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2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고린도전서 7장 17-24절)

(고전 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전 7:18)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고전 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 7: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고전 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고전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고전 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전 7: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성경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반복’ 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짧은 8구절의 말씀 속에서 동일한 내용을 무려 3번이나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한 번 말씀을 봅시다. 먼저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는 말씀 보이십니까? 그 다음 20절을 봅시다. “(고전 7: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24절 입니다. “(고전 7: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서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는 동일한 메시지를 무려 3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 말이 무슨 뜻인지 17절로 돌아가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전 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사람마다 현재 처한 상태나 신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는 독신일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결혼하거나 이혼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노예의 신분일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귀족이거나 왕족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로마 시민이 아닐 수도 있고,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고 형편이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고린도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 주인과 노예, 로마시민과 외국인, 사회적 강자와 약자, 할례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 분류하자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세상적 기준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신분이나 자신의 처지 그대로 지낼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17절에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라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입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이 다 다릅니다. 자라온 가정 환경도 다르고, 직업, 성별, 나이, 인종, 국적도 다 다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의 각자의 상황이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난 새벽에 살펴본 것처럼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 배우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한 사람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와 같이 다양한 상황이 모두 우리를 부르신 자리임을 기억하고 그 영역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 했던 것입니다. 왜 바울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지 그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끊어내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비그리스도인 배우자를 버리고 독신 상태로 바꾸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노예 출신의 경우 주인의 권위를 거부하고 일상적인 노동을 포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복음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죠. 바울은 이러한 잘못된 고린도교회의 현상들을 경고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어떤 사회적 지위나 관계 속에서도 여전히 공존할 수 있음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사랑의교회를 시무하셨던 고 옥한흠 목사님께서 로마서를 설교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정확한 인용은 아닙니다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사랑의 교회 교인 중에는 막노동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 모두가 다 의사고, 변호사고 교수라면, 막노동판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전도합니까? 하루 종일 탄광 속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누가 전도하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사회 계층에서 전도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막노동 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합니다”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옥한흠 목사님의 이러한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교회 안에 귀족들만 있다면, 노예들은 누가 전도하겠습니까? 만일 교회 안에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만 있다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어떻게 교회 안으로 들어오겠습니까? 만일 교회 안에 부자들만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누가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교회 안에 사회 각계 계층과 신분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형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신 이유는 그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 곳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시기 위함 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권면 했던 것입니다.
18절을 봅시다. “(고전 7:18)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바울은 이 당시 교회 내에서 가장 큰 분열의 원인이 되었던 ‘할례 문제’를 언급하며 심지어 할례의 유무의 여부조차 초연하라고 권면 했던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구원의 증표로서 이방인 개종자들에게도 반드시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또한 반대로 할례는 유대인의 전통이지 기독교의 전통은 아니기에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할례의 흔적을 지우려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할례를 초연할 것을 권면한 것이죠. 바울은 할례냐, 무할례냐 하는 구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강조 합니다. 19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어떤 신분이나 처지에 머물러 있으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할례냐 무할례냐를 놓고 다툴 것이 아니라, 할례자이든지 무할례자이든지 현재 자신이 놓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절에 다시 한 번 바울이 두번째로 동일한 권면을 합니다. “(고전 7: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그리고 바울은 노예 신분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도 같은 권면을 했습니다. 21절 입니다. “(고전 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이 당시 고린도라는 도시 인구가 총 100명이라고 할 때 노예는 몇 명 즈음 되었을까요? 고린도 시민의 1/3 이상이 노예들이었습니다. 고린도 시민 100명 중 적어도 약 30-40명은 노예였습니다. 엄청난 숫자 입니다. 이를 토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노예였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비록 노예 신분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만일 어떤 이에게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를 이용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그 이유를 23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구속해 주셨습니다. 성도는 사람의 뜻에 따라 사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회가 있다면 노예가 되기 보다 자유인이 되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을 맺으며 24절에 바울은 세번째로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신분이나 상황 속에서 그대로 거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24절에는 여태까지 앞에서 나온 말씀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한 가지 내용이 더 추가 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노예이든지, 자유자이든지, 독신이든지 결혼한 사람이든지, 할례 받은 사람이든지 무할례자이든지, 가난한 사람이든지 부유한 사람이든지 어떤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라”고 권면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함께’라는 단어는 ‘곁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그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의 상황들에 구애 받으며 살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형편이나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도시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젊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독신이거나 결혼한 사람이거나, 풍족한 삶이거나 빈곤한 삶이거나,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뛰어넘어 하나님을 여전히 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각 사람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성령의 전으로써 최선을 다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