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2 영혼 구원을 위해 강함 내려놓기 (고린도전서 9장 15-23절)

(고전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 9:17)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고전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 9: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 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고전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하나님은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셨습니다. 즉 사도들과 같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며 복음전파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가 그들의 삶을 부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에게도 그러한 권한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복음전파에 방해가 될까 하여 자신이 가진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무언가 서운함이 있거나, 앞으로는 그 권한을 사용하겠다는 의미로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오히려 계속해서 이와 같이 자신의 권한을 절제하고 복음 전파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나타냈습니다. 15절 입니다. “(고전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가진 권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도리어 복음 전파를 위해 절제한 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그것이 헛되지 않도록 고린도교회로부터 그의 쓸 것을 공급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본래 노동이라는 것은 물질적 대가가 따르기 마련 입니다. 무더운 날씨에 구슬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도, 한 밤 중에 들에 나가 양을 돌보는 일도 다 물질적 보상이 있기 마련이죠.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이와 같은 물질적 대가를 바라보고 하는 일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16절 입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한 번 이런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불어난 빗물로 인해 마을에 홍수가 범람하여 물에 빠져 떠내려 가는 한 남성이 있습니다. 때마침 길을 지나가던 행인이 물에 줄을 던져 이 남성을 가까스로 구해주었습니다. 물에 빠졌던 남성은 연신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은 반복 했습니다. 이 때 행인이 그런 인사는 필요 없고, 구해 준 목숨 값이나 달라고 요청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이게 왜 황당한 일입니까? 분명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해 주는 일은 대단한 일입니다. 평생의 은인이죠. 그러나 돈을 위해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 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은, ‘인지상정’ 말 그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가져야 하는 보통의 마음가짐 입니다. 자신이 목숨을 살려준 상대방이 돈을 준다고 해도,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며 “나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 입니다.”하고 반응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 방식이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바울은 자신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한 것이 전혀 자랑할만한 일이 되지 못함은 그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 합니다. 또한 16절 후반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자신에게 도리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화’란 ‘저주’, ‘큰 슬픔’을 의미합니다. 바울에게 있어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의 인생의 목표였으며, 그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였습니다. 따라서 만일 자신이 사도로서 주어진 임무를 감당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저주이고, 큰 슬픔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어떤 분들을 보면,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 돈에 구애 받지 않고 그 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 예로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님이 그러합니다.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돈 벌려고 의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치료비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치료비를 대신 대주었습니다. 그나마도 감당할 수 없으면 병원에서 몰래 도망가라고 문까지 열어 주었습니다. 자신은 평생 집 한 채 갖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습니다. 며느리가 시집 올 때 예단으로 해온 이불조차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가치, 더 고귀한 인생의 가치가 있음을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이 진정 복된 사람 입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 입니다. 그는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왜 하나님께서 그를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 무엇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17절 입니다. “(고전 9:17)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대하여 어떠한 ‘보상’도 없으며, ‘자랑거리’도 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살아가는 삶은 단순히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가진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교회로부터 부양을 받을 권한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권한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그러한 권리를 절제 했습니다. 18절을 봅시다. “(고전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여기서 “다 쓰지 아니하였다”는 말은 ‘남용하지 않았다’, ‘오용하지 않았다’는 말 입니다. 그런데 더 정확한 표현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 입니다. 바울은 교회로부터 부양 받는 권리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와 같이 교회를 섬기고,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어 복음을 전하는 그 자체로서 오는 기쁨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보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더 이상 율법에 매어 있지 않은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는 주님 안에 거듭난 자유인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려는 대상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면, 겸손하게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 주었습니다. 19절 입니다.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자유가 무엇인지 온전히 깨닫지 못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하여 바울은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 자신의 자유를 절제했습니다. 형제들이 행여 자신의 행실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의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수준에 맞추어 복음을 전파하며 그들과 함께 지냈고,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의 수준에 맞추어 복음을 전파하며 그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자신과 함께 있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배려할 줄 아는 ‘겸손’과,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절제’의 성숙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2-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전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고전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예수님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세리, 죄인들, 창녀들, 그 밖에 사회에서 소외 받는 이들과 친구가 되셨습니다. 오늘 여기서 보는 바울의 모습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대인들을 전도할 때는 유대인들에게 맞추어서, 이방인들에게 전도할 때는 이방인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자신을 낮춘 것이죠. 바울은 목에 힘주고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절제하며 마치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된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심혈을 기울여 그들의 영혼을 돌보며 복음을 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자는 높은 자리에서 다스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의 위치에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포기해야 할 삶의 요소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낮은 자의 삶을 살아가신 것과 같이, 바울이 영혼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절제하여 종과 같이 살아간 것과 같이, 우리들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절제하며 영혼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