에 묻은 더러운 흙먼지와 같은 일상 속의 죄를 씻고 또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들을 모든 죄악의 허물로부터 깨끗하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목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흙먼지로 더러워진 발을 씻어야 했던 것처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날마다 일상 속에서 살아가며 짓는 더러운 죄들을 회개함으로써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 예수님은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스승이며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과 같이, 제자들도 서로의 발을 씻겨주며 살아가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신 대로 우리들도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도록 친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순종과 섬김과 자기 부인의 길을 걷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서로 높아지고 많이 차지하고 앞서려고 하는 이 세상 질서를 우리 삶에서부터 뒤집지 않고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새 질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리가 ‘섬김의 자리’가 되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본문 16-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종은 주인보다 결코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겸손한 모습으로 발을 씻기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셨다면, 예수의 종들인 우리들도 그와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1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겸손한 섬김을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가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방식으로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와 같은 말씀에 순종할 때 축복하겠다고 친히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한 섬김의 모습을 따라, 우리들도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를 닮아가십시오. 코너스톤 교회 성도들 모두가 겸손한 자세로 서로를 섬기는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복된 교회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