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3 추수할 때가 되었도다 (요한복음 4장 27-42절)


진실한 만남에는 변화가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인간과 인간 간의 만남이 그렇습니다. 특히 예수와의 만남에는 반드시 변화가 동반됩니다. 절대 구세주인 예수께서는 만남을 통해서 우리 영혼을 일깨우시고 잘못된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기사(記事)는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한 자가 과연 어떠한 변화를 보이게 되는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사마리아 여인이 보여준 일련의 변화된 행동을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나날이 새롭게 변화되어 가는 성도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물동이를 버렸습니다.
예수와의 대화를 마친 여인(1-26절)이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물동이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물동이를 들고 육신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안달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물동이를 미련 없이 버 리고 동네로 들어갔습니다(28절). 물동이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삶의 한 방편이요, 욕구 충족의 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물동이를 버리는 행위는 이전의 죄악 된 삶을 청산하는 상징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인간적 방책을 구사하여 육신적 만족을 추구하려 했던 과거의 행태와 결별한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여하튼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단순한 기쁨에서라기보다는 변화 받은 자로서의 의지적인 결단을 이러한 행동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그의 형제를 향해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4:19)고 하셨을 때, 그들은 ‘그물’ 과 배’ 를 버려 두고 쫓았습니다. 이는 이전까지의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과 비전(vision)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림으로써 보다 중요한 것, 곧 동네로 들어가 예수를 증거하는 사명을 택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전진과 성숙을 위해서는 이러한 포기와 결별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한지는 자신이 향유했던 이전의 것들을 버리는 작업을 기꺼이 감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가치관이든, 누리고 있던 물질이나 명예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전 것의 포기(고후 5:17)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실제로 변화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세계관과 삶의 행태, 그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자에게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눅 9:23)고 권면 하십니다.

2.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물동이를 버린 행위가 과거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한 의지적인 행위였다면, 그녀의 이러한 의지는 예수를 증거하는 것에서 이제 구체적으로 실천되었습니다. 그녀는 곧장 10여 리나 되는 동네로 들어가 자신이 체험한 사건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이같은 행위는 그녀가 받은 은혜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그녀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고 예수를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39-42절). 그러나 그녀의 경우에 있어서는 복음을 증거하기가 어느 누구보다도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수차례 의 결혼으로 인해 동네 주민들에게 음탕하고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 찍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혐오와 적대감, 심지어 노골적인 위협이 그녀에게 가해졌을 것이라고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설령 그녀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믿으려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담 대하게 자신의 신앙 체험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29,39절).
‘와 보라’ (come and see)는 초청 속에서 그녀 자신의 체험을 증거하고 나아가 메시야 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과연 그녀가 얼마만큼 강력하고 진실하게 예수를 증거 했는지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품행이 좋지 않은 그녀의 말을 믿고 예수 앞으로 나온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삶과 가치관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의 역사를 생생하게 불신자들에게 전파하고 있습니까? 구원함을 입어 변화 받은 영혼은 반드시 자신의 기쁨을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그리스도)을 전하지 않으면 심중에 불이 붙는 듯한 안타까움이 일어 견딜 수 없다는 예레미야의 고백(렘 20:9)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3. 신앙의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얼핏 보면 예수를 증거한것으로 그녀의 신앙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처음부터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녀의 신앙이 처음부터 점진적으로 성숙해 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와의 첫 대변에서 일말의 거부감을 나타냈습니다(9절). 이러한 거부감은 그녀의 질문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2절)에서 보다 노골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스도와의 대화를 통해 지신의 죄를 고백하고 드디어 겸허히 구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15절). 그녀는 예배의 참된 의미를 묻는 질문을 해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게 됩니다(25절). 이렇게 볼 때 그녀의 예수께 대한 호칭은 ‘당신’ (you,9절}→ ‘주’ (Lord,15절)→ ‘선지자’ (prophet, 19절}→ ‘메시야, 곧 그리스도’ (Messiah, 25, 29절) 등으로 변화되어감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는 예수를 구세주로 점점 명확하게 인식,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신앙은 이와 같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신앙 연령을 [아이 → 청년 → 아비] 세 부류로 구분하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신앙의 진보와 성숙에 이르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히 6:1)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