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2 예수 시리즈 (2) 예수는 세상의 빛 (요한복음 1장 1-9절)

 

  1. 캄캄한 밤, 어두운 방에서 물건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안경부터 찾습니다. 안경 쓰시는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항상 잠자기 전에 안경을 놓아두는 지정된 장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어나 안경을 찾는데, 안경이 있어야 할 곳에 없습니다. 아마도 전 날 밤에 잠들기 전, 무의식 중에 아무 생각 없이 다른 곳에 안경을 벗어 두고 잠에 들었던 것이죠. 컴컴한 새벽에 불은 꺼져 있고 앞이 보이지 않아 안경을 찾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처럼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사는 것은 일상생활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릅니다. 안경을 찾는 것만 그러할까요? 한번 빛이 하나도 없는 방에서 옷을 입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빛이 없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두컴컴한 방에서 실과 바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찾기가 어려울까요? 실과 바늘을 찾은 들 빛이 하나도 없는 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빛이 없고 어둠만 남은 공간에서는 제대로 된 삶을 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빛도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빛입니다. 영적 어둠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을 위해 계획하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넘치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영적 어둠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참된 행복과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빛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남 유다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으로 인해 영적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에 이사야는 남 유다 백성들이 죄악을 좇아가고 하나님을 버림으로 인하여 “그들이 사방을 둘러볼지라도, 오직 고통과 어둠과 무서운 그늘만 보일 것이고, 어둠 속으로 내몰릴 것이다”(이사야 8:22)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는 남 유다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찾아온 어둠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멸망할 직전까지 이르겠으나, 그들에게 여전히 한 가지 소망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소망은 바로 어둠을 무찌르는 빛이었습니다.

 

  1. 하나님은 어둠에 살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빛을 보내기로 하셨습니다(이사야 9장 1-3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죽음 이후 찬란했던 이스라엘 왕국은 두 개로 분열됩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남 유다 왕국이 되고, 나머지 지파들은 새로운 왕조를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항하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이라크)를 사용하셔서 북이스라엘을 BC 722년에 멸망시키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르는 그 땅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일부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쫓아냈습니다. 또한 동시에 수많은 이방인들을 북이스라엘 땅으로 이주시켜 그들이 그 땅에서 정착하여 살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북이스라엘 영토에는 순수 유대인들은 거의 사라지게 되고,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인들, 또는 이방인과 결혼하여 낳은 사람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이 바로 신약성경에서 나오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입니다. 순수혈통을 지킨 남 유다 지역의 유대인들은 이방 사람들과 피가 섞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다는 이유로 사마리아나 갈릴리에 사는 사람들은 천대하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미래의 어느 날, 이방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는 바로 그 갈릴리 지역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며, 어둠에 처한 그 땅에 큰 빛을 비춰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나사렛’이란 마을이 바로 이 갈릴리에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가나도 갈릴리였고, 예수님의 사역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가버나움도 갈릴리 지역이었습니다. 흑암으로 가득한 이 갈릴리 지역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큰 빛이 비출 것이라고 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바로 갈릴리에서 자라시고, 갈릴리에서 사역하신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9장 2절 말씀처럼, 비록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반항적이었고 그들의 죄로 인해 어둠과 흑암에서 행하였으나, 고통과 죽음의 저주라는 그늘에 가려진 땅에 거하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찬란한 구원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이사야 9장 3절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크게 하시고 그 백성을 행복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실 큰 기쁨 얼마나 큰지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풍년을 맞이한 농부가 추수할 때에 기뻐하는 것과 같이, 또한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가 적들에게서 빼앗은 탈취물을 나누는 때와 같이 즐거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또한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갈릴리 지역에는 큰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병든 자들이 예수님을 통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귀신들린 자, 문둥병자, 장님, 중풍병자, 혈루병 환자, 열병환자 귀머거리, 벙어리, 등 예수님께서 고치지 못한 병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축제와 같은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넘쳤습니다. 귀신은 쫓겨나고, 병든 자는 치료함을 받고,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이사야가 예언했던 갈릴리 지역에 비출 큰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갈릴리 지역만을 비추는 빛이 아니셨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땅 갈릴리에 오셔서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신 예수님은 지금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동일한 빛을 비춰 주십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빛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1-a.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분과 떨어져서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어둠을 걷게 됩니다.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으면 평상시에 눈에 보이지 않았던 내 몸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됩니다. 턱을 받침대에 대고 양손을 열중 쉬어 자세로 취합니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잠깐 참으세요.”라는 방사선사의 말이 끝나면 검사가 끝납니다. 참으로 간단한 검사입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검사로 폐와 심장을 비롯한 우리 몸의 여러 기관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폐는 X선이 대부분 통과하여 검게 표시되고, 뼈와 심장은 하얗게 표시됩니다. 내 심장의 크기와 모양도 알 수 있습니다. 또 심장이나 폐에 종양은 없는지, 염증은 없는지, 쇄골과 늑골에 외상은 없는지, 결핵에 걸린 것은 아닌지 등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X-Ray가 우리가 볼 수 없는 우리 몸의 질병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예수님의 밝은 빛은 우리들의 죄를 밝히 보여주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을 우리 영혼을 죽이는 그 모든 죄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둔 세상을 밝히는 참 빛이 되십니다. 어둠에서 살 때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한 삶으로 우리들을 인도해 주십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로 알려진 일명 ‘맘모스 동굴’은 연간 2백만명이 찾는 관광 명소입니다. 동굴 길이만 약 400마일(약650km)로 서울-부산 왕복 거리입니다. 수년 전에 기회가 있어 가족들과 함께 같이 켄터키 주에 있는 메머드 케이브 국립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석회암층으로 흘러들어온 물이 오렌 세월 동안 암반을 녹여 거대한 동굴을 만들었고, 그래서 동굴 이름이 매머드라고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티켓을 사고 순서를 기다리면 정해진 인원과 하나의 팀이 되어, 국립공원에서 일하는 레인저와 함께 동굴을 들어가게 됩니다. 동물 입구에서 100여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커다란 원형 공간이 나옵니다. 잠시 구경하고 다 내려온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데 그 때부터 또 한참 걸어가며 계속 밑으로 내려갑니다. 좁은 바위 틈 사이를 지나가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동굴 투어 중간 즈음 되면 200 여명이 앉을 수 있는 장의자가 있어 잠시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그 공간에서 레인저는 전등을 끄고 ‘완전한 암흑’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가뜩이나 컴컴한 동굴인데 전등까지 끄니까 정말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투어를 마치고 매머드 케이브를 나와서 밝은 빛을 보는데, 그렇게 빛이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푸른 하늘, 녹음이 짙은 나무들 조차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몰랐는데 흑암으로 뒤덮인 동굴에 있다가 빛이 가득한 지상으로 올라와 보니, 빛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빛이 없는 동굴에서 살아가는 삶과 찬란한 빛이 가득한 지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신학대학원 시절에 고시원에서 반 년 정도 자취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시원은 창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방 가격이 차이가 납니다. 돈을 아끼고자 창문이 없는 방을 선택했는데, 얼마나 후회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창문 하나 없는 곳에서 사니까 삶의 질이 정말 많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잠을 자다 중간에 일어나도 지금이 대낮인지 새벽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고시원 방에서 살다가 오래간만에 부모님 계시는 아파트를 찾아가니 “아, 사람은 빛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구나?”하는 것을 금방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대로인 제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있는데 빛이 잘 들어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그 때 그 느낌이 선명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둠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빛을 통해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빛으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원합니다. 그들은 죄로부터 자유케 되는 삶을 포기하고, 어둠에서 살아가기로 선택합니다. 동굴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동굴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귀찮게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지상으로 올라가 본 사람은 다시 동굴로 돌아가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통하여 죄악의 어둠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그 구원의 자유와 기쁨을 경험했기에 다시 이전의 어둠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큰 빛이 흑암으로 가득한 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비출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악의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들도 이전에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빛으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빛이 하나도 없는 컴컴한 동굴과 같은 어둠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오. 예수님의 구원의 빛은 모든 죄악의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모했던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의 빛이십니다(요한복음 1장 1-4절).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시작하며 ‘말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흔히’ 성경을 ‘말씀’이라고 하죠?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주신 것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그가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계시가 하는 역할입니다. 계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계시의 완성자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은 하나님을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예수님으로 인해 창조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는 지난 주에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처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셨다가 처녀 마리아의 잉태하는 그 때부터 존재하시기 시작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영원 전부터 언제나 존재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성령님도 없다가 만들어지신 존재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영원 끝까지 항상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창조 되기 이전에도 존재하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시고, 이 세상 끝에도 변함없이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류를 창조하셨을 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생활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 모든 인류는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떨어져서 살아감으로써 인류는 고통과 저주 그리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바로 이와 같이 죄로 인하여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 비출 참 빛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말씀이신 예수께서 이 어둔 세상을 밝히 비출 참 빛이시라고 선포하였습니다.

 

  1.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시는 ‘참 빛’이십니다(요한복음 1장 5-9절).

구약시대 선지자들은 저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명과 구체적인 메세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주님의 선지자로 삼으사 그에게도 특별한 사명과 구체적인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명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또한 참 빛이신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세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 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메시지도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동일합니다. 9절을 봅시다.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참 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췄습니다. 그리고 참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다 집 안에서 컴퓨터, 게임, 인터넷, TV 이런 것 하며 놀지만, 예전에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뛰어 놀았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집에다가 가방만 내려놓고 또 다시 밖에 나가 놀았습니다. 동네 친구들 하고 구슬놀이, 팽이치기, 딱지치기, 땅따먹기, 흙으로 두꺼비 집 지으며 노래를 부르고, 자전거를 타고 여기 저기 놀러 다니다 보면 하루가 정말 짧습니다. 추운 겨울 끝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논에 있는 올챙이랑 개구리 잡으러 다니고, 가을 되면 잠자리채 들고 코스모스 꽃 주변 날아다니는 잠자리 잡으러 다닙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 보면 어느 새 해가 서쪽 하늘에 뉘엿뉘엿 집니다. 땅거미 지는 시간 즈음 되면 저 멀리 집집마다 아이들을 찾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영목아! 밥 먹어라!” 신기하게 다른 집 엄마 목소리는 잘 안 들리는데, 우리 엄마 목소리는 그렇게 잘 들립니다.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도 해가 지고 컴컴한 밤이 되면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놀 수가 없습니다. 가끔은 더 놀고 싶어서 땅거미 지는 줄도 모르고, 놀이터에 홀로 남아 놀아봤습니다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재미가 없어집니다. 땅따먹기도, 술래잡기도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한석봉 어머니가 불이 없을 때 칼로 떡을 썰었다고는 하지만, 빛이 없는 컴컴한 방에서 요리는 어찌 하겠습니까? 빛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빛이 없는 삶은 기쁨이 없어지고, 즐거움도 사라질 것입니다.

 

3-a. 빛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길들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빛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예수님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십니다. 주님께서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심으로 우리는 우리 삶에 있는 죄들과 세상에 있는 죄들을 보게 됩니다. 어둔 세상에 빛을 비춤으로써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더욱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빛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와 구원의 길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참 빛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3-b.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써 우리는 어둠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둠 가운데 부르짖는 우리들의 탄식을 들으셨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어둠 가운데서 구원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 분의 빛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밝히시는 구원의 빛 되심을 사람들에게 전파한 것처럼 우리들도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전달해주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2:9, 우리말성경)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세상에 비추며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빛을 통하여, 세상과 죄악의 어둠에서 해방되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늘에 떠있는 찬란한 태양 빛이 달의 표면을 통해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보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구원의 빛이 반사되어 이 세상 가득 주님의 영광의 빛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코너스톤 교회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님만이 죄악의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실 수 있는 구원의 빛 되십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이 빛 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여전히 어둠 가운데 붙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의 빛을 그들에게 전해주십시오. 구원의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이웃들에게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파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