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5 주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 (고린도전서 7장 36-40절)

(고전 7:36)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고전 7:37)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 하는 것이니라
(고전 7:38)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고전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전 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살아갔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말세를 살아가는 미혼자 그리스도인들이 결혼하여 배우자에게 헌신하는 것보다 이제 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에 더욱 헌신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권면 했습니다. 허나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바울의 권면이었습니다. 바울도 이와 같은 권면을 한 이후 결혼하는 자들이 잘못하는 것도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바울은 ‘혼기가 찬 딸을 둔 부모에 대한 권면’을 주었습니다. 36절을 봅시다. “(고전 7:36)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36절은 다음과 같이 다르게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만일 자기의 처녀 딸을 시집 보내지 않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더구나 그 처녀 딸이 혼기를 놓쳐서 마땅히 얼른 시집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하십시오. 이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이 결혼하게 하십시오.” 바울이 이와 같이 권면한 것은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금욕주의자들이 말세에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딸의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딸이 혼기가 지나도록 붙들어 두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고 결혼시키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보며 “뭐 딸을 결혼시키는 문제 같은 것까지 고민하나?”하고 생각하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그 누구보다 진중한 태도로 머지 않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았기에 딸을 결혼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고린도교회를 무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이 삶 가운데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말세에 대한 진중한 태도를 본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37절을 이어서 봅시다. “(고전 7:37)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 하는 것이니라” 바울은 부모가 그 딸을 꼭 결혼시켜야 할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결혼시키지 않는 것도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딸을 결혼시키지 않고 그대로 처녀로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였다고 해도 그 역시 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38절을 봅시다. “(고전 7:38)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자, 여기서 바울은 혼기가 찬 딸을 시집 보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며, 시집 보내지 않는 것도 잘 하는 것인데 이 둘 중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와 같이 주장한 이유는 고린도전서 7장 32-34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전 7: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고전 7: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고전 7:34)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즉 바울은 미혼자 그리스도인들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남아 있다면, 몸과 영을 거룩하게 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는데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딸을 시집 보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지만 시집 보내지 않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죠. 물론 이와 같이 독신이냐 결혼하느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주신 은사에 따른 것이지 하나의 일관적인 결론으로 ‘무엇이 모든 사람에게 다 옳은 것인가?’하고 백과 흑으로 답을 낼 수는 없는 문제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독신으로 살던지 결혼하여 살던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더욱 나타낼 수 있는 방향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36-38절이 처녀의 결혼 문제를 다루었다면, 39절부터는 남편과 사별한 과부의 재혼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3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전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어떤 문화 속에서는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사람이 다시 재혼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편이 사망할 경우 아내는 남편의 법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점을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3절을 보겠습니다. “(롬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롬 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바울은 분명 과부의 재혼 여부에 있어 용인합니다만, 한 가지 단서를 붙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39절을 보니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하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만 하라”는 말은 과부가 재혼을 하더라도 불신자와는 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인 형제와 하라는 권면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성경은 남편을 잃은 아내가 재혼하는 것이 죄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40절을 봅시다. “(고전 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앞서 바울은 젊은이들이나 약혼자들이 가능하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는 과부에 대해서도 이를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과부들도 재혼하기 보다 임박한 종말을 염두 하여 주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본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마지막에 자신의 견해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어떤 인간적인 견해나 당시 사회의 관습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용인하시고 기뻐 받으실 만한 삶의 모습들을 가르친 것임을 권위 있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가르침은 한 가지 동일한 원리가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어떤 결정을 하든지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독신으로 지내든지 결혼을 하든지 둘다 가능합니다. 배우자를 잃은 자가 재혼을 하든지 그대로 홀로 지내든지 둘다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한 가지 경계선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바로 ‘주 안에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주 안에서’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넘어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되 주님 안에서만 사용하고 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 안에서’ 행해지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보호 안에 온전히 거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