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4 최고의 지혜는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0-25절)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전 1: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전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전 1: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고전 1: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고전 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 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사람들을 말씀으로 가르쳤습니다. 그 후 바울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바울은 제 3차 선교여행을 하며, 에베소에 머물며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고린도교회에서 온 사람들이 바울을 만나기 위해 에베소에 찾아 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 본문 11절에 나오는 글로에의 집 편으로 온 사람들 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고린고교회에서 온 사람들은 바울에게 교회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각각 자신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다 하며 서로 분쟁이 생긴 것이죠. 그 당시 헬라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철학을 가르쳐 준 스승의 이름에 따라 각 파가 나뉘어 졌습니다. 이러한 헬라 문화에 익숙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복음을 가르쳐 준 스승이 누구인가에 따라 계파를 나누려 했던 것이죠. 그 결과 교회는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 ‘내 스승의 가르침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비교, 경쟁하며 다투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게 된 바울은 화도 나고 한편으로는 교회의 어려움에 큰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바울은 다시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고린도교회로 보내며 이 편지를 전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입니다.
바울은 한 분이신 그리스도가 결코 나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13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1: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한 분이신 것과 같이, 그의 교회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이는 교회가 복음을 가르치는 스승들, 곧 바울, 아볼로, 게바와 같은 이들을 섬길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함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세례 베푼 사실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세례를 베푼 사람들이 많았더라면, 그 사람들도 모두 “나도 바울파다”하고 주장하며 교회를 더욱 분열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고자 하는 일은 이와 같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어 바울파로 만들려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만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복음을 들려주며 자신이 전한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상기시켰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을까요? 아니요.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의 이야기를 듣고 바울을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어리석은 이야기에 불과 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고, 사람들이 바울이 하는 일을 마치 발로 짓밟 듯 무시했으나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하심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이야기처럼 들려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에게는 부인할 수 없는 진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이렇게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해 보십시오. 우리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것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죽은 사람이 3일 뒤에 다시 살아난단 말입니까? 바울 당신은 미쳤소!” 실제로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심문을 받으며 총독 베스도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자 베스도가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그를 조롱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신을 잃거나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건전하고 똑똑한 정신으로 자신에게 나타나신 부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 때문에 매를 받고, 돌을 맞아 죽을 뻔 했고, 굶주렸고, 추위와 더위에 시달렸고, 폭풍을 만나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했으며, 가는 곳곳마다 저를 죽이려 한 사람들이 가득 넘쳐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메시지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더욱 더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와 같이 불꽃처럼 살게 만들었을까요? 18절 말씀에 바울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야기는 믿기 힘든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이 ‘십자가의 도’야 말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담대하게 전했던 것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죄인을 위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야기를 미련하게 여기며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구약성경 이사야 29장 14절에 예언된 내용이었기 때문 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9절에 그 내용이 있습니다. 함께 봅시다. “(고전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이 세상에는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저 교만한 자들의 지혜를 멸하시고 그들의 총명을 폐하실 것이라고 예언 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지혜와 총명을 무가치하게 만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입니다.
20절 말씀을 봅시다.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여기서 ‘선비’란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가리킵니다. 변사는 말 잘하는 ‘변론가’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전문가요, 가장 똑똑하고 지혜로워 보이는 이러한 자들의 지혜를 다 미련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세상의 이치로 보면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입니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끝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가장 기초 상식이고 가장 이성적인 판단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뒤엎으셨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믿는 이 세상 모든 지혜자들의 지혜와 총명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신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반대로 전도의 미련한 것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결정 하셨습니다. 즉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상 지혜가 전부인냥 교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한 연약함을 인정하고, 세상의 기준으로는 미련해 보이나,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믿는 자들은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어떤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나야만 믿겠노라 했던 거이죠. 그러나 사실 표적을 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기드온, 히스기야도 표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기적 자체에 빠져 있었고, 그 어떤 기적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매일 끊임없이 새로운 기적들만 찾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토록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과는 반대로 헬라인들은 철학을 중요시 했습니다. 즉 이들은 이성적인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 수 없다. 다시 살 수 있다는 이성적인 증거를 내놓아라. 세상에 처녀가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이 가능힌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다는 것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사람이 어떻게 물 위를 걷는가? 이성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헬라인들의 지혜 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이 구하는 표적을 베풀거나, 헬라인들이 구하는 지혜를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오로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3-24절 입니다.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미련하게 들리고 아무런 능력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다릅니다. 십자가야말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이며,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찾아 헤매던 참된 표적과 지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전한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다 보면, 이 길이 맞나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자신의 영혼에게 자신 있게 대답해 줄 준비를 해 두십시오. “영생의 길이 여기 있는데, 우리가 예수를 버리고 어디를 가겠느냐?”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바울은 사람들의 조롱과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 입니까? 단지 로마 병사들이 죄수를 죽이는 미련한 사형 형틀일 뿐입니까?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킬 수 없는 힘 없는 나무 조각에 불과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내 삶과 어떤 상관이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 입니다. 오늘 바울의 고백, “세상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한 것처럼 보여도, 제게는 십자가야말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하는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동일한 믿음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