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9 예수 시리즈 (3) 예수는 우리에게 오신 구원자 (누가복음 2장 4-12절)

1.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되었다. (눅 2:4-7)
1)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다윗과 맺으신 주님의 약속을 지키셨다.
다윗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살아가건만,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기쁘게 보셨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세우려는 열심을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나님은 다윗의 가문을 세워 주시겠다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때, 도리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풍성한 은혜와 복으로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무엘하 2장 1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슴하셨습니다. “다윗아, 너가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울 것이냐? 아니다. 나 여호와가 너의 집을 세울 것이다! 너의 집안과 너의 나라는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가 역사 속에서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고, 그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단일 왕조가 한 나라를 영원토록 통치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상 하나의 왕조가 천년 이상 다스린 경우가 한 번도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단일 왕조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것은 중국의 주나라의 주 왕조입니다. 그 기간을 따져보면 BC 1046~256으로 약 800년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의 역사를 살펴보면 27명의 왕이 500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현재 영국을 다스리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의 윈저 왕조가 다스리기 시작한 것은 1917년으로 약 10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인류 역사상 단일 왕조가 천년 이상 다스린 경우가 한 번도 없는 것이죠. 단 하나의 왕조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 왕조가 누구의 왕조입니까? 바로 다윗 왕조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다윗 왕조의 통치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분명 다윗이 다스린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다윗의 죽음 이후로 다윗 왕조는 계속해서 몰락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 단일 국가였던 이스라엘은 두개의 나라로 나누어집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합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다윗 왕조는 끝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의 통치가 영원히 보존되고 그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장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 영원한 왕조와 영원한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2) 요셉과 마리아의 베들레헴 여정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였다.
바야흐로 때는 로마 제국 시대입니다. 새롭게 로마의 황제가 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우리 성경에는 가이사 아구스도라고 되어 있는 이가 제국의 통치 기반을 든든히 하기 위하여 로마 제국 전역에 걸친 인구조사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 국세조사의 목적은 세금 재원을 파악하고, 유사시에 군대 동원 능력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역사책에도 기록된 이 내용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1절을 봅시다. “(2: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황제의 명령으로 인하여 요셉과 마리아 역시 인구조사에 등록하기 위하여 고향 땅인 베들레헴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 독자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보여줍니다. 3-4절 말씀을 봅시다. “(눅 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눅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4절 말씀을 보니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누구 집안 출신입니까? 다윗의 집 족속입니다. 즉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습니다. 왜 성경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주목시키고 있을까요? 그것은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조와 영원한 나라를 이루겠다고 말씀하신 다윗과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다른 가문에서 태어나지 아니하고, 다윗의 후손인 요셉의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에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약 700년 전 즈음 ‘미가’라 이름하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사야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아 곧 구원자가 태어날 도시를 베들레헴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이란 동네가 유다 족속들 가운데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다스릴 바로 그 왕에 대한 묘사가 아주 독특합니다. 그 사람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누구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인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신 분,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 바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작은 시골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으로써 선지자 미가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될 것이라고’ 예언한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동시에 누가복음은 우리들에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이 예수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까지 거슬러 가는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본래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리에 속한 나사렛이란 작은 시골 동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려진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하여 이 두 사람은 요셉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약 100 마일 (약 16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도로가 잘 닦인 오늘날에도 쉬지 않고 걸어가면 약 31시간 정도 걸리고 차로 가면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본문 속 마리아는 임신 중인 산모입니다. 언제라도 뱃속의 아이가 태어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평상시라면 산모 마리아가 어찌 그 먼 거리를 무리해서 가겠습니까? 그러나 로마 황제의 호적 등록 명령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가정 가운데 다윗의 자손인 요셉의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 뒤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또한 나사렛에서 살고 있는 요셉 마리아 부부가 로마 황제의 명령으로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아기 예수를 낳게 된 사건 뒤에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언제나 모두 지키신다는 사실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제 밖에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전 다윗에게 하신 약속, 그리고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모든 약속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하여 하나도 빠지지 아니하고 모두 지키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2. 천사는 구원자가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눅 2:8-12)
1) 양 떼들을 돌보던 목자들에게 갑작스럽게 천사들이 방문하였다.
한편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던 그날 밤, 추운 들 밖에서 양 뗴들을 돌보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모두가 깊은 잠에 든 한 밤 중에 추운 들 밖에서 야생동물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하여 양 틈에서 밤새도록 보초를 서야 하는 목자라는 일은 얼마나 고되고 피곤한 노동입니까? 이 당시에 목자로 살아가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낮고 천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목자로 살아가다 보면 종교적 관습들을 지키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목자들은 비천하게 여겨져 당시 그들이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9-11절입니다.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는 한 밤 중에 큰 빛을 비추며 목자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목자들은 천사와 어둔 밤을 밝히 비추는 환한 빛을 보고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바로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그들을 위하여 메시아가 탄생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기다려왔습니다. 왕들도 대관들도, 귀족들도, 부유한 자들, 유명한 자들도 모두 다 메시아를 기다렸고, 간절히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 탄생을 가장 먼저 목격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왕이 아니었습니다. 귀족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한 밤 중에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던 아무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회적 약자들인 무명의 목자들이었습니다.
온 세상의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 사람들이 그 당시 사회적으로 천대당하던 목자들이었다는 사실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구원자가 아니라 힘 없고 연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자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해준 큰 기쁨의 소식은 목자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기 예수 탄생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2) 목자들의 두려움은 기쁨으로 변화하였다.
작은 시골 동네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는 사실이 어떠한 이유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일까요? 천사는 이 밤에 태어난 아기는 일반적인 아기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동네에 태어난 아기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가 곧 사람들을 죄악에서 구원하여 내실 구원자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가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시기로 약속하셨던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아기가 바로 다윗 왕조의 영원한 통치와 영원한 나라를 이어갈 영원한 왕이 될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이유는 죄악의 저주로 인하여 고통과 죽음 가운데 살아갔던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구주께서 오셨다는 소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랜 시골에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아이들이 우물가에서 놀다가 우물 속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물 속에 갇혔다고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물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꼼짝 갇혀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목청이 터지도록 살려달라고 소리 질러봐도 밖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안 그래도 어두운 우물 안에 더욱 진한 어둠이 찾아옵니다. 마음에 염려와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이대로 우물 속에서 갇혀 죽는 건가?’ 하는 생각에 두려움도 찾아옵니다. 또 다시 한참 시간이 흐릅니다. 그 때 누군가가 우물 위에서 나를 찾습니다. “안에 계신 분 괜찮으십니까?” 나를 꺼내 주기 위하여 구조대가 도착했습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저 위에서 드디어 구조를 위한 밧줄이 내려옵니다. 구조대의 도움으로 드디어 우물 밖으로 나갔습니다. 평생 우물 속에 갇혀 죽을 줄로만 알았는데 극적으로 구조를 받았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죄악의 우물에 빠져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의 저주 아래 고통과 죽음이 가득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이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가 도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악의 수렁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기 예수 탄생이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 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구원자가 되십니다.

3.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될 때 기뻐합니다. (누가복음 2장 16-20절)
1)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소식을 확인했습니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 들어가면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진 아기를 보게 될 것인데, 그 아기가 바로 천사가 전해준 구원자로 오신 아기 예수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천사들이 떠나자 목자들은 천사가 그들에게 전해준 그 아기를 찾기 위해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전해준 소식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구원자로 오신 그 아기를 그들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떠나던 목자들이 얼마나 큰 흥분에 휩싸였을까요? 심장이 두근두근 뛰지 않았겠습니까? 15-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2: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2:18)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목자들은 베들레헴에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천사들이 자신들에게 전해준 대로 된 것을 보며 목자들은 얼마나 깊은 감격을 느꼈을까요? 예수님을 바라보는 목자들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리지는 않았을까요?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려온 메시아가 탄생하였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주가 탄생하셨습니다.
2) 목자들은 구원자에 대한 위대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요셉과 마리아와 모인 사람들에게 천사가 이 아기에 대하여 전하여 준 이야기들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워 있는 이 아기 예수의 탄생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아기 예수는 곧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구원자입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목자들의 표정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었겠습니까?
아기 예수를 만난 목자들과 같이 오늘날에도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만남은 육적인 만남은 아니고, 영적인 만남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오늘 본문 속 목자들과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참된 목적을 사람들에게 전파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전해줍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만났다면,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파해야 합니다.

3) 사람들은 구원자를 만날 때 변화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목격한 목자들의 인생은 분명 놀랍게 변화하였을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봅시다. “(2: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한밤 중에 들 밖에서 양을 치는 삶은 얼마나 고되고 힘든 생활입니까? 그러나 이들은 구원자를 만남으로 인하여 그 춥고 깊은 밤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그들의 입술에는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구원자를 만날 때 그들의 삶이 변화합니다.

적용.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좋은 소식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예수를 만났습니까? 구원자 예수를 만나 우리의 삶이 변화되었습니까? 구원자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탄생하였다는 이 소식이 지금도 우리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까? 그 감격과 감사를 다시 얻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셨다는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모든 믿음을 두어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음에 기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소식을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뉴스나 신문을 보십시오.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찾아오는 좋은 소식은 우리 삶을 바꾸기도 하고, 좋은 소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줍니다. 예를 들면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은 얼마나 큰 기쁨을 주겠습니까? 이처럼 좋은 소식은 마음에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일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집니다. 이 세상에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기 예수가 탄생하였다는 소식만큼 좋은 소식이 또 있을까요? 예수 탄생의 소식이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식인 복음을 이웃들에게도 나눠주고 들려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