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0 거룩한 개인과 가정을 세우라 (고린도전서 7장 1-7절)

(고전 7: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고전 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 7: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전 7: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고전 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전 7: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고전 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고린도교회에서 보낸 성도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바울에게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며 궁금해 하던 질문들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되는가?’, ‘공적 예배 때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하는가?’, ‘부활의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고린도교회가 편지로 써서 이 사람들을 통해 사도 바울에게 전달해 준 것이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며 그들이 바울에게 보낸 질문들에 대한 대답도 함께 적었습니다. 그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성도의 결혼 관련 문제’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물어본 정확한 질문은 알 수 없으나, 본문에 나타나는 바울의 대답을 통해 추측을 해 본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보입니다.
이는 오늘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그리스도인들도 큰 관심을 가질만한 아주 흥미로운 질문 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이 삼십대 미혼 청년들을 설문조사 해보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살아가겠다는 비율이 매년 갈수록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잘 안하려고 하는 거에요. 지난 2017년도에는 한국의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니, 한국 남성이 결혼하는 평균 연령이 35.9세로 나왔고, 여성은 32.7세로 나왔습니다. 갈수록 사람들이 늦게 결혼하려는 사회적 현상과 결혼을 아예 포기하려는 청년층의 비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미혼 청년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한국 교회에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왜 이 당시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결혼’이란 주제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는지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육체는 ‘추하고 더러운 것이며, 영혼은 순수한 것’이라고 믿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는 두 가지 극단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한 쪽은 일명 ‘쾌락파’로 육체를 어떻게 사용해도 상관없으며, 인간의 본능과 육적인 정욕을 만족시키며 사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 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자들은 음행과 방탕을 일삼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결혼과 이혼도 거리낌 없이 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쪽의 극단은 일명 ‘금욕파’로 육체는 악한 것이기에 육체의 모든 본능과 욕망을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금욕생활을 추구하며 아예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와 같이 한쪽에서는 육체를 가지고 극단적인 방탕한 성적 생활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너무 극단적인 금욕생활에 빠져 결혼 제도마저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고린도교회는 결혼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상당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에게 자문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죠.
자, 그렇다면 결혼 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봅시다. “(고전 7: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여기서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이란 표현은 “여러분이 편지에 써 보낸 질문에 대해 말하겠습니다.”란 뜻 입니다. 그러니까 앞서 이야기 드렸듯이 사도 바울이 여기서 ‘결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 배경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결혼이란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편지를 통해 사도 바울에게 물어보았기 때문 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절 이어서 봅시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이는 원칙적으로는 ‘남녀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바울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즉 결혼하는 것보다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 입니다.
바울이 이와 같이 결혼하는 것보다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 이유는 바울 그 자신이 ‘독신주의자’거나 ‘금욕주의자’라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임박한 종말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사람 입니다. 바울은 언제라도… 다음 주, 다음 달이라도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오실 것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 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대환난 때에 결혼생활과 관련된 괴로움과 고민으로 큰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독신으로 지내는 사람이 결혼하여 배우자에게 매여 있는 자보다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종말이 임박했기에 결혼보다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면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말그대로 바울의 권면이지 하나님의 명령은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 “(고전 7: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즉 결혼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결코 아니고, 독신으로 있는다고 해서 더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과 같은 독신 생활을 권장하지만, 자신이 독신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또한 각 사람마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여부는 독신과 결혼 둘 중에 자신에게 어떤 것이 더 신앙적으로 유익한 가를 따라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1절을 잘못 해석하여, ‘바울이 독신을 권면 했으니까 결혼하는 것은 죄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바울의 생각을 너무나도 오해한 것 입니다. 바울은 일부 금욕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성적 순결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영적으로 유익한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몸과 영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일심으로 주님만을 섬길 수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며, 독신의 특별한 은사를 받아 성적 욕구를 절제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어떤 이는 바울과 같이 ‘독신의 은사’를 받았다 할 수 있겠으며, 어떤 이들은 ‘결혼의 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만일 미혼자가 성적으로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면 결혼하는 거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2절 입니다. “(고전 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여기서 ‘음행의 연고’라는 말은 ‘음행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에’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결혼하지 않으면 음행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두고, 아내는 남편을 두어야 한다고 선포한 것이죠. 특별히 고린도교회 안에서는 성적 방종이 넘쳐 났기에 바울은 이러한 음행에 빠지지 않도록 결혼하는 것을 권면 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남편과 아내가 각각 성적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할 권면합니다. “(고전 7: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이와 같이 바울이 말한 것은 한편에서는 극도로 문란한 성적 방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에 또 다른 편에서는 육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금욕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어떠한 부부간의 관계도 죄라고 보는 극단적이고 치우친 잘못된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부부 사이의 성적 관계는 금욕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4절을 보면, 남편은 자신의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하며, 또한 아내 역시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합니다. 이는 부부가 서로를 향해 가지는 권리는 동등하며 상호적인 것임을 알려줍니다. 5절 말씀을 보면, 이와 같이 부부가 서로에게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한쪽이 일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무언가 심각한 문제를 직면했거나 마음에 주님을 향한 결심이 있어 집중해서 기도를 하려는 경우에는 서로 합의하여 상대방이 기도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도하는 자도 그 일로 인해 자신이나 배우자가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권면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독신으로 살아가는 개인일 때나, 결혼하여 부부로서 맺어져 있는 상태일 때나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 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함께하시는 ‘성령의 전’ 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개인의 삶과 가정이 거룩하게 세워져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삶을 위해 날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우리 개인의 몸과 가정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