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9 창조 질서에 따른 역할 감당 (고린도전서 11장 11-16절)

(고전 11: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고전 11: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고전 11: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고전 11: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고전 11: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고전 11:16)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대부분의 문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여성의 존재 가치를 남성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처럼 여기는 문화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르면 남자도 여자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피조물 입니다. 11절 말씀을 봅시다. 우리 주님은 분명 남자와 여자 둘다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이 두 존재를 동등하게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한편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지나치게 차별하려는 시도가 있는가 하면, 오늘날에 그리스도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위협은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전에 성별을 적는 란에 ‘남자’, ‘여자’ 이렇게 두 개 밖에 없었습니다만, 이제는 이런 분류조차 거부합니다. 미국의 몇 개의 주에서는 벌써 스타벅스 화장실에 남/녀 표시가 사라졌습니다. 일명 ‘중성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이죠.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의 구분 짓는 기본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극단적인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11절 말씀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 11: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기에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 창조의 목적에 있어서 분명 차이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본질적으로 평등하고 상호 의존적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12절을 봅시다. “(고전 11: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비록 아담으로부터 그의 아내 이브가 만들어졌으나, 그 이후 모든 남자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공존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바울은 남자와 여자, 이 두 존재의 기원은 결국 하나님임을 강조하며 남녀간의 본질적 동등성을 강조 했습니다. 바울이 지금 이와 같이 남녀의 평등과 본질적 동등함을 이야기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공적 예배 시 여성에게 수건을 쓰라고 말하는 이유가 남녀간의 본질적 불평등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전에 분명하게 밝히고 싶었기 때문 입니다.
자, 이와 같이 바울은 남녀가 하나님 안에서 본질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언급한 후, 비로소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비록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할지라도,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나, 교회 안의 질서를 위배하면서까지 그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남성이 길게 머리 기르는 것에 대한 것도 이야기 했습니다. “(고전 11: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여자가 짧은 머리를 하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남자가 꽁지머리를 할 정도로 긴 머리를 가진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대체적으로 남자는 머리를 짧게 하고, 여자는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 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 이러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로마 사회에서도 남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는 통념이 있었습니다. 또한 반대로 여성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은 자신을 창녀로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여자가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나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 모두 당시 문화적 배경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남성이 긴 머리를 하는 것은 크게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관념을 소개하며 여성이 예배포를 쓰는 것이 합당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15절 입니다. “(고전 11: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여기서 ‘영광’이란 단어는 ‘자랑’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자신의 긴 머리를 통해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이 바울은 여성에게 긴 머리가 자랑이 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공적 예배 시 여성이 예배포를 쓰는 것이 합당하다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남자의 짧은 머리와 여자의 긴 머리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존중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창조 원리를 고려하지 않고, 당시 그들이 살아가던 사회적 관습도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자신이 가진 자유와 특권만을 주장하며 ‘형식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와 같은 자유에 대한 왜곡된 판단으로 인해 공 예배시 여성이 머리에 예배포를 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언급 했습니다. 실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공적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반영하여 여성이 자신의 자유를 절제하고 예배포 착용할 것을 권면 했습니다. 이는 남자와 여성에 대한 불평등하다는 인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만, 하나님꼐서 창조하신 남자와 여성의 본질적 평등함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주님의 아름다우신 계획을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 속에서 실현해 가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