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8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되어 사는 삶 (신명기 14장 1-21절)

(신 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신 14:2)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신 14:3)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신 14:4)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신 14: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염소와 볼기 흰 노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신 14:6) 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신 14: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을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신 14: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신 14:9) 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신 14:10)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신 14:11)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신 14:12) 이런 것은 너희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신 14:13)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신 14:14) 까마귀 종류와
(신 14:15)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신 14:16) 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신 14:17)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신 14:18)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신 14:19) 또 무릇 날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신 14:20)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신 14:2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한 어느 한 남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머리카락은 검정색이요, 눈은 갈색 입니다. 피부도 분명 한국인과 같습니다. 겉으로 보면 누가 봐도 한국 사람 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생활하는 것이 어딘가 한국 사람과는 다릅니다. 명절이 되어 옷을 입는데, 한복이 아니라 기모노를 입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일본 신사에 절을 하고 지냅니다. 집에서 된장찌개를 해먹는데, 일반 된장이 아니라 일본식 미소 된장을 풀어 먹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 시합을 하는데 한국은 제쳐두고 일본을 응원합니다. 이 남자 과연 진짜 한국 사람이 맞을까요? 누군가 이 남자를 곁에서 본다면, ‘무늬만 한국 사람이지 일본 사람 아닌가?’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머리만 검고, 눈이 갈색이라 해서 다 한국 사람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한국 사람으로 구별되게끔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산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방 백성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삶의 규범을 지키고, 또한 이방신과 우상들을 섬기는 주변 이방 사람들의 문화를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말씀 하십니다. 1절 말씀을 봅시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방신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며,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 없는 외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이제 이후에 나오는 내용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고 어떻게 구별된 생활을 살아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신 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이 당시 이방인들의 경우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들을 위한 애도의 표시로서 자신의 몸을 칼로 베어 피를 내는 자해하는 것이 매우 일반화 되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아픔을, 육체의 상처와 아픔으로 표현하며 죽은 자를 그리며 애곡한 것이죠. 또 하나의 애곡하는 방법은 머리를 미는 것이었습니다. 1절을 보면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오늘 여기서 말하는 것은 머리 전체를 의미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 한국 남자들 군 입대 할 때 머리를 짧게 빡빡 밀지 않습니까? 이방인들은 사랑하는 이나, 가까운 이들이 죽으면 애도의 표시로 머리를 짧게 잘랐던 것이죠. 이방 사람들이 이와 같이 사람이 죽었을 때 칼로 몸을 자해하거나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그릇된 미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망자의 영혼이 살아 있는 자를 해한다는 잘못된 미신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예전에 어르신들이 장례식 다녀오면 마당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입고 온 옷 다 빨고, 목욕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은 자의 귀신에 부정 탄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죠. 이스라엘이 살고 있던 가나안 땅에도 많은 미신들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릇된 이방인들의 종교의식에 메이지 않으며, 죽은 자들의 영혼을 두려워하거나, 그로 인해 평안을 얻기 위해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도록 이와 같은 애도 행위를 금지 하셨습니다.
2절 말씀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시키십니다. 2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신 14:2)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만일 이스라엘이 이방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면, 그들이 굳이 구별된 삶을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때로는 불편한 상황을 낳기도 합니다. 또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금지시 되는 일들도 생기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며, 그들은 ‘지상 만민 중에서 택함 받은 자들’임을 다시 한 번 언급하시며 그들이 왜 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씀 하셨습니다. 2절에,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보물’이라는 의미 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3절부터 음식 규례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정한 동물들과 먹지 못할 동물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먹을 수 있는 동물들의 조건을 한 번 살펴봅시다. 6절을 봅시다. “(신 14:6) 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땅에 사는 동물들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새김질도 해야 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소, 양, 염소, 사슴, 노루 다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 먹을 수 있는 동물이죠.
동물들 중에도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것들이 있습니다만, 이 두 가지 특성 중 한 가지만 가지고 있는 동물을 먹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동물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돼지 입니다. 왜 돼지는 못 먹을까요? 돼지는 발은 쪽발 입니다. 그러나 돼지는 새김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돼지는 부정한 동물 입니다. 8절 봅시다. “(신 14: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유대인들 입장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돼지고기 먹는 거 보면, 기겁을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에게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돼지는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물에 사는 물고기는 어떤 기준이 있을까요? 9절을 봅시다. “(신 14:9) 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앞서 땅에 사는 동물의 경우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을 해야 하는 것처럼, 물에 사는 동물의 경우에도 두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먼저 지느러미가 있어야하고 비늘이 있어야 합니다. 자, 그럼 제가 한 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유대인들 추어탕 먹을 수 있을까요? 아니요 못 먹습니다. 왜요? 미꾸라지는 지느러미는 있지만 비늘은 없거든요. 고등어 조림은 먹을 수 있을까요? 아니요. 고등어도 지느러미는 있지만 비늘은 없습니다. 그럼 새우튀김은요? 낙지전골, 오징어볶음, 바지락 칼국수, 조개구이, 랍스터, 문어구이, 장어구이, 복어탕, 갈치조림 다 못 먹습니다. 이 맛있는 것들을 하나도 못 먹는 유대인들 참 불쌍하죠? 11절부터는 하늘을 나는 동물 중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20절까지 길게 나와 있습니다.
자,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정해주신,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지 못하는 동물에 대한 기준을 보면, 가장 크게 두가지 의문점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왜 어떤 동물은 먹을 수 있고, 왜 어떤 동물을 먹지 못하는 부정한 동물인가?’ 입니다. 더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꾸면, 왜 발의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 하면 먹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는 못 먹는가? 하는 질문 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모른다’가 정답 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에 대한 해석들을 다양하게 내놓았는데요. 그 중 확실하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해석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이와 같이 각 동물들의 정함과 부정함을 구분하는 기준을 알 수 없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머리로 다 이해하고 믿으려고 하는 우리의 교만함을 깨트리시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 왜 이거 먹지 말아야 해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제 좁은 견해와 지혜로는 다 이해되지 않아도 그대로 순종하고 따르겠습니다.”하고 태도가 필요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그 맛있는 음식들 안 먹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금지된 동물들을 멀리했던 것입니다.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태도의 요구는,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나 설명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으면, 애초에 원수가 아니죠. 이와 같이 우리의 지혜로는 다 깨닫거나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상식과 지혜로 다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며 말씀이라면 겸손하게 따를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3년 동안 나체로 다녔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경우 왼편으로 390일, 오른편으로 40일 동안 모로 누어 새우잠 자듯이 옆으로 누워서 잤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원수 국가에 가서 회개하라 선포해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전쟁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적국에게 항복하라고 메시지를 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인간의 지혜로는 전부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비록 우리가 신약 시대를 살고 있으나, 성경에 나온 하나님 말씀이니까 우리들도 이대로 지키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 입니다. 이 질문은 오히려 답이 명확합니다. 아닙니다. 먹어도 됩니다. 자유함을 누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에게는 놀라운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먹고 마시는 음식으로 정하게 되거나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새롭고 산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내가 무엇을 먹는 것이 나를 정하거나 부정하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주신 이 귀한 ‘자유함’이 내 육신의 방탕함을 이루기 위한 ‘방종’의 삶으로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얼마나 일상적인 요소 입니까? 하나님은 이와 같이 우리 일상의 가장 평범한 모습 속에서도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들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위하여 해야 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의 사소한 일상에서도 하나님은 거룩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날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며, 구별 받은 천국 백성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부끄럽지 않도록 세상과 구별된 삶,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