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3 스스로 삼가 올무에 걸리지 말라 (신명기 12장 29-32절)

(신 12: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너로 그 땅을 얻어 거기 거하게 하실 때에
(신 12:30) 너는 스스로 삼가서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들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위하였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신 12:31)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신 12:3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요즘 한국 스포츠에서는 팀을 지휘하고 있는 외국인 감독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야구, 축구, 배구 등 다양한 종목에서 활동 중입니다. 이와 같이 한국 스포츠가 외국인 감독을 영입을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 스포츠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바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자,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 스포츠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스포츠보다 약한 국가에서 감독을 데리고 올리는 결코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보다 뛰어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독을 데리고 올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는 기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 됩니다. 새로운 외부 인사를 영입하게 될 때, 잘 나가는 기업에서 일 잘 하는 사람을 고용하지, 망해가는 기업에서 일 못하는 사람 데리고 올리 없습니다. 이를 식당으로 바꾸어 말하면, 옆 동네에서 대박 터트리고 있는 잘 나가는 요리사를 모셔오는 일은 있어도, 쪽박 치고 망해가는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를 스카우트 해오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이제 이와 같은 원리를 한 번 신앙생활에 적용해 봅시다. ‘신앙생활 잘 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고 사는 사람’과 ‘잘못된 길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벌을 받고 망한 사람’, 이 둘 중 누구를 본 받아야 할까요? 묻고 따질 필요도 없이 당연히 신앙생활 잘해서 하나님께 복 받는 사람들을 본 받아야 할 것 입니다. 이 또한 기본이고 상식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한하게도 잘못된 길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벌을 받은 가나안 족속들의 전처를 밟으려 합니다.
분명히 가나안 족속은 우상을 섬기고, 음행을 저지르고 음란하게 살아감으로 인해 하나님께 벌을 받아 이 땅에서 쫓겨나고 멸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심판하실 때, 이들을 멸했던 사람들이 다름아닌 이스라엘 백성들 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왜 가나안이 멸망했는지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제 새롭게 가나안 땅의 거주자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 앞에서 벌을 받고 쫓겨난 가나안 족속의 가증한 행위들을 따라 하려는 것이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우상과 이방신들을 섬기기 위해 행한 종교적 의식이나 행위들을 따라하지 말 것을 권면 했습니다. 29-30절 입니다. “(신 12: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너로 그 땅을 얻어 거기 거하게 하실 때에 (신 12:30) 너는 스스로 삼가서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들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위하였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눈으로 보는 앞에서 가나안 족속을 멸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우상을 섬기고 음행을 행하는 족속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심판과 벌을 가르치기 위한 뜻도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멸망한 가나안 사람들의 자취를 밟지 말라고 경고 했습니다. 또한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신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섬겼는지 탐구해서 그와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나무나 돌, 은과 금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절하고 섬겼습니다.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는 죄 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심지어 그 자녀들까지 불살라 자신들의 신에게 바치는 종교 의식을 행했습니다. 31절 입니다. “(신 12:31)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가나안 족속은 무언가 사회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거나, 비가 오지 않거나, 자연 재해가 일어나면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진노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진노한 신을 날래는 방법이 자신들의 아들과 딸들을 불사르는 것이라 믿고 반인륜적인 일을 저지른 것이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는 이러한 행위들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이스라엘은 모세의 권면을 잊어버리고, 그가 하지 말라고 경계했던 모든 죄악을 짓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앞에 멸망한 가나안 족속처럼 우상을 섬겼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말감, 하늘의 일월성신, 그마림 등 그들이 섬긴 우상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또 열왕기상의 기록을 보면 심지어 유대 왕 아하스는 앗수르 사람들의 제단 모양을 연구하여 예루살렘에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사람들이 섬기던 신을 섬겼습니다. 역대하 28장 기록을 보니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자녀를 불살라 우상에게 바쳤습니다. 가나안 족속처럼 산당을 세우고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모든 언덕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분향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죄악으로 인해 이스라엘도 자신들이 멸망시켰던 가나안 족속과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과 벌을 받아 멸망하고 맙니다. 모세의 경고를 무시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음란하게 행하고 범죄하여 스스로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하신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32절 말씀을 봅시다. “(신 12:3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삶의 기준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그 말씀에 무엇이든지 가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임의대로 무엇인가 더하거나 빼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며 동시에 하나님의 권위를 깎아 내리는 죄악 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 시킬 자격이나 권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최종적인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옥한흠 목사님께서 “표준을 낮게 잡으면 망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보다 신앙생활 잘 못하고 있는 사람을 표준으로 잡고 “나는 그래도 저 사람들보다는 잘 하고 있지”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교만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표준이 낮은 사람은 나태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유일한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입니다. 성경에 나를 비춰보고 부족한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나를 말씀 아래에 복종시켜 내 삶을 변화시켜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그들에게 넘치는 복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스스로 올무에 걸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되지 맙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계시니, 주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표준으로 삼고, 그 말씀을 듣고 지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복된 삶 되시기를 주님의