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8 큰 무리, 큰 잔치 (요한복음 6장 1-15절)


예수님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파 굶주린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왜 빌립에게 물어보셨을까요?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빌립이 무리들의 먹을 것을 담당하는 책임자가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또는 빌립이 계산이 빠르고 행동도 빠른 사람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어찌되었든 예수님의 질문을 들은 빌립은 곧바로 주판 알을 옮기고, 머리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빵을 조금씩만 먹는다 해도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임금입니다. 따라서 200 데나리온은 한 사람의 노동자가 33주간 또는 8개월 동한 일한 임금을 말합니다.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서 오늘날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100불을 번다고 할 때 200 데나리온은 약 2만불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제자들의 수중에는 이만한 큰 돈이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만약에 이백 데나리온의 헌금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지금 광야 한 가운데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만한 양의 빵을 공급해 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날 모인 이들의 숫자를 성인 남자만 5천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인원수를 헤아림에 있어 어린아이와 여자를 제외하고 성인 남자만을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지금 이 들판에는 적어도 만명 이상의 인구가 앉아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라서는 2만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고 추측해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2천년 전 갈릴리 바다 건너편 빈 들판에 모인 수많은 이들을 위한 빵을 구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제출한 보고서의 결론(The bottom line)은 “It’s impossible” 이었습니다. 7절 말씀 읽겠습니다.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주님, 이 사람들에게 빵을 한 입씩 먹이려 해도 최소 2만불이나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설령 그만한 돈이 있다해도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만큼의 빵을 살 곳도 없습니다.” 여태까지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주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기적들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믿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빌립은 눈 앞에 닥친 문제 앞에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다 못해 “주님, 주님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볼 때는 이러이러해서 안될 것 같습니다만, 주님께서는 능력의 주님이시니 하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와 같이 본문에는 빌립이 예수님께 도움을 부탁하거나 예수님을 의지한 흔적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 앞에 계산기만 두드려보고, 자기 지혜와 경험으로만 해결하려는 빌립의 모습이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빌립은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이 모자라다 생각했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주님께 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전에 이 문제를 그의 제자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 시험해보고자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란 죄를 짓게 하려는 시험이거나, 낙담하게 하려는 시험이 아닙니다. ‘시험’이란, 사람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그에게 앞으로 사역 가운데 맞닥뜨리게 될 여러가지 환난과 문제들을 그의 지식이나 계산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영적 교훈을 주시기 위한 기회로 사용하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삶에 찾아온 이 코로나 사태도 그 누군가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사용하시는 시험 기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찾아온 이 위기가,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오천 명을 먹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고서를 제출하던 바로 그 때, 또 다른 제자인 안드레가 한 아이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어린 아이가 주님께 드린 도시락 반찬을 한 번 살펴볼까요? 먼저 보리떡 다섯 개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당시 유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빵은 밀 빵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보리로 만든 빵은 집안 형편이 어렵고 가난한 자들의 주식이었습니다. 보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구원의 식량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날 먹을 것이 없어 먹던 쌀밥 대신에 먹은 밥이 무슨 밥이에요? 바로 보리밥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 도시락을 드린 이 어린 아이도 가난한 가정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이 도시락에는 보리빵 다섯 덩이와 함께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이 밥을 먹던 양식을 살펴보면, 이것은 자반 고등어처럼 소금에 저려 놓은 것이나 숯불에 구운 물고기였을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물고기’라는 단어는 “읖사리온”이란 단어로 쓰여 있습니다. 이는 크기가 크지 않은 작은 물고기(a little fish)를 의미합니다. 아이가 먹을 도시락이었으니 그의 어머니가 크기가 아담한 자반 생선 두 마리를 도시락통에 넣어 준 것이죠. 어린 아이의 도시락입니다. 떡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고, 물고기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안드레가 예수님께 드린 작은 어린 아이의 도시락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안드레처럼 “작은 것이지만 한 번 주님께 드려보자, 그리고 그 다음은 주님께 맡겨보자”하는 믿음과 행동은 결국 큰 표적을 낳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9절을 봅시다.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안드레는 예수님께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드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님,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가난한 어린이가 준 보리빵 다섯 덩이, 조그만 자반 생선 두 마리입니다. 주님 그러나 이러한 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늘 이 안드레의 질문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과도 비슷합니다.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교회 나와서 기도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수많은 문제들 앞에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주님 제가 겪고 있는 이 오래된 질병 앞에서 이 작은 믿음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작은 몸으로 무릎 꿇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이 내 가정에 찾아온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큰 해결책이 되겠습니까?” 안드레의 질문처럼 우리들도 내가 가진 것이 형편없어 보이고, 문제를 해결할 지혜와 힘이 없음에 낙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오늘 기적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가지고 올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작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들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놀랍게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모세의 손에 붙잡힌 막대기를 기억하십시오. 광야에서 양을 치던 평범한 막대기였으나, 하나님께서 사용 하시자, 홍해 바다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는 위대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의 손에 들린 물맷돌을 기억하십시오. 그 역시 양을 칠 때 사용되는 일상적인 도구 였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자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아무리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세상 볼 때는 특출난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능력의 도구로 변화 됩니다. 하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사용된 두개의 나무 조각과 3개의 못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작아 보일수록 크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크신 능력으로 역사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 도시락이 어린 아이의 도시락이라 했습니다. 어린 아이 한 사람이 먹을 정도 크기의 보리떡 다섯 개, 그리고 그다지 크지 않은 물고기 두 마리 입니다. 가난했던 어린 아이가 주님께 드린 음식은 얼마나 초라한 도시락이었습니까? 어린 아이도 처음부터 5천명을 먹일 생각으로 예수님께 도시락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하루 종일 저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열심히 사역 하시는데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 비록 작은 도시락이지만 이거라도 드려야겠다.” 하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자기의 도시락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얼마나 성숙한 어린이 입니까? 이 도시락을 주님께 드리면 당장 이 소년도 먹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의 배에서도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가 먹으라고 정성스럽게 챙겨 주신 도시락… 어쩌면 그 도시락은 그 가난했던 소년이 가진 전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소년은 비록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비록 부잣집 도련님이 먹을만한 풍성한 산해진미가 담긴 도시락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조그마한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소년의 작은 헌신을 받으셨습니다. 그 작은 헌신을 통하여 성인 남자만 5천명을 먹이시고 열 두 광주리를 남기는 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성인 남자가 무려 5천명이나 되었지만, 이 소년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예수님을 위해 빵 한 조각 가져다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필요는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몸으로 헌신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5천명이 모였는데 그 중에 먹을 것 있는 사람이 한 두 명은 있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그 가운데는 이 소년이 예수님께 드린 도시락보다도 더 양질의 식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이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의탁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우리 삶을 맡기십시오. 주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비록 어린 소년의 한 끼 식사였을 보잘것없는 도시락이었습니다. 큰 무리에게 그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만은 그것을 예수님께 드린 이 어린 아이의 섬김과 헌신을 기억하십시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과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바친 어린 소년의 고귀한 희생과 섬김의 마음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하나님께 자원하는 마음으로 삶을 드리기를 기뻐하십시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통하여 더 많은 영혼들을 먹이고 살리는 위대한 주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주인공들이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