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7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8장 8-13절)

(고전 8: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고전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고전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고전 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음식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 입니다. 이 세상에 음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구약성경 레위기 1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정한 음식과 먹어서는 안되는 부정한 음식을 나누어 놓으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에 해가 되지 않은 한, 어떤 음식도 제한 받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 가운데는 이와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구약의 가르침에 매여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혹 먹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 더욱 거룩하게 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가진 ‘우상 제물의 취식’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다니엘서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뜻을 정하여 느브갓네살 왕이 하사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것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나 다른 어떤 음식을 먹거나 안 먹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8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8: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사람보다 영적으로 더욱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어떤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저주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평가하시고 판단하는 근거가 결코 음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다고 해서 영적으로 더 못한 자가 되는 것도 아니요,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영적으로 더 탁월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양심의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과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다’는 영적 지식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내가 가진 영적 지식이 옳다 하여도 그 지식을 바탕으로 나의 자유를 행사할 때에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자유함 때문에, 믿음이 약한 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면 합니다. 9절 입니다. “(고전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여기서 ‘거치는 것’란 말은 ‘발에 걸리는 장애물’을 의미합니다. 만일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근거하여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교회는 갈라지고 분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신앙의 수준, 성경에 대한 이해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지금 행하는 삶이 성경의 뒷받침을 받고, 옳은 지식에 근거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의 모습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형제, 자매가 시험에 들거나, 그들의 신앙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라면 기꺼이 절제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우리가 나중에 고린도전서 14장을 볼 때 살펴보겠습니다만, 바울은 똑같은 이유로 방언 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의를 주었습니다. 방언하는 것이 무엇이 죄가 되고 나쁘겠습니까? 그러나 한 번 이러한 그림을 그려보십시오. 만일 교회 성도들이 기도할 때 전부 방언으로만 기도한다면, 오늘 교회 처음 온 새신자가 볼 때 “이 사람들 미쳤구나?”하고 시험에 들지 않겠습니까?(고전 14:23)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방언이 유익한 것이지만, 그것을 행사할 때 주의할 것을 권면 했습니다.
바울은 만일 교인들이 ‘지식’만 내세우고 함께 신앙생활 하는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를 행사한다면, 그것은 형제를 시험 들게 하여 멸망하게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10-11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고전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자유롭게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믿음이 약한 형제가 비록 자신은 여전히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 양심의 거리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도 저렇게 하니까, 나도 저렇게 해도 되겠지?”하고 담력을 얻어 그것을 먹게 된다면 그는 사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자기 양심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부정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먹었기 때문 입니다. 결국 지식 있는 자의 지식 때문에 믿음이 약한 자가 죄에 오염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죠. 따라서 사도 바울은 지식을 가진 자가 자유의 행사를 통해 미성숙한 자들의 신앙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않도록 경계 했습니다. 우상 제물을 먹는 자는 그들의 자유로 인해 믿음이 약한 자들이 시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자유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가진 자유를 행사함으로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곧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12절 입니다. “(고전 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실 고린도교회 안에서는 ‘우상은 거짓이다’라는 ‘지식’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며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는 일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을 배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신앙이 아직 자라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고 나무랐다는데 있습니다. 바울은 함께 신앙생활 하는 형제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이 가진 지식만을 토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교만한 행동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정한 것인지 명확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들이 시험에 들게 하는 그 형제들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진 귀한 영혼들 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라도 그들을 시험 들게 하는 것은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자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 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귀중한 형제를 실족케 하느니 차라리,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음으로 형제의 믿음을 보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13절 입니다.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이 죄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내가 가진 지식으로 정당화하며 행사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형제가 있다면, 그것을 먹는 것이 아무런 해가 없다는 지식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믿음이 약한 형제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꺼이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형제를 배려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절제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동시에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지식’은 넘쳐나지만 ‘사랑’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 입니다. 사람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이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자주 물어보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형제를 더욱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인가?’에 대한 가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사랑의 마음으로 주위에 있는 형제들을 품을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필요한 세상입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는 형제들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배려하고 섬길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