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 예수 시리즈 (5) 예수는 하나님의 빛과 영광 (누가복음 2장 25-35절)

들어가며.
혹시 요리하는 것 좋아하십니까? 이전에는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지인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은 요리 학원에 등록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사서 레시피를 읽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요리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 따로 시간과 돈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요리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 귀찮게 물어보는 일도 배우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요리계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집에서 요리를 배우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요즘에는 일반인 중에서도 요리를 전문가처럼 잘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여기에는 인터넷 매체의 발달이 큰 변화로 작용했고, 무엇보다 현대인의 평균 요리 실력이 월등하게 성장한 큰 공헌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유튜브의 등장입니다. 이전에는 요리를 전화 수화기 넘어 배웠습니다 “엄마, 갈비 맛있게 재울 때 뭐 넣어야 해? 엄마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려면 어떻게 해야 해?” 또는 레시피가 적인 요리책을 넘겨가며 글로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습니다. 유튜브에 ‘갈비 맛있게 재우는 법’,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 검색하면 전문가들이 수년 동안 갈고 닦은 자신들만의 요리비법을 전수해준다.
글로 배우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던 일들이 영상을 통해 배움으로써 보다 더 쉽게 기술과 지혜를 이해하고 새로운 경험을 습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집을 만드는 방법을 책으로만 배워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책을 통해 집을 제작하는 일은 너무 어렵습니다. 기초공사는 어떻게 하고, 골조공사, 외장공사, 내장공사 등 집 짓기를 글로 배운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집을 제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동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전문가들은 교육 영상만 있다면 일반인들도 집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 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유튜브에 집 제작에 관한 영상들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살고 있는 집에 문제가 있어 고쳐야 할 것이 생기면 전문가를 부르기 보다 집 주인이 직접 동영상 찾아보고 D.I.Y.(Do it yourself)로 자신의 집을 수리하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눈에 뛰게 증거하였습니다. 이제는 학교 교육, 자동차 수리와 같은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지식들이 대부분 영상을 통해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활자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코끼리를 한 번도 본적 없는 한 어린이에게 제가 “코끼리는 이렇게 생겼어. 덩치가 크고. 코가 길어. 귀는 사람 몸통 보다 크단다”하는 식으로 제가 코끼리에 대해서 백번 설명해주는 것보다, 어린 아이를 동물원에 데리고 가서 살아 있는 코끼리를 한 번 보여주는 것 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직접 눈으로 본 아이와 코끼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다만 코끼리에 대해서 여러 번 듣기만 한 아이하고, 누가 더 코끼리에 대해서 정확하고 분명한 지식을 갖고 있겠습니까? 코끼리를 직접 본 어린이 입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에서 얻게 되는 지식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와 이 세상 다른 종교들이 가진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타종교들은 신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신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여줍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가르치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주님께 요청했습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한 번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니다. “빌립아, 내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모르느냐? 누구든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우리 예수님과 빌립이 대화하는 이 장면을 요한복음 14장 8-11절 말씀을 통해서 한 번 보겠습니다. 우리말성경 번역입니다. “(요 14:8) [우리말 성경] 빌립이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요 14:9) [우리말 성경]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모르느냐? 누구든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느냐? (요 14:10) [우리말 성경]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다. 오직 살아 계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요 14:11) [우리말 성경]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주실 것을 요청했고, 그런 빌립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누구든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이라 말하겠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 분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언어와 그가 가진 무수히 많은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장님에게 무지개의 저 다양한 빛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눈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땅거미질 때 붉게 몰들어가는 저녁 노을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저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와 끝이 없는 푸른 망망대해, 포근한 겨울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의 아름다움은 글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자연현상도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것만,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어찌 유한한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스스로 우리에게 그 자신을 보여주셨음을 신학적인 용어로 ‘계시'(revelation)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계시가 인류 역사 가운데 최고조로 드러난 것이 바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계시의 클라이막스, 계시의 절정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8절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쉬운성경 번역입니다. “(요 1:18) [쉬운 성경]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시며, 아버지 곁에 계시던 독생자이신 분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2장 4절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계 22:4)[우리말 성경]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며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천국에 이르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장 15절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골 1:15) [쉬운 성경]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빛과 영광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그의 제자 도마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오늘 우리는 이 예수를 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가 바로 ‘시므온’입니다.

1. 시므온은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25-29절)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이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율법의 정결예식을 따라 처음 태어난 아기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여 드리기 위한 여정이고, 또한 산모 마리아의 정결예식을 드리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이 때 요셉과 마리아는 시므온이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시므온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5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5절 말씀을 보니 시므온을 ‘의로운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시므온이 ‘의롭다’는 것이 죄가 없는 완전한 자란 뜻은 아닙니다. 의롭다는 말은 그가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 숭고한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올바르고, 정의롭고, 공정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인물입니다. 또한 25절에 시므온을 ‘경건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경건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간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삶의 중심에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고 의도적으로 살아갔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삶의 책임들과 신념들을 진지하게 여기며 살아간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이와 같이 시므온을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그의 증언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25절을 이어서 보면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하나님꼐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해주신 메시아가 도래함으로써 이스라엘에 참된 위로와 새로운 소망이 일어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의롭고 경건하고 이스라엘의 참된 위로되실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시므온에게 성령이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가장 핵심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므온에게 성령이 임하셨음은, 그가 예수가 곧 구원자 되심을 증거할 증인임을 의미합니다.
26절에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눅 2: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님께서는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의롭고 경건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시므온에게 그가 그리스도를 직접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그가 언제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메시아를 만나게 될지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시므온은 날마다 메시아를 만날 기대와 소망을 갖고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오늘은 혹시 메시아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시장을 가거나 일을 갈 때에도 “혹시 내가 가는 곳에서 메시아를 보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소망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시므온과 같이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날마다 소망하는 마음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2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그러던 어느 날 성령의 감동을 통해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참고로 여기서 사용된 ‘성전’이란 헬라어 단어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성전이 아니라, 성전 뜰을 가리킵니다. 성경학자들은 아기의 정결예식이 성소나 지성소와 같은 성전 안쪽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전 뜰에서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27절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전 뜰에 들어간 시므온은 ‘마침’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 뜰에 들어오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27절에 ‘마침’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십시오.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가는 그 순간 ‘때마침’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연’을 말하지만, 우리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대로 인간의 역사가 펼쳐지는 ‘섭리’를 믿습니다. ‘섭리’란 이 세상과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 마태복음 10장 29절 말씀입니다. “(마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늘을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장에서 참새가 동전 한 닢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시므온을 만나기 위해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관례를 행하기 위하여 그 날 그 시간 성전을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시므온으로 하여금 마리아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 곧 메시아를 만나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2022년 새해에도 그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우리의 삶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신뢰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시므온이 성령으로부터 메시아를 만나게 될 것이란 약속을 몇 살 즈음에 받았는지, 또한 현재 본문 속 그의 나이는 몇살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날마다 얼마나 간절하게 메시아를 만나길 소망했는지 우리는 상상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와 같이 메시아를 만나기만을 평생 꿈꿔오던 시므온이 마리아의 품 안에 안긴 아기 예수를 만났을 때 그의 마음에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임하였을 것입니다. 일평생 기다려온 메시아를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시므온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가에 눈물이 고이지는 않았을까요? 마라아에게서 아기 예수를 전해 받은 시므온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28-29절입니다.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시므온은 평생의 소원인 구원자 곧 메시아를 직접 눈으로 보았음에 감격하며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저는 천국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 날 시므온과 같이 주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얼굴 그 얼마나 간절하게 보고 싶었던 얼굴 입니까! 천국에는 눈물이 없다고 하니까 울지는 않겠습니다만,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우리 두 눈으로 보게 되는 그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격과 커다란 기쁨이 우리 가슴 속에 충만하게 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예수를 우리 구원자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훗날 천국에 들어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보고 기뻐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누리길 축복합니다.

2. 시므온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심을 선포했습니다. (30-32절)
시므온은 메시아를 만난 깊은 감격에 벅차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보며 30절 말씀에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시므온은 자신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이 아기 예수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였습니다. 30-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눅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진실로 예수는 온 세상 사람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시므온은 예수가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구원자가 아니라 31절 말씀과 같이 ‘만민 앞에 예비하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과 같이 혈통적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태어난 사람들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메시아 예수이십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예수님을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방’이란 말은 본래 ‘다양한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사야서 52장 10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 52:10) [우리말성경] 여호와께서 모든 나라가 보는 앞에서 그분의 거룩한 팔을 걷어 붙이시니 온 땅 구석구석에서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가 구원자 되심을 볼 것입니다. 시므온의 선포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 만민을 죄악의 어둠 가운데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세상의 빛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 이 복음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