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6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라 (고린도전서 2장 1-5절)

(고전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 세상에는 참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논리정연하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똑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 유머와 재치로 사람들을 웃겼다가 조금 뒤에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듣는 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어쩜 말씀을 저렇게 잘 전하나?’ 싶을 정도로 언변의 은사가 뛰어난 분들도 여럿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재능 입니다. 상대방 앞에서 말을 잘하는 능력은 누구나 탐내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이러한 유식한 언변이나 지혜를 의지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1절 말씀 입니다. ”(고전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1절에 나오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란 이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사용하던 철학자들의 뛰어난 논리와 화려한 말솜씨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자신이 화려한 화술로 복음을 전하는 경우, 가장 핵심인 복음이 가려질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인간적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도’만을 전했습니다.
2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왜 사도 바울은 말과 지혜의 탁월함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알기를 원했을까요?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오기 전에 ‘아덴’이란 도시에 도착하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아덴’이란 도시는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 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당시 사람들이 익숙했던 철학적 논증 방식을 동원했습니다.
바울이 말을 얼마나 잘 했는지요,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제 1차 선교 여행 당시 바울이 ‘루스드라’라는 도시에서 말씀을 전했을 때 어찌나 말을 잘 하던지 사람들은 그를 ‘웅변의 신’인 ‘헤르메스’라고 불렀을 정도 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뛰어난 수사학과 화려한 말솜씨로 아덴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려 했던 것이죠. 반드시 성공할 것처럼 보이는 바울의 전도 전략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의 경험을 통해 훌륭한 화술이나 탁월한 인간의 지혜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것과 그러한 일들이 무익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의 경험이 바울로 하여금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해야한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상이 알 수 없고, 소유하지 못한 오직 하나의 메시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에만 집중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이와 같이 자신은 사람의 말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만을 증거하겠노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린고교회 성도들이 바로 이 ‘말과 지혜로’ 다투고 싸우고 교회 안에 분열을 일으켰기 때문 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버리고, 인간적인 요소들을 내세우며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교인들에게 자신은 결코 이와 같은 인간적인 말과 지혜의 탁월성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위축된 마음이 컸습니다. 3절을 보면 그의 이러한 심리적 상태가 3가지로 나타나고 있는데 ‘약하다’, ‘두려워하다’, ‘심히 떨었다’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못 읽으면 바울이 지금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잡혀서 핍박 당하는 것을 두려워한 것처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이 두려워한 것은 복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다가 죽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 여기서 바울은 이와 같이 고린도에 거할 때에 그의 마음이 약하며, 두려우며, 심히 떨고 있었을까요? 이는 그가 사도로서 복음을 잘못 전해서는 안된다는 책임감에서 기인한 두려움 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오기 바로 전, ‘아덴’에서 복음전도 실패의 쓴맛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맡고 있는 복음의 가치에 비해, 이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 작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에는 늘 복음 전파에 대한 이런 염려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복음 전파의 최전선에서 과감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이전에 아덴에서의 실패를 거울 삼아, 고린도에 온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 ‘탁월한 말솜씨’와 ‘인간적 지혜’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 했을까요? 4-5절 입니다. “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탁월한 실력을 가진 바울은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구변 좋고, 설득력 있는 말로 사람들의 귀를 달콤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와 같이 군중을 현혹하는 세상 지혜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전히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만 의지했다고 고백 합니다.
여기서 본문에 사용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은 무엇일까요? 어떤 외적인 표적들과 초자연적인 일들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은 사람 속에서 믿음을 불러 일으키고, 성경에 기록된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만드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함으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뿌리가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둔 참된 믿음이 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한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이 ‘인간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신 ‘성령의 증거’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인간의 지혜나 언변에 의지한 것이라면, 비바람 몰아치고 파도가 들이닥치는 날 그 믿음은 모래성과 같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지혜나 언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신 성령의 증거에 기초한 것이라면, 그것은 불변하는 믿음이 될 것 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들도 내 자신의 인간적 언변과 탁월한 화술을 의지하는 복음 전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드러내고, 철저하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온전한 복음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