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4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는 교회 (골로새서 1장 1-6절)


서론. 골로새서의 배경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 때 에베소라는 도시에 약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머물며,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가르치며 집중적으로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양육한 결과 그의 제자들은 로마 제국 곳곳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우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에게 말씀을 배웠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에바브라’라는 인물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따금씩 “성경에 나오는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랑 ‘에바브라’(Epaphras)가 같은 사람 아니냐?”하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를 섬긴 사역자이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에바브라’입니다. 그는 ‘골로새’라 이름하는 도시 출신 사람입니다. 골로새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약 130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차를 타고 가면 대략 2시간 40분 정도 걸립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에게서 받은 제자훈련을 다 마친 후, 자신의 고향인 ‘골로새’(Colossae)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에바브라의 열심 있는 복음전파의 결과 골로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믿는 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고, 도시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영적인 암흑의 도시 골로새에서 에바브로의 사역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고,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에바브라 한 사람이 보여준 복음전파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 보여준 복음 전파를 통해 골로새에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이후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사도 바울은 시간이 흐른 뒤,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기다리며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있는 감옥에 수감됩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자신으로부터 복음을 전수받았던 ‘에바브라’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어떤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에바브라도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죠. 바울은 그로부터 골로새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아주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의 신분으로써 순회 선교하지 못하는 일이 늘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이처럼 에바브라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계속해서 도시마다 전파되고 있고, 새로운 이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사도 바울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골로새교회를 개척한 영적 리더인 에바브라가 지금 자신과 함께 로마에 수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한 번도 방문해 본적 없었지만,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교회를 돕기 위해서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골로새서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의 신분으로써 쓴 글이기에 골로새서를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신약신약성경 중 골로새서와 에베소서, 빌레몬서, 빌립보서 4권을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골로새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책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교회를 위협하는 거짓 사상들과 이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일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러한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역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의 주제를 요약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 뿌리내린 풍성한 삶”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한 번 따라해 볼까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 뿌리내린 풍성한 삶’ 골로새서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바로 ‘앎’(아는 것)과 ‘삶’(사는 것) 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은 앎과 삶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본론 1. 골로새교회를 향한 바울의 감사 기도
자, 본격적으로 말씀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1장 1절은 골로새서를 쓴 저자를 말해주고, 2절은 이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1-2절을 봅시다. “(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절에 바울과 디모데 두 사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골로새서의 저자는 전통적으로 바울로 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골로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발송했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던 바울 자신은 감옥에 갇혀 직접 방문할 수 없었기에 골로새서 4장 7절을 보면 바울은 ‘두기고’를 통해 이 편지를 골로새교회에게 전달 했습니다. 참고로 바울이 쓴 에베소서를 에베소에 전달한 사람도 바로 이 ‘두기고’였습니다.
비록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언제나 감옥 밖에 있는 교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에바브라를 통해 소식을 듣게 된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3절을 봅시다.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자신으로부터 복음을 배운 에바브로가 고향 골로새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파한 것과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어 골로새에 교회가 세워진 일에 대하여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는 골로새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이 교회를 세워주시고, 골로새 사람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전해준 골로새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였을까요? 4-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여기 4-5절에 ‘믿음’, ‘사랑’, ‘소망’이 보이십니까?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교회가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진 교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골로새교회가 가진 이 세 가지 특징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있는 교회
첫째로 골로새교회는 ‘믿음’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거나,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외우는 정도의 믿음이 아닙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는다’는 말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내 죄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음으로, 이제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내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드림으로 예수가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거듭나게 하는 믿음’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 받았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 전 언급한 복음의 내용들에 대하여 진실한 믿음의 고백이 있는 사람이 구원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골로새교회 안에 바로 이러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한 이유는 골로새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주인으로 고백하며 믿고 따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코너스톤교회 성도님들에게도 이와 같이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는 교회
둘째로 골로새교회는 ‘사랑’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 당시 골로새란 도시는 큰 지진(A.D. 61)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경제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골로새교회 교인들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지속적으로 베풀었습니다. 4절 말씀에 나오는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란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도 서로 친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나 내가 속한 특별한 그룹만을 편애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 사랑의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일부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즉 나와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가진 것으로 돕고 나누는 참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골로새교회의 사랑을 ‘한계를 초월한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 속에서 내가 사랑할 사람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을 구분해 놓고 있습니다. 내 머리 속에서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은연 중에 어떤 사람들은 잘 대해주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외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만큼은 마지막까지 주님의 사랑으로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로 그와 같은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사랑의 바운더리(한계, 영역)를 뛰어넘어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갖고 계신 분은 골로새서 1장 8절을 보십시오. 여기 보면 “(골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고 나옵니다. 한글 성경은 두 가지로 중의적 해석이 가능해 보입니다. 먼저 ‘성령 안에 있는 에바브라가 골로새교회 성도들의 사랑을 바울에게 알려주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맞는 해석은 이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라고 해석해야 맞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사랑’이란 무슨 뜻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사랑입니다. 아무리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도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사랑하기 힘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았습니다.
실제로 도시에 발생한 큰 지진으로 인해 골로새교회 성도들의 삶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은 존재했습니다. 가난과 질병, 괴로움이란 인생의 무게가 골로새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서로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뛰어넘어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골로새교회 성도들의 ‘성령 안에서 행한 사랑’이야말로 오늘날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한 교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영적 자질입니다. 코로나19로 안 힘든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힘든 시대입니다. 그러나 힘든 가운데도 여전히 자신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 형제와 자매들을 돌보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성령 안에서 사랑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십니다. 골로새 도시는 지진 피해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으나, 교회는 여전히 사랑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교회 성도들 모두가 서로를 돌보고 나누며 살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코너스톤교회에도 이와 같은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사랑이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3)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 있는 교회
셋째로 골로새교회는 ‘소망’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5절을 다시 한번 봅시다.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로새교회는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가진 하늘소망, 천국 소망이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들음으로 생겨난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대부분 사람들의 소망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이란, 많은 것들을 소유한 부자가 되는 것,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 많은 명성을 쌓고 살아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망은 달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누리고 있는 구원이, 마지막 예수님 재림 때에 천국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5절에 사용된 ‘하늘에 쌓아 둔’이란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하늘에 저축해 두다’, ‘하늘에 비축해 두다’란 뜻입니다. 골로새교회 교인들은 이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세상 속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날을 소망하며, 마지막 때에 하늘나라에서 우리 주님이 주실 상을 쌓으며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천국에서 누릴 상급을 소망을 간직하며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내가 살아가며 가장 많은 시간과 정신을 쏟는 그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그것이 내가 가진 모든 것, 내 목숨과 생명까지 주고도 다 바꿀 만큼 정말 가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그것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그러나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면, 잘못된 가치를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 내 목숨과 생명을 주고도 다 바꿀 만큼 가치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적금을 붓는 사람은 달력에서 적금 만기일만 기다립니다. 계모임을 하는 사람은 곗돈 타는 달만 쏜 꼽아 기다립니다. 그것이 그 사람이 사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이 곧 오기를 기다리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에 유일한 소망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우리 일생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날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다스리실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자, 이와 같이 골로새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이 모두다 확실하게 나타나는 참으로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도 골로새교회를 생각하며, 고난 가운데서도 아름답게 꽃피는 골로새교회의 모습에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코너스톤 교회도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면 감사의 기도가 넘칠 수 있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