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6 인생의 함정을 피하라 시리즈 (3) 불의의 함정을 피하라 (창세기 40장 1-23절)


서론. 불의한 세상 때문에 포기하고 싶을 때
지난 1999년 Maitland Florida에서 태어나 올해 23살이 된 [Chris Nikic]은 다운 증후군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는 태어나자 마자 심장에 문제가 있어 5개월이 되었을 때 큰 심장 수술(open-heart surgery)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느리고, 또한 하체와 다리 근육에 이상이 있어 3살이 되었지만 보행 보조기(walker)가 없이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성인이 된 이후 ‘철인3종 경기’(ironman triathlon)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철인3종 경기는 웬만큼 좋은 체력을 가진 사람들도 완주하기 힘이 듭니다. 수영 2.4마일, 자전거 112마일, 달리기 26.2 마일을 모두 17시간 안에 완주해야 합니다. 따라서 Chris가 철인3종경기를 완주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Chris는 매일 “1%만 더 나아지자”(1% Better)는 목표를 가지고 매일 운동을 했습니다. 하루에 8시간씩 일주일에 6일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작년 2021년도 9월에 [2022년도 월드 기네스북]이 출간되었을 때, 그의 이름 [Chris Nikic]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Chris Nikic]은 다운 신드롬을 가진 사람 중 전 세계 최초로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한 첫 번째 인물로 기네스북에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트레이닝을 도와준 가이드와 함께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한 Chris는 16시간 46분 9초에 레이스를 마쳤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미국 유명 방송국들, CNN, NBC, ABC 등 모두 앞다투어 세계적인 대기록을 이룬 [Chris Nikic]을 인터뷰했습니다. 사람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 비밀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습니다. Chris의 아버지 Nik이 TV 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아들 크리스의 가장 큰 업적은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한 것이 아닙니다. 제 아들의 가장 큰 성취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가 보여준 ‘끈기’와 ‘강인함’입니다. 힘들어도 포기할 변명거리를 찾지 아니하고, 하루하루 조금씩 더 나아지려고 했던 그의 ‘헌신’이야 말로 그가 이룬 가장 큰 성취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중증 장애를 안고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큰 불행이고 불공평한 일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 누구도 그러한 삶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가능하다면 선택하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란, 꼭 우리가 원하는 방향만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원치 않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커다란 교통 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있는가 하면, 성실하고 건강하게 잘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몸이 아파 병원에 찾아갔다가 의사로부터 암 말기 진단을 받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가 불치병 판정을 받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가정에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당했던 아내가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성과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이 평생 땀 흘려 모아온 돈을 가까운 이가 훔쳐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삶의 모습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공평해 보입니다. 착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랑 많고 온정을 베푸는 사람이 비즈니스가 어려워 망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우리 사회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이용하여 거짓말과 사기로 다른 사람들 등쳐 먹는 악한 사람들은 아무 문제없이 건강하고 부유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도 합니다. 이런 세상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합니다. 불의한 세상과 맞서 싸우기를 포기한 채, 세상을 욕하며 날마다 술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고, 불의하다는 것 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입니다. 나름 남들에게 피해주지 아니하고, 가족과 직장 일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도 갑자기 찾아오는 이유 모를 불행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의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불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 요셉의 스토리를 살펴볼 것입니다. 과연 요셉은 억울하고 눈물나는 어려운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타개해 나갔을까요?

1. 불의한 세상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지난 주 주일에 살펴본 이야기처럼, 노예가 된 요셉의 이집트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는 날마다 요셉에게 그녀와 잠자리를 가질 것을 유혹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힘쓰던 요셉이었기에, 그는 주인의 아내의 달콤한 유혹을 단칼에 뿌리쳤습니다. 보디발 아내는 자신을 거부하는 요셉을 괘씸하게 여겼습니다. 이에 그녀는 요셉이 아무도 집에 없는 틈을 타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요셉을 모함하였습니다. 자기 아내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은 보디발은 심히 분노하여 그 즉시 요셉을 잡아 지하 감옥에 가둬버렸습니다. 결국 아무 잘못도 없는 요셉이 몹시도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삶을 잠시 돌아봅시다. 17살이 되던 해인 11년전 즈음 가족에게 배신당해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온 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억울한 일입니다. 그래도 요셉은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애굽에서 나름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해서 바닥에서 가정총무까지 승진했습니다. “이제야 숨 좀 쉴만하다” 싶었는데, 한 사람의 거짓 모함으로 인해 그만 한 순간에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요셉의 실수나 잘못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성폭력 미수란 죄목으로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죄가 없는 정직한 사람이 죄수가 되어 차갑고 컴컴한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요셉의 마음은 얼마나 시리고 아프고 서글펐을까요? 참 억울합니다.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고, 정의가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와 같이 세상에 불의가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마치 온 우주가 작정하고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 같이 느껴지는 날입니다. “과연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과연 이처럼 불의할 수 있는가? 도대체 정의는 어디 있는가?” 이처럼 세상이 불의해 보이는 순간, 불의에 희생양이 되어 억울함이 극에 달아오르고, 두 눈에 슬픔의 눈물이 차오르는 그 순간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요셉의 인생처럼 때때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과 사고들이 발생함으로 인해 우리 삶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실로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틈을 주지 않고, 불공평하고 불의한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넣기도 합니다. 지난 2019년도 9월 21일 애틀란타 주에 살고 있던 한인 일가족이 타고 있던 차량이 프리웨이에서 역주행 차량에 정면으로 들이 받혀 한인 가족 3명이 그 자리에서 모두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운전자는 전 애틀랜타 한인회장인 송준희씨와 부인 송춘희씨 그리고 막내딸 줄리 송이었습니다. 사고를 낸 상대 차량 운전자는 2018년도에 음주운전(DUI)으로 두 차례 체포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도 이 역주행 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송씨와 그의 가족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실수도 잘못도 한 것이 없습니다. 주황선을 넘어 역주행 해 오는 차량과 충돌하여 일가족이 죽었습니다. 유가족들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 이런 슬픈 일이 다 있습니까?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의가 다름 아닌 죄의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좋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즉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던 바로 그 때에는 이 세상에 불의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완벽했던 세상의 정의는 깨져버렸습니다. 죄는 인간을 불의에 빠트렸고, 결국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와 세상은 불의와 불공평한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불의가 가득한 세상이지만, 지금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아무런 잘못도 한 것이 없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그 춥고 컴컴한 지하 감옥 속에 갇힌 요셉과 여전히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창세기 39장 20-23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말성경 번역입니다. “(39:20) [우리말성경]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데려다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39:21) [우리말성경] 그러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요셉을 간수의 마음에 들게 하셨습니다. (39:22) [우리말성경] 간수는 요셉에게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맡겼습니다. (39:23) [우리말성경] 간수는 요셉이 맡은 모든 것에 대해 조금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나의 은혜” 아무 잘못이 없는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것이 그가 겪게 된 세상의 불의입니다. 이 가운데 성경은 윌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줍니까?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어떤 단어로 시작합니까? “그러나…”입니다. 비록 세상은 불의가 가득한 세상이지만, 그러나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돌을 던질 때, 억울한 일을 당하여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누구나 불의한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창세기 39장 21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에 밑줄을 긋고, 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올 한 해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요셉과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나와 동일하게 함께하심을 마음에 새기길 바랍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가 방금 읽은 20-23절의 내용과 패턴은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기 전 이야기인 창세기 39장 1-4절과 아주 흡사합니다. 요셉은 감옥 밖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형통하였고,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들어온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감옥 밖이나 안이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요셉과 함께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39장 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글성경에 ‘인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헤세드’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헤세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비록 요셉이 처한 상황은 변했으나, 요셉을 향한 주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힘든 상황에 처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과 역경을 마주하든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불의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구원받은 주의 자녀들과 동일하게 함께하고 계십니다.
한 번 저를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마침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시편 34편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34: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의인들도 고난을 당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인생의 고난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인생의 고난의 학교를 입학하지 않고 그냥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자의 기쁨과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 어떤 수많은 역경이 찾아와도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우리를 건지신다는 사실이 우리 믿는 자들의 기쁨과 소망입니다. 옆에 계신 분을 보고 말씀해 주십시오. “집사님 힘내세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입니다.”

2. 불의를 마주할 때에도 계속해서 선을 행하라
지하 감옥에 갇힌 요셉은 낙심하고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더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모습을 보면 그는 감옥 밖에 있을 때나 안에 있을 때나 한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기 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감옥 밖에서도 함께하신 하나님이 감옥 안에서도 그와 함께하고 계심을 신뢰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요셉이 애굽의 관리들의 꿈을 해석해주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 왕의 신하 가운데 두 사람이 이집트 왕에게 미움을 샀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왕이 마시는 술을 관장하는 신하였고 또 다른 사람은 왕이 먹는 빵을 관장하는 신하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두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마침 그 감옥은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이었습니다. 얼마 후 하루는 두 사람이 각자 같은 날 밤에 서로 다른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요셉이 이들에게 찾아오니, 그들의 안색이 침울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두 분의 얼굴빛이 왜 그리 안 좋으십니까?” 그러자 그 두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꿈은 꾸었는데 꿈을 풀이해 줄 사람이 없구나.” 자 이 때 요셉이 이 두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창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우리는 이 대목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된 요셉이지만, 그가 여전히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주님의 권능을 변함없이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요셉과 같이 시련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심할 때 우리의 신앙과 성품은 성장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도 많은 고난을 당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이 세상을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 했고, 그 역시 수차례 불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다윗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가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그의 장인이 었던 사울 왕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 입장에서 보면 이는 얼마나 불의한 상황입니까? 그러나 그 때마다 다윗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구원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정의를 이루시고 선을 베푸실 것을 신뢰하였습니다. 시편 27편 13-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 27:13) 내가 참으로 굳게 믿는 것은 살아 생전에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리라는 것입니다. (시 27:14)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갖고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불의한 일을 당해 고난을 겪고 있고, 억울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다윗은 어떻게 조언하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갖고 믿음으로 오래 참고 견디며 여호와를 기다리면, 살아 생전에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경험하게 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당하여 노예로 팔려가고, 여주인의 모함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가 당한 고난과 수치를 생각하면 요셉은 분명 수많은 좌절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언제 어디서나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우리는 혼자 시련을 겪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요셉의 가혹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견디도록 도울 힘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당됩니다. 불의를 마주할 때에도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기를 선택하십시오. 세상의 불의에도 끝까지 선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 지혜입니다. 때가 차면,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분의 선하심을 맛보는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가지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선을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듣는 분들 가운데는 이미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계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분명 현재 상황은 억울하여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불의함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용기를 갖고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오. 넘어뜨리고 넘어뜨려도 다시 우뚝 일어나는 오뚜기처럼, 우리 삶에 찾아온 세상의 불의와 어려운 고난과 힘든 역경 속에서도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들고 주와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요셉, 믿음의 오뚜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인내를 위한 기도.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