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5 우상숭배를 피하고, 거룩히 구별되라 (고린도전서 10장 14-22절)

(고전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전 10:15)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 10: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고전 10: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고전 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고전 10: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지금도 한국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영화를 찍을 때, 영화 촬영장에 돼지머리를 갖다 놓고 고사를 드리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영화가 대박난다는 미신 때문 입니다. 또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니까 실제로 근거는 없지만 이렇게 안 지키면 찝찝한 마음에 수백만원의 돈을 들여가며 고사를 지냅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현장에 있는 배우들이나 스텝들이 돼지머리에 절하지 않고 기도를 했다가 호되게 욕을 먹곤 했습니다. 한 번 우리들이 그 영화 촬영장에 있는 어느 스텝이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돼지고기 머리 앞에 두고 고사 지낼 때, 그것에 절해도 되는 것일까요? 이런 제사를 지낼 때 귀신을 상징하는 대상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주변 동료들이나 상사들로부터 절을 하도록 강요 받는 분위기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센 것이 사실 입니다. 자신이 절하지 않음으로 촬영장 분위기가 찬 물을 끼얹은 듯 냉냉해지고, 혹 사고라도 나면 전부 내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1년에 열 번 넘게 제사를 드리는 종갓집 장손의 아내로 어느 기독교인 며느리가 시집 왔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데,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가집 맞며느리로 살아야 하니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고자 제사를 포기하자니, 시부모님과 시집 식구들과의 사이가 틀어지고, 집안에 싸움과 고성이 끊이질 않습니다. 신앙을 포기하든지, 눈 딱 감고 그리스도인이지만 제사를 드리는 것에 타협하고 살아가든지 하는 큰 유혹과 압박감이 찾아오는 것이죠.
고린도교회 성도들 역시 이와 같은 압박감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이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새해가 되면 신들에게 좋은 일기와 충분한 강수량을 구하며 제사를 드렸고, 상인들은 한 해 동안 장사가 잘 되어 큰 부를 쌓을 수 있도록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자들은 강풍이나 파도에 휩쓸려 배가 침몰되지 않도록 제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회 전반적으로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으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런 문화를 벗어나서 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나 이방신에게 드리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물건을 사고 파는 일도 금지 될 정도로 이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방신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단호하게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14-15절 말씀 입니다. “(고전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전 10:15)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우상숭배의 죄는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심각한 죄 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적극적으로 계속해서 피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대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순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로운 자들이니 우상숭배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실 때 옳은 것인지 아니면 그른 것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라고 권면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래 고민해보지 않아도, 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하나님 보실 때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 먹고 마시는 성찬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16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우리가 성찬 때 마시는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함께 나누어 마시는 것이며, 우리가 떼어 먹는 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이 성찬 때 주어지는 잔과 떡을 먹음으로 성도들은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됨을 고백 합니다. 또한 바울은 구약 시대의 예를 들며, 구약 백성들도 하나님께 바쳐진 희생 제물을 먹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누구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까? 바로 우상에게 드려진 제사에 참여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이방신 혹은 귀신에게 바쳐진 제사에 참여하지 않도록 제사 지낸 제물을 먹지 않도록 권면 합니다. 20절 입니다. “(고전 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사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은 존재요,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 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없어질 물질에 불과 합니다. 따라서 사실 우리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무슨 저주에 걸리거나 영적인 해악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귀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 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귀신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의 의미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지 말 것을 권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찬식 때 주의 잔과 떡을 먹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 분 안에서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같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은 곧 귀신과 교제하며 그를 섬기는 것과 같기 때문 입니다. 21절 입니다. “(고전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바울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한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고, 다른 한쪽에서는 우상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임을 가르쳤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이 우상 숭배를 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노여워하실 것이며, 주님의 불 같은 진노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강한 분이시니 우리는 우상숭배로 인한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도 없고, 그 심판을 피해 도망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방 신에게 제사 지낸 음식을 먹는 것이 곧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임을 가르치며 이방인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도록 당부 했습니다.
당시 이방신들에게 제사드리는 문화가 성행했던 도시에서 살고 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세상 문화와 적당히 타협하고 살 것인가?’ 예수님 믿지만, 나 한 사람 때문에 괜히 조직의 분위기가 냉냉해지고,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가 깨지는 것이 싫어 눈 딱 한 번 감고 이방 신의 제사 의식에 참여하고자 하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 문화, 특별히 우상숭배를 통해 귀신을 섬기는 문화로부터 자기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킬 것을 권면 했습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우상 숭배에 참예하면서 여전히 그 자신이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큰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 혼합주의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그는 이미 하나님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가 배타적이라고 비난합니다. ‘왜 이리 너네만 유별나냐고, 그냥 이것도 저것도 다 인정하고 살면 안되나’하고 비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세상의 요구에 순응해서 살 수 없는 사람들 입니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당한다 할지라도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야 할 존재들 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러한 삶을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할찌라도, 하나님 한 분께서 틀리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치 평가의 기준을 사람에게 두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영혼에 죄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세상 문화에 적당히 타협해서 살아가려는 삶의 영역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 중 하나가 대충 믿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것도 저것도 절제 없이 다 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실 때 역겨운 사람들 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지 말고, 이 세상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 한 분만 섬기며 살아갈 것을 권면 했습니다. 이 세상의 문화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려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온전한 삶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